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연구 더듬어 발견하게 하심, 세계의 역사

성경/다니엘|2025. 3. 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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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에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 였다. 그들은 다 함께 빛과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그곳에 있게 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고 있으며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신앙은 강했다. 고통과 위험의 때에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 지도와 보호를 구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즉각적인 도움을 주셨다. 이제 그들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을 새로 이세상의 재판장께 복종시키고 저희에게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이 때에 그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그 분께 간구하였다.

묵상 '고통과 위험의 때'에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 지도와 보호를 간구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즉각적인 도움을 주셨다.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의 군주 앞에 선 조용하고 침착한 유다 포로를 보라. 그는 첫 말로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높였다.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는 왕의 갈망하는 질문에 다니엘은 대답하였다.

497p“왕의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다니엘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니이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세상 열국을 지배하는 권세 곧 왕들을 세우시고 왕들을 폐하시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시고자 하셨다. 느부갓네살의 마음은 깨우침을 받아 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책임을 깨달아야 하였다. 세상 끝날까지 미칠 미래의 사건들이 그의 앞에 공개되어야 하였다.

인류 역사의 기록을 보면 모든 민족들의 발전과 모든 왕국들의 흥망은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용기에 좌우되는 듯이 보인다. 여러 가지 사건들의 생성과 그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하여 결정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휘장이 열려 있어서 거기서 우리의 무대의 상부와 배후를 보며, 또한 인간의 이해 관계와 권력과 욕망의 일체의 승부를 통하여 자비심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묵묵히 또 인내성 있게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묵상 살면서 계속 잊게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 내가 현재 있는곳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모든 세상의 만사가 하나님의 권세대로 인도하심대로 흘러간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아래있다. 내가 잘 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이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4-27).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은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신 4:6, 32:47)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증된 축복이그와 동일한 조건으로 또 그와 동일한 정도로 천하에 있는 모든 국가와 모든 개인에게 보증되어 있다.

묵상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신' 은혜이다.


만일 모든 지상 왕국 중에서 가장 부요했던 바벨론 나라의 통치자들이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였더라면 그들이 여호와께 연결되어 있어서 저희를 강하게 하는 지혜와 능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괴롭고 난처할 때에만 하나님을 저희 피난처로 삼았다. 그와 같은 때에 저희 위인들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자 그들은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 곧 저희가 알기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들을 풀어 달라고 호소하였다. 왜냐하면 비록 교만한 바벨론의 통치자들이 최고의 지성인이긴 하였으나 그들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장래에 관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와 경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열국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볼 수 있다. 바벨론은 마침내 부서지고 깨어져 사라져 버렸으니 그 까닭은 번영할 때에 그 나라의 통치자들이 자기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저희 나라의 영광을 인간의 공적에 돌렸기 때문이었다.

지상의 모든 통치자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다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요 그의 성공 여부는 그가 받은 바 권력을 사용하는 방도 여하에 달린 것이다. 거룩하신 감시자께서는 각 사람에게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 45:5)라고 하셨다.

이런 일들 곧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서며”,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잠 14:34, 16:12, 20:28)다는 것을 이해하고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가운데 이런 원칙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아는 것이 곧 역사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다..한 국가의 힘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저희의 성실성에 의하여 측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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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다니엘서, 참된 성공, 절제, 정욕, 식욕

성경/다니엘|2025. 3. 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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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예민한 이해력, 해박한 지식, 정선(精選)된 정확한 언어는 그들의 힘이 쇠퇴되지 않고 그들의 지력이 왕성함을 보여 주었다..

바벨론 궁정에서는 모든 나라의 대표자들 즉 최고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 가장 부요한 천부의 재능과 세상이 부여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 히브리 청년들과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체력과 용모와 지력과 학식에 있어서 그들과 비길 사람이 없었다. 바로 선 자태, 굳고 탄력 있는 발걸음, 우아한 용모, 흐리지 않은 판단력, 오염되지 않은 호흡 이 모든 것은 좋은 습관에 대한 수 없는 증명서요 자연이 그 법칙을 순종하는 자들을 명예롭게 하는 고상한 훈장이기도 했다.

