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철저한 개혁만이 절박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밝히신다.
성전과 그 봉사에 걸고 있는 그들의 신뢰는 헛될 것이다. 의식과 예식은 죄를 속할 수 없다. 저희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마음과 생활 습관의 개혁만이, 계속된 범죄의 불가피한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엘리의 죄는 성직에 있던 그의 아들들의 죄악과 전국 각처에 성행하던 악을 가볍게 넘긴 것이었다. 그가 이러한 죄악들을 시정하는 일을 태만히 함으로 이스라엘에게 무서운 재난을 가져왔다. 그의 아들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엘리 자신도 목숨을 잃었으며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취하여 감을 당하였고 백성 중 3만 명이 살해되었다. 이 모든 일은 죄를 견책하지 않고 억제하지도 않은 채 성행하도록 버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악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법궤가 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에 대한 승리가 보증되어 있다고 헛되이 생각하였었다. 예레미야의 시대에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유다 거민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 봉사를 엄격히 준수함으로 저희 악한 행실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공정한 형벌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짙었다.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책임있는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교훈이 되는가! 진리의 사업에 수치를 가져오는 죄악을 충실히 다루어야 함에 대한 얼마나 엄숙한 경고인가!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계명에 대하여 표면상으로 나타내는 저들의 경의가 그들을 하나님의 공의의 처벌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악에 대하여 책망 받기를 거절하지 말며 행악의 마당을 청소하기에 너무나 열심이라고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지 말라.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불의에서 떠나기를 요청하신다. 회개하고 즐겨 순종하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오늘날 남녀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에게 내렸던 것과 같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묵상 -> 죄악을 가볍게 넘긴다면 무서운 재난으로 이어진다. 나의 삶에 죄악이 있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시정하자. 가정이든 어디든. ‘악’에 대한 책망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누군가로부터 내게도 있다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 혹은, 누군가의 비판(무지성 비판 제외)에 대해서 방어기제보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피라는 ‘섭리’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저희에게 평탄한 일과 허위의 예언을 말하지 않는 예레미야에게 분노를 발하였다.
묵상 -> 나에게 기분 좋은 소리만 듣고 싶은 요즘이다. 약간의 비판이나 지적에도 기분이 상한다. 말씀 중 양심을 찌르는 말이 있으면 듣기 싫어진다. ‘나는 아니야’라고 핑계댄다. 그런 마음과 태도는 위의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태도와 흡사하다. 곧 나에게 ‘평탄한 일’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아프지만 영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씀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구하자.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예레미야
수줍어하고 겁이 많은 성격을 타고난 예레미야는, 계속적으로 뉘우치지 않는 자기 민족을 볼 필요가 없는 평화롭고 조용한 은퇴 생활을 갈망하였다. 그의 민감한 영혼은 그의 기별을 멸시하고 그들의 회개를 위한 그의 수고를 경시하는 사람들이 퍼붓는 조롱의 화살에 계속 찔림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애 3:14).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선지자는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믿음으로 선언하였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매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렘 20:11, 13). 예레미야는 청년 시절과 또한 봉사의 후기 동안에 겪은 경험으로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다는 교훈을 배웠다.
묵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했다. 겁이많고 수줍음이 많은 예레미야의 성격상 민감하게 내적으로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는 믿음으로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가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하나님이었다. 렘20:11,13에 고백한 그의 믿음 선포를 배우도록 하자. 또 예레미야는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는 교훈을 배웠다. 즉, 인생의 길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지도함에 따라 우리는 걸어야 한다.
그는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렘 10:23, 24)고 기도하기를 배웠다.
예레미야는 시련과 슬픔의 잔을 마시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와 고통중에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말하도록 유혹을 받았을 때에도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회상하고 의기 양양하게 부르짖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18, 22-26).
묵상 예레미야의 고백을 본받자. 하나님의 섭리를 회상하고 의기양양하게 부르짖었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인도해주신 경험을 행복하게 회상하고 믿음으로 부르짖자. 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다!
Q. 417P
현대 이스라엘은 지금의 우리겠지?
실로Shiloh
성경은 실로의 위치에 대해서“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삿21:19)라고 말한다.실로는 세겜과 벧엘 중간에 위치해 있는 성읍으로서 여호수아 시대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16:6).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갖고 다녔던 회막,곧 성막을 실로에 세웠다(수18:1).또한 미리 땅을 분배받았던 요단강 동쪽의 르우벤,갓,므낫세 반 지파와 요단강 서쪽의 유다,에브라임,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지파,즉 베냐민,시므온,스불론,잇사갈,아셀,납달리,단 지파는 이곳 실로에서 제비를 뽑아 땅을 할당받았다(수18:2-10; 19:51; 21:2).이처럼 실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착할 때 신앙과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수22:9, 12).
