[창세기 1-2장] 결혼제도 의 기원은? 결혼, 배우자, 안식일

성경/창세기|2022. 7. 7. 11:23

창조주의 걸작품이며 그를 위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이 단장함을 입은 존재인 사람이 활동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사람은 외모나 품성에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하나님께서 땅 위에 지으신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에게 비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에게 한 반려자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거룩한 부부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부족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창조주께서는 한 동산을 특별히 그들의 집으로 마련해주심으로 당신의 사랑의 다른 증거물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이는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최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숭경심으로 가득 하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묵상: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성적 존재이자 자연의 법칙이 아닌 도덕법칙에 의해 자신을 섬길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도덕’을 사전에서는 ‘양심’과 연결시켜 이야기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발적인 마음에 의한 사랑의 봉사를 원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감사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처음으로 하나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부분이다.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면 당신을 닮은 모습(품성과 외모)으로 창조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가장 마지막에 창조하시어 이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을까 생각하니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고 또 용기가 되는 듯 하다. 왜냐하면 배우자는 내가 스스로 얻는 목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동반자의 필요를 느끼기 원하셨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어쩌면 내가 정말 정말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의 온 영혼과 나의 온 마음에서 간절하게 느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외롭고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 ‘희망’이 자꾸 꺾일 때 눈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고백한 시간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듯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주례자였다는 사실과 아담과 하와가 이미 풍족하게 누리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살 터전인 ‘에덴 동산’을 마련해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일 역시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뤄야 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만드셨고 가정을 만드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결혼’과 ‘가정’에 대해 염려가 있고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하나님께 기도해야함을 말하고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와 선물로서 우리의 살 터전과 결혼을 구해야 함을 말하지 않나 생각한다.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살 터전을 제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우리의 살 터전을 주신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하다.

 

네 번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이었지만 절대 방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들을 만드셨다. 위에서 언급한 결혼을 통해 이뤄지는 가정이 그렇고 안식일이 그러하며 천연계들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선물의 참 뜻을 알고 하나님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래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어렵지 않은 일을 나는 왜 ‘나’를 앞세우며 어렵게 만드는지...

 

가 아닌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여 이 많은 선물들을 누리며 살아가길 기도하자.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입힌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입힌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이다.

우리는 영원한 언덕들, 교목들, 피어나는 꽃봉오리들과 아름다운 꽃들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만물은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언제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큰 책을 열어 그 속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찾도록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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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50장, 요셉의 죽음

성경/창세기|2020. 11. 15. 15:30

요셉은 그가 곧 죽게 될 것을 알자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리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확신하고 아들들에게 그 약속이 반드시 성취 될 그때, 자신의 유골을 약속의 땅에 묻어줄 것을 맹세케 했습니다. 요셉의 관은 그가 죽은 직후에는 애굽에 묻혔으나 하나님의 약속의 때에 세겜의 한 장소에 묻히게 됩니다.

애굽에 있었던 요셉의 관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애굽 땅이 아닌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했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것을 믿고 인내케 하는 기념비가 됐습니다.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던 요셉, 그가 보여준 믿음처럼, 각자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로 믿고 기다려 약속의 그날에 꼭 함께 하늘에 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야곱 이스라엘 뜻

 

야곱의 이름의 원래의 뜻은 형의 발꿈치를 잡는자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3장 28절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과 씨름을 한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의미는 '네가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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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성경에는 야곱과 이스라엘이 번갈아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역시 야곱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창세기 50장 25절에 보면 이스라엘(야곱)이 죽은뒤, 요셉이 이스라엘(야곱)의 아들들 및 식솔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야곱)이 죽은뒤, 요셉이 그의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성경에서 최초로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표현한 부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야곱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후손은 야곱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야곱)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던 '유다'가 이스라엘의 족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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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49장, 야곱의 축복

성경/창세기|2020. 11. 15. 15:21

야곱은 임종직전에 자신의 12아들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이 12아들의 후손이 바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됩니다. 이스라엘(야곱)의 아들 12명= 이스라엘의 (후손) 12지파가 됩니다.

 

르우벤은 장자였으나 아버지의 첩과 간통하는 죄를 지어 장자에서 제외됐습니다. 후에 르우벤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서 결코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번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제 시므온과 레위에게 그 차례가 갔으나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에서 누이 디나가 수치를 당했을때, 하나님의 언약을 이용해서 잔인무도하게 이방족속들을 칼로 살해하는 죄를 범했고 요셉을 파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기에 그 죄가 컸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계수할때 시므온지파는 그 수가 가장 적었다고 합니다. 모세는 그의 최후의 축복에서도 시므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레위지파 역시 40성읍 밖에 분배받지 못했지만 레위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배도했을때 충실히 하나님을 섬겨 성소의 거룩한 봉사 직분을 맡게 됐습니다. 저주가 축복이 된 셈이었습니다.