묵상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됐다. 그들의 거룩한 구별의 삶이 그들을 남들과 다르게 했다. 그들의 이해력, 지식, 언어, 심지어 용모, 판단력, 바로선 자태(태도와 모습) 등 모든 것이 뛰어났다. 그것은 그들의 좋은 습관에 대한 증명이었다. 그들은 자연의 법칙에 순종했다. 이것은 자연이 그 법칙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명예로운 훈장이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르게 보인다.

 

다니엘과 그 동무들은 바벨론 사람의 지혜를 습득함에 있어서 동료 학생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으나 그들의 학식은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고 하나님의 지식을 저희 교육의 기초로 삼았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기도하였고 저희의 기도를 실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있는 곳에 자신들을 두었다. 그들은 저희 능력을 약화시킬 만한 것들을 피했고 각 방면의 학문에 있어서 이해력을 기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선용했다. 그들은 지력을 얻을 수 있는 생활의 법칙들을 따랐다. 그들은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였으니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교의 거짓 신앙 중에서 참 신앙의 대표자들로 서기 위하여 명료한 지력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 성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교사가 되셨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실히 연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접촉함으로 그들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어떤 방면의 사업에서든지 참된 성공은 기회나 우연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하는 일이요 신앙과 분별력의 보상이요 덕행과 인내의 보상이다. 우수한 지적 바탕과 높은 도덕적 경향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들을 주시며 성공은 기회를 이용하는 데 달려 있다.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 동무들에게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 소원을 두고”(빌 2:13) 역사하고 계시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이룩하고 있었다.

묵상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무언가에 대해 노력을 할 때 '기도'를 안한 적은 없는 듯 하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것이 다니엘과 3명의 친구가 지식을 얻기 위해 가졌던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이 모범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과 학문을 쌓을 때, 단순하게 그것을 공부하는 시간만을 '노력'으로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지식보다 뛰어난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함으로써 그 지식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지식보다 뛰어난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지적 내용들이 흘러 나오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이해하고 연구하고 알아가려고할 때 다른 지식들이 따라오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들의 삶의 방식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 '각 방면의 학문에 있어서 이해력을 기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선용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지식을 얻기위해 자연에서도 그 학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며 주변 지식인들에게도 끊임없이 물어보고 책도 찾아보며 부지런하게 공부했을 것이다.

그들은 또 건강하게 생활했던 것 같다. '지력'을 얻을 수 있도록 생활 법칙을 따랐다고 하니 아무래도 자야할 때 자고 일어나야할 때 일어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갔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대단하고 본 받아야 하는 일이 그들이 이 지식을 얻고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대한 목적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이 일을 했다. 정말정말 멋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런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여기에 완성된 거룩한 협동의 원칙이 나타나 있으며 이것이 없이는 참된 성공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아무 쓸모가 없고, 인간의 애씀이 없이는 하나님의 수고가 많은 사람에게 전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몫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뜻을 정하고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지 결코 우리의 노력의 대용물로써 주신 것은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과 그 동무들과 협력하신 것처럼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실 것이다. 당신의 성령을 나누어 주심으로 그분은 모든 참된 목적과 모든 고상한 결심을 굳게 하실 것이다. 순종의 길로 행하는 사람들은 많은 방해에 직면할 것이다. 강하고 교묘한 감화가 그들을 세상에 붙들어 맬 지 모르나 주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사람들을 패배 시키려고 작용하는 모든 행위를 무용하게 하실 수 있으며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은 모든 유혹을 이기고 모든 난국을 극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 동무들을 바벨론의 위대한 사람들과 교제하게 하셔서 그들로 우상 숭배자들의 나라에서 당신의 품성을 나타낼 수 있게 하셨다. 어떻게 그들은 그처럼 큰 임무와 명예스러운 지위를 맡기에 적합한 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의 전생애의 특징은 작은 일에 충성함이었다. 그들은 가장 작은 의무에 있어서도 큰 책임을 맡았을 때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바벨론에서 당신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 다니엘을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를 세상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도록 부르신다. 일상 생활의 가장 큰 일에서처럼 가장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어떤 큰 일이 주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날마다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낼 기회를 잃는다. 날마다 그들은 생애의 작은 의무들을 성심 성의를 다하여 수행하기에 실패한다. 그들은 큰 재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큰 사업을 기다리며, 이와 같은 그들의 열망에 자족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의무가 다 중하다. 주께서는 봉사를 위한 모든 가능성을 정확하게 측정하신다. 사용하지 않은 능력들에 대해서도 사용한 능력과 똑같이 책임을 추궁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했어야 할 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고상한 품성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며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은총이나 거저 주심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기 수양과 고귀한 품성을 위하여 비천한 성질을 버리는 것과 하나님과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일의 결과이다.
히브리 청년들이 보여 준 절제 원칙에 대한 충실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다니엘처럼 담대히 바른 주장을 이행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순결한 마음, 강한 손,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악과 선 사이의 투쟁에는 끊임없는 경계가 요구되는 까닭이다. 사단은 모든 영혼들로 하여금 식욕에 방종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유혹을 가지고 시험한다. 몸은 품성의 건설을 위하여 마음과 정신을 계발시키는 가장 중대한 매개물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원수는 체력을 약하게 하고 퇴화시키는 데 그의 유혹을 주력한다. 이 점에서 그가 성공했다는 의미는 때때로 전 존재가 악에 굴복 당했다는 뜻이다. 육체적 성향이 보다 높은 능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분명히 파멸과 죽음을 초래할 것이다. 육체는 보다 높은 능력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정욕은 의지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의지 그 자체는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이성이 생애를 지배해야 한다. 지력과 체력과 수명은 불변의 법칙에 의존된다. 이 법칙에 순종함으로 인간은 자신을 정복하고 자신의 기호(嗜好)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을 정복할수 있다.