사사기 시대에도 하나님의 집,곧 언약궤가 있는 성막은 여전히 실로에 있었다(삿18:31).사사 시대 말 한 레위인이 베냐민의 기브아에 머물렀는데,불량배들이 찾아와 성관계를 맺기 원하자 레위인은 자기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주었다.레위인은 아침에 첩이 죽은 것을 알고 그 시신을 가져다가 열두 덩이로 나누어서 이스라엘의 온 지파에게 보내어 베냐민 기브아 불량배의 죄악을 고발했다.이로 인해서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그 결과 베냐민 지파의 용사는 겨우600명만 살아남았다.열두 지파 공동체였던 이스라엘은 한 지파가 멸절당하는 잘못된 사태를 깨닫고 회개하지만 스스로 자기들의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기에,어쩔 수 없이 살아남은 베냐민 지파 남자들은 길르앗 야베스 처녀400명을 실로로 데려오고 부족한 처녀는 실로에서 행해진 축제 때에 춤추러 나온 여자들 중에서 얻었다(삿19-21장).
실로의 지위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까지 유지되었다.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언약궤와 성막이 있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간구했고,아들 사무엘을 낳자 젖을 뗀 후 실로에 있는 당시의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겼다(삼상1:24).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은 실로에서 드려지는 제사 때에 악행을 행했던 반면(삼상2:12-17),어린 사무엘은 실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삼상3장).이때 블레셋 족속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서 이스라엘은 에벤에셀에,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다.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 전쟁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출전했지만,블레셋 족속에게 패해서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언약궤는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삼상4:1-11).비록 성경에는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만 나오지만,고고학자들의 발굴에 따르면 실로도 그 당시에 파괴당했다.아마도 블레셋 족속의 일부는 언약궤를 빼앗아 돌아가고,일부는 실로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블레셋 족속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다가(삼상5장)결국 벧세메스로 돌려보냈으며(삼상6:1-18),벧세메스에 있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다(삼상6:19-21).언약궤가 블레셋 족속에게서 이스라엘로 되돌아왔지만,더 이상 실로로 안착되지 않았는데,비록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실로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파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실로가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다.실로에는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있었다.그래서 솔로몬이 죽은 후 세워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실로에 있는 선지자 아비야에게 아내를 보내서 아들이 나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왕상14장).실로 사람 아히야는 여로보암 집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실현되었다(왕상14:10; 15:29;대하10:15).
수세기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실로와 언약궤를 예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집 성전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는 예루살렘에게 경고하였다(렘7:12, 14).나중에 하나님의 동일한 메시지를 다시 들은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다(렘26:6-9).이후에도 실로에는 사람들이 거주했는데,왜냐하면 예레미야가 실로 출신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렘41:5).
실로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다.그것은 야곱이 죽기 전 유다에 대해 축복하는 내용에서 나온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여기서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표현은“실로가 오시기까지”이다.실로가 분명히 지명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마치 사람처럼 번역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부분은“실로가 오시기까지”, “그가 실로에 오시기까지”, “그가 통치 지팡이를 쥔 자에게 오기까지”(시리아역),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새번역),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공동번역 개정판), “공물이 그에게 올 때까지”(until tribute is brought to him, NEB, JPS, NRSV)처럼 매우 다양하게 번역된다.일부는 실로를 지명으로 보기도 하지만,대부분은 앞서 언급된“규”와“통치자의 지팡이”와 연결된 통치자로 해석하며,일부는 이 통치자를 메시아로 이해한다.
오늘날 실로에 가면 성막이 있던 터를 볼 수 있다.실로에 안착된 성막은 광야 생활에 갖고 다니던 이동용과는 조금 달랐던 것을 추측된다.왜냐하면 어린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삼상3:15).문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집의 문과 같은 형태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성막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성경 구절
여호수아16:6; 18:1, 8, 9, 10; 19:51; 21:2; 22:9, 12;사사기18:31; 21:12, 19, 21;사무엘상1:3, 9, 24; 2:14; 3:21; 4:3, 4, 12; 14:3;열왕기상2:27; 14:2, 4;시편78:60;예레미야7:12, 14; 26:6, 9; 41:5
이 지도의 18번이 실로이다.
출처:http://www.generationword.com/Israel/Israel_site_page.htm
실로 입구.
비잔틴 시대 교회터.
실로 유적터 전경.
실로 성전터. 이곳에 성막이 안치된 것으로 보인다.
실로 성전터.
실로 발굴터. 2012년 6월에 방문했을 때 여전히 발굴 중이었다.
성막 모형.
실로 입구에 들어서면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방이 있으며, 그 옆에 성막 모형이 유리상자 안에 있다.
[출처]실로|작성자hesed414
[출처 https://blog.naver.com/hesed414/15015667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