 

르우벤 -> 시므온 -> 레위 -> 유다

 

르우벤과 시으모, 레위다음 축복을 받은 것은 유다였는데, 유다는 그 이름의 의미가 찬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선 형들과 마찬가지로 유다는 타락했고 요셉을 파는 일에도 주도적인 가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애굽의 총리(요셉) 앞에서 자신의 막내 동생 베냐민을 대신해서 자신을 종으로 삼으라는 참 회개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진실로 회심한 사람, 약속의 후손이 될만한 사람,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로 장자의 축복이 옮겨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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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예수그리스도를 나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사를 지도록 했습니다. 결국, 아담---....--> 노아 ---...----> 아브라함---....--->이삭 -> 이스라엘 -> 유다---...-->예수그리스도 로 이어지게됐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이 내용을 야곱의 축복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주에 가까운 내용이 많습니다.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등에게 내린 야곱의 말은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까운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야곱은 열렬하고 속깊은 인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2아들들을 부드럽게 사랑했습니다. 비록 요셉에게 편애를 했고 나머지 아들들이 요셉을 해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 아들들을 모두 용서했고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지막까지 아들들을 사랑했습니다.

 

야곱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으로 임종의 순간 용기와 희망과 사랑만을 주려고 한것이 사실이었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고 능력이 그에게 주어졌을때 야곱은 성령의 감동함을 힘입어 고통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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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48장, 야곱 에브라임 므낫세

성경/창세기|2020. 11. 15. 14:44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성품과 능력에 대한 세세한 조사 뒤에 총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에게 온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요셉과 이 아내 사이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태어났습니다. 사실 이 두 아들들은 어머니로 인해 애굽 최고의 혈통을 이어받았기에 애굽인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아버지인 요셉의 지위와 더불어 부귀영달의 길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 아들들이 애굽이 아닌 이스라엘과 연결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궁전이 제공하는 모든 영예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던 애굽에서 천대받는 양치는 족속 중에 한 자리를 얻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요셉의 신앙을 나타냈습니다. 세상에 속해 세상을 사모하기 쉬운 우리이지만, 그럼에도 하늘 본향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연결된 삶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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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에는 영성있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요셉도 틀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야곱이 나이가 많고 눈이 어두움을 알고 배려하여 장자인 므낫세와 차남인 에브라임 순서로 야곱 앞에 앉게 했습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는 오른손으로 장자를 축복하기에 요셉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을 야곱(이스라엘)의 왼손방향에 두었고 왼손으로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두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야곱의 방향에서 오른손(우수)이 므낫세(장남)의 방향이 되고 왼손(좌수)이 에브라임으로 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관습에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장자가 축복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야곱은 요셉이 놔둔 방향이 아닌 자신의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향하고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향해 손으로 축복했습니다. 손을 크로스해서 축복을 한것이지요.

 

요셉은 당연히 장자인 므낫세가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야곱의 오른편에 앉게 했으나 야곱은 앞날을 예언하고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습니다. <창48장 19절>

 

이처럼 아무리 영적인 사람, 신실한 사람이라도 '사람'이기에 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므낫세가 아닌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신실한 사람을 보더라도 '사람'자체를 높이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겠습니다.

 

한편,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뜻인 이와 같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을 잊어버리게 하셨다'하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하는 의미입니다. <창41장 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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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47장, 야곱의 생애

성경/창세기|2020. 11. 15. 12:51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던 야곱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평안했습니다.

야곱에게는 17년간 고센땅에서 평화로운 여생이 허락됐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의 가족으로 큰 민족을 이루시리라'는 일이 이루어 질 조건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시 아들들의 참 회개의 증거들을 보았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자신의 후손들이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게 되리라는 언약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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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자신과 조상들의 생애를 "나그네 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조상들과 야곱은 약속으로 받은 가나안땅에서 아직 정착하지 못한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야곱이 여기서 말한 이 '나그네 길'은 인간이 진정한 휴식을 누리면서 살도록 창조되었음에도 그것을 얻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갈망하며 살아야 하는 이땅의 생활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바울은 이 말씀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늘 가나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갈망했던 사실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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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46장, 야곱의 생애

성경/창세기|2020. 11. 15. 12:39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사실과 그가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야곱에게 전했습니다. 또한 요셉이 애굽땅으로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기별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요셉을 팔았고 아버지를 속였음을 회개하며 아버지께 죄를 지은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그들이 그토록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으나 모든 일이 좋게 된것을 보고 아들들을 축복하고 용서했습니다.

 

야곱은 이제 애굽으로 가는 길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시겠다는 보증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에게 증거를 주셨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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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키기에 필요조건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은 예언된 바와 같은 민족으로 발전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가아안 땅은 이방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저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섞여 산다면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을 받을 위험에 있었습니다.