묵상

식욕과 정욕에 대해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도 투쟁하고 있다. 투쟁이 뭔가... 반 포기상태디고 의식도 없을 때도 많다. 그런데, 위 말씀에 정답이 제시돼 있다. '육체는 보다 높은 능력에 복종해야 한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식욕과 육체적 정욕은 우리의 '의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나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니엘과 3명의 친구처럼 우리는 기도에 기도를, 연구에 연구를, 노력에 노력을 해 우리의 '이성'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하며 그 '하나님의 성화된 이성'으로 우리의 몸을 우리의 생애를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상징한 고대의 의식 중에서는 흠 없는 제물만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릴 수 있었다. 그리스도를 예표 해야 할 희생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자녀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엡 5:27)는 “산제물”(롬 12:1)이 되어야 할 것의 예증으로 이를 지적하였다. 히브리의 존귀한 자들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벨론 궁정의 유혹적인 영향을 저항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무한하신 능력을 의지한 까닭이었다. 이교의 민족은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예증을 보았다. 

히브리의 존귀한 자들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벨론 궁정의 유혹적인 영향을 저항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무한하신 능력을 의지한 까닭이었다. 이교의 민족은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예증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경험에서 유혹을 이기고 타락 중에서도 순결을 지키는 원칙과 무신론과 우상숭배 중에서도 헌신하고 충성한 승리의 실례를 볼 수 있다. 다니엘이 가졌던 그 정신을 오늘날 청년들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한층 더 불리한 환경 아래서도 동일한 능력을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으며 동일한 자제력을 가질 수 있고 저희 생활에서 동일한 미덕을 나타낼 수 있다. 각종 형태의 관능적 쾌락이 쉽게 행해지고 또 이를 부추기는 대도시에서 방종하고 싶은 유혹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그들의 목적을 굳게 유지할 수 있다. 굳은 결심방심치 않는 경계를 통하여 그들은 영혼을 엄습하는 모든 유혹을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의를 행하려고 결심하는 자만이 승리를 얻을 것이다.
이 고상한 히브리인들의 필생의 사업은 얼마나 훌륭했는가! 그들이 유년 시절에 성장한 가정을 작별할 때는 얼마나 고상한 운명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충실하고 끈기있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으셨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내신 동일한 강력한 진리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청년들과 어린이들을 통하여 나타내시고자 하신다. 다니엘과 그 동무들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당신께 복종하고 전심으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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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미래, 하나님을 존중함, 죄를 향한 최초의 발걸음 (첫 발걸음)

성경/다니엘|2025. 3. 2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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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충성을 다한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과 연합할 때에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표본이다. 

그러나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은 우상숭배에 바쳤던 것이므로 이것을 먹는 자는 바벨론 신들에게 충성을 표하는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이 다니엘과 그 동무들로 하여금 그같은 충성을 표하는데 가담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 음식을 먹는 체하고 그 술을 마시는 체하는 것이라도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교(異敎)를 옷 입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 묵상: 죄에는 단 1의 '타협'도 없다. 체하는 척 하는 것도 죄이다.

그들은 향락과 방탕에서 기력을 약화시킴으로 감히 육체적·지적·영적 발전을 저해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나답과 아비후의 역사와 양피지에 기록된 모세의 오경(五經)에 수록된 그들의 부절제와 그 결과의 기록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사용함으로 자신들의 육체적·지적 능력에 해로운 결과가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니엘과 그 동무들은 저희 부모들로부터 엄격히 절제하는 습관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능성에 대하여 문책하실 것이며 결코 그들의 능력을 위축시키거나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 교육이 다니엘과 그 동무들로 하여금 바벨론 궁정의 부도덕한 강화 중에서도 자신들을 지키게 하는 방편이 되었다.

->  묵상: 가정에서의 '절제'교육과 그들의 재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을 배움으로써 그들을 둘러싼 유혹에 대해 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다니엘과 세친구였다. 내가 가진 재능을 하나님과 협력해서 꽃피우는 일이 나에게 요구된다. 

다니엘이 하려고만 했더라면 그 환경으로 보아서 엄격한 절제의 습관에서 떠날 수 있는 그럴 듯한 핑계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처럼 왕의 은총에 의존해 있고 그 권세에 예속된 자들에게는 왕의 음식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으며, 만일 하나님의 가르침을 고수한다면 왕의 노를 사서 그의 지위와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여호와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왕의 총애를 받게 되고 자신의 뛰어난 지력을 활용해서 세속적 번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보다 더욱 귀중했고 생명 그 자체보다 귀중했다. 그는 결과야 어찌되든지 그의 성실에 굳게 서기로 결심하였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 같은 결심은 세 동무들의 지지를 받았다.

-> 묵상 주저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그리고 세상의 어떤 귄위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히브리 청년들은 참람되이 행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함으로 하였다. 그들은 괴짜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나 하나님께 욕을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되고자 했다.. 최초의 잘못 디딘 발걸음이 다른 발걸음을 잘못 딛게 만들어서 마침내 하늘과의 연결은 끊어지고 그들은 유혹에 횝쓸려 버렸을 것이다.

-> 묵상 그들도 괴짜가 되기가 싫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욕을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그렇게 되고자 했다. 죄에 관해서 내딛지 않아야 한다. 최초의 발걸음.. 그 단 한걸음을 내딛지 않을 때 우리는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심중에 죄로 인해 충돌할 수 있다.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죄의 결과를 생각해보라. 그 죄를 지금 지을 수 있겠는가. 죄에 대한 최초의 발걸음을 내딛지 말자(기도하자-도와주시기를! 나의 의지가 돼 주시기를)

 

삼년 동안 히브리 청년들은 “갈대아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습득하기 위하여 연구하였다. 이 기간에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굳게 하였고 끈임없이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였다. 그들이 자기 부정의 습관을 고수하는 한편 목적 추구에 성실하고 근면하고 확고 부동하였다. 그들로 왕의 궁정으로 오게 하여,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 하지도 아니한 사람들과 교제하게 만든 것은 교만이나 야망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방 나라의 포로였다. 무한하신 지혜자께서 그들을 거기 두신 것이다. 가정의 감화와 신성한 교제로부터 분리된 그들은 칭찬 받을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였으니 이는 짓밟힌 백성의 명예와 저희의 주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여호와께서는 히브리 청년들의 확고 부동함과 자기 부정과 그들의 동기의 순결함을 귀중히 여기셨고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셨다.

묵상 모든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들은 자기 부정의 습관을 고수했고 정말 성실하고 정말 근면하게 살아갔다. 그리고 이에 대해 견인불발의 모습을 보였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시리라는 약속은 성취되었다. 다니엘이 동요하지 않는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에 예언하는 능력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는 궁정 생활의 임무를 위하여 인간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장래의 신비들을 알고 표상과 상징들을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의 세상 역사를 망라하는 사건들을 오는 세대들을 위하여 기록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묵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세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축복하신다.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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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음식절제, 유혹, 최초의 발걸음, 자제력>

성경/다니엘|2025. 3.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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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충성을 다한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과 연합할 때에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표본이다.