 

반면, 애굽에서는 애굽인들이 경시하는 '목축'을 함으로 그들에게 반감을 살 수 밖에 없어 독특하고 구별된 백성으로 남아 있게 해서 애굽의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게 할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이방 나라에서 우상숭배 및 다른 시험에서 그들을 보호하고자 형제들에게 미리 목축을 업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바로에게 말하도록 권고했습니다. 

 

형제들은 이 권고에 따라 애굽 땅에 영주하러 온것이 아님을 말했고 떠날 권리도 보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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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요셉의 형제들, 유다의 회개, 창세기 44장

성경/창세기|2020. 11. 13. 09:27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하자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들의 악한 감정은 날이 더해 갈수록 악해져 결국은 요셉을 죽이려는 마음까지 품었습니다. 비록 죽이지는 않았지만 형제들은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됐고 형제들은 식량을 사러온 이방인의 입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간의 세월동안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고 요셉과 아버지께 죄를 지은 그들의 죄를 참으로 회개했습니다.

형제들이 회개한 모습은 곳곳에 드러납니다. 특히 요셉을 파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유다는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속에서 발견됐을 때, 베냐민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이 애굽의 종이 되겠다고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유다의 이 무아적 아량은 참 회개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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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다는 진실로 회심한 사람, 약속의 후손의 조상이 될 만한 사람,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선민을 지칭하기에 합당한 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셉보다는 형제들과 많이 닮아 있는 우리,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성령하나님께 간구하여 회개의 선물을 받아 진실로 회심하는 사람들로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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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45장(42장-45장), 요셉과 그 형제들 깊이 읽기

성경/창세기|2020. 11. 11. 09:46

요셉과 형제들이 다시 만났습니다. 요셉은 총리였고 형제들은 곡식을 사러 온 이방인 입장이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한탄하지 마소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애굽에 팔아넘긴 형들, 10년간 종살이하게 하고 2년간 감옥에서 죄수로 살게 했던 형들, 형들에게 보복을 해도 모자랐을 요셉이었지만 그는 형들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놀란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 그분과 함께하심을 믿은 요셉이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맛본자는 어떤 상처와 슬픔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맛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4:16 유다가 가로되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 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종이 되겠나이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자고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셉을 판 일로 양식의 가책을 느꼈고 이 일을 죄로 인정하며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유다의 이 모습은 진심으로 회심한 사람, 약속의 후손의 조상이 될 만한 사람,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선민을 지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43: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하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하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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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애굽인들은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일이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사람이라 칭했고 외국인들을 야만인으로 간주했습니다. 그와 같은 외국인에 대한 반감은 식사법에 나타납니다. 히브리인들은 동물을들 잡아서 음식으로 먹었으나 애굽인들은 동물들을 신성시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애굽인들은 헤랄인들의 칼이나 포크, 접시 등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고 헬라인들이 사용하는 칼로 잡은 정한 짐승의 고기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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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39장 1절~23절, 요셉의 일생

성경/창세기|2020. 11. 10. 19:18

요셉은 애굽에 팔려갈 때 좌절스러운 미래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릴적 들었던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믿었고 아버지에게서 배우고 들은 하나님이 자신이 팔려가는 곳에 함께 계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나 그의 아내가 유혹할때나 감옥에서나 바로 왕 앞에서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가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기에 보는 이가 없었어도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히 일했고 그의 아내가 천사들이 초미의 관심사를 갖고 지켜 볼 만큼 매혹적이고 돌발적인 유혹을 했을 때 도망칠 수 있었으며 감옥에서도 슬픈 사람들을 위로 할 수 있었고 왕 앞에 섰을때도 담대히 하나님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했던 청년 요셉, 우리들도 내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내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히브리에서 온 '종'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낼때는 부지런히 성실히 살아가지만 높은 자리에 오르고 명예를 얻게 되고 지위를 얻게 되면 '그 시절'을 잊고 방탕하고 게을러지고 교만해집니다.

하지만 요셉의 성품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바로의 앞에서나 총리생활을 할때나 늘 하나님을 충실히 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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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결같이 하나님을 충실히 섬길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기호대로 살지 않고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우리의 '의무'들을 수행합니다. 이 작은 '의무'들이 우리의 품성을 꼴짓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일들이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같이 자라나기에 하는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요셉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기억하여 우리들의 일상의 의무를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 아래 잘 수행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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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39장,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성경/창세기|2020. 11. 4. 11:31

창세기 39-41장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비록 종의 신분이었으나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살았기에 주인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임을 알았고 그에게 많은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주인의 아내의 유혹에도 요셉은 하나님을 먼저 이야기하며 그곳에서 도망쳤고 모략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자 결심했던 그의 단호한 결의를 포기 하지 않고 할 일을 찾았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그에게 자신의 결백을 겸손히 주장했으나 배은망덕한 술맡은 관원장으로 인해 고통의 깊이가 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버리지 않으셨고 2년후 바로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왕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서 대답 하시리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종이었을때나 감옥에서나 왕 앞에서나 늘 하나님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사는 모든 순간들에 하나님이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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