-> 인간은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

이국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그들에게 결정적인 품성의 시험이 이르러왔다. 그들은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줌으로 왕은 그들의 복지에 대한 자기의 은총과 염려를 표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은 우상숭배에 바쳤던 것이므로 이것을 먹는 자는 바벨론 신들에게 충성을 표하는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이 다니엘과 그 동무들로 하여금 그같은 충성을 표하는데 가담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 음식을 먹는 체하고 그 술을 마시는 체하는 것이라도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교(異敎)를 옷 입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 비록, 왕은 '은총과 염려'를 표시하려고 왕의 식탁에서 나온 음식과 술을 먹도록 권했으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것을 먹는 척, 마시는 척이라도 한다면 그것을 바벨론 신에게 충성을 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행동하는 일은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일로 판단했다.

 

들은 향락과 방탕에서 기력을 약화시킴으로 감히 육체적·지적·영적 발전을 저해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나답과 아비후의 역사와 양피지에 기록된 모세의 오경(五經)에 수록된 그들의 부절제와 그 결과의 기록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사용함으로 자신들의 육체적·지적 능력에 해로운 결과가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니엘과 그 동무들은 저희 부모들로부터 엄격히 절제하는 습관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능성에 대하여 문책하실 것이며 결코 그들의 능력을 위축시키거나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 교육이 다니엘과 그 동무들로 하여금 바벨론 궁정의 부도덕한 강화 중에서도 자신들을 지키게 하는 방편이 되었다. 부패하고 사치스러운 궁정 안에는 그들을 둘러싼 유혹들이 매우 강했으나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였다. 어떠한 권세나 어떠한 감화로도 저희가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행하신 일을 연구함으로 배운 원칙에서 그들을 동요시킬 수는 없었다.

-> 어린시절의 '자제력'에 대한 교육이 그들을 원칙에 굳게 서게 했다.

다니엘이 하려고만 했더라면 그 환경으로 보아서 엄격한 절제의 습관에서 떠날 수 있는 그럴 듯한 핑계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처럼 왕의 은총에 의존해 있고 그 권세에 예속된 자들에게는 왕의 음식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으며, 만일 하나님의 가르침을 고수한다면 왕의 노를 사서 그의 지위와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여호와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왕의 총애를 받게 되고 자신의 뛰어난 지력을 활용해서 세속적 번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핑계를 찾으려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었던 다니엘이다. 핑계를 대면 끝이 없다. 환경 탓, 사람 탓, 왕의 은총을 입고 있다는 탓, 왕의 노여움을 사면 안된다는 탓을 돌릴 수 있었던 다니엘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핑계를 찾지 않았다.

 

다니엘은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보다 더욱 귀중했고 생명 그 자체보다 귀중했다. 그는 결과야 어찌되든지 그의 성실에 굳게 서기로 결심하였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 같은 결심은 세 동무들의 지지를 받았다..최초의 잘못 디딘 발걸음이 다른 발걸음을 잘못 딛게 만들어서 마침내 하늘과의 연결은 끊어지고 그들은 유혹에 횝쓸려 버렸을 것이다.

-> 다니엘에게는 하나님께 인정 받는 것이 가장 귀중했다. 그리고 그 일은 다니엘에게 목숨보다 귀중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성실에 굳게 서기로 결심했다. '최초의 발걸음'이 중요하다. 그 잘못된 발걸음을 내딛지 않아야 한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도 그는 '경험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경험했다. '죄'를 경험하지 말아야 한다. 최초의 발걸음을 절대로 딛어서는 안된다. 그 발걸음으로 인해서 다른 발걸음도 잘못 딛게 된다. 그리고 하늘과 연결이 끊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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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하나님의 용서, 새로운 언약, 마음에 기록된 법도, 이스라엘 10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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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매 7년마다 초막절에 율법책의 말씀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게 하신 여호와의 직접적인 명령과 일치하였다. 

위 말씀은 신명기 31장 9-11절의 내용이다.

그 후 모세는 이 모든 율법을 기록하여 여호와의 법궤를 운반하는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주고
10-11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여러분 은 매 7년의 마지막 해, 곧 모든 빚을 면제해 주는 해의 초막절에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예배처로 정하신 곳으로 다 모이면 그들에게 이 법을 낭독해 주십시오.

 

다윗의 치세와 솔로몬의 초기의 통치 기간에 이스라엘에게 힘을 준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존경심이었으며 엘리야와 요시야의 시대에 일어난 개혁은 살아 계신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였다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이라... 어떤 의미일까...? 말씀에 대한 존경심이라함은 말씀을 존중하고 높게 생각하는 마음인 듯 하다. 그 말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그 말씀이 높고 꼭 순종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우리들도 누군가 높은 사람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말할 떄 그것을 가치있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는가. 그것에서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라면 더욱 그래야할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그의 노력을 기울여 개혁을 호소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부요한 유산인 바로 이같은 진리의 말씀에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유산은 재산이나 권위나 명예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를 기억하자.

* 갈대아인

남부 바벨론(바빌로니아*)의 한 지역과 그 주민들을 가리키던 이름이 나중에는 온 바빌로니아에 대해 쓰이게 되었다. 반유목민 부족인 갈대아 사람들은 아주 일찌감치 북부 아라비아와 페르샤 만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성읍 우르(창11:28)를 차지했다. 한동안(주전 800년쯤) 이들은 앗수르(앗시리아*)사람들의 봉신들이었다. 갈대아 제후 므로닥발라단이 일시적으로(주전 721-710년, 703-702년. 사39장 참조) 바빌로니아의 통치권을 휘어잡았다. 유명한 느부갓네살 2세의 아버지인 나보폴랏살(주전 626-605년)이 다스릴 때 갈대아 사람들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웠다. 그 때부터 갈대아는 바빌로니아와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천문학적이고 점성술적인 지식으로 이름난 사람들이어서, '갈대아 사람들'이란 호칭을 제사장들과 점성술가들과 학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쓰게 되었다(단2:103:84:45:7,11의 아람어 본문이 그러하다).

 

* 하나님께서 국토 회복을 상징하도록 땅을 사라고 하자 땅을 샀던 예리미야. 그는 이 일로인해 시련을 당했다.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자 없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렘 30:10, 11, 17)

 

이스라엘 열두지파

 

 

하란의 외손들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

 하란의 외손들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ㅣ하란의 외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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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세상의 모든 다른 백성들보다 하늘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인정되었던 사람들이 열방의 목전에서 천하게 되고 그들의 장래의 행복을 위하여 꼭 필요한 순종의 공과를 방랑 중에서 배워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 교훈을 배울 때까지는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을 그들을 위하여 행하실 수 없었다

-> '순종의 공과'를 백성들은 꼭 배워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 교훈을 배울 때까지는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을 그들을 위해 하실 수 없었다.

* 비록,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지만 구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

476p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홉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과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괴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도를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10-14, 23-25, 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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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금) 말씀묵상 <실로, 엘리, 비판, 예례미야,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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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철저한 개혁만이 절박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밝히신다.

 

성전과 그 봉사에 걸고 있는 그들의 신뢰는 헛될 것이다. 의식과 예식은 죄를 속할 수 없다. 저희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마음과 생활 습관의 개혁만이, 계속된 범죄의 불가피한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엘리의 죄는 성직에 있던 그의 아들들의 죄악과 전국 각처에 성행하던 악을 가볍게 넘긴 것이었다. 그가 이러한 죄악들을 시정하는 일을 태만히 함으로 이스라엘에게 무서운 재난을 가져왔다. 그의 아들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엘리 자신도 목숨을 잃었으며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취하여 감을 당하였고 백성 중 3만 명이 살해되었다. 이 모든 일은 죄를 견책하지 않고 억제하지도 않은 채 성행하도록 버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악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법궤가 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에 대한 승리가 보증되어 있다고 헛되이 생각하였었다. 예레미야의 시대에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유다 거민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 봉사를 엄격히 준수함으로 저희 악한 행실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공정한 형벌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짙었다.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책임있는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교훈이 되는가! 진리의 사업에 수치를 가져오는 죄악을 충실히 다루어야 함에 대한 얼마나 엄숙한 경고인가!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계명에 대하여 표면상으로 나타내는 저들의 경의가 그들을 하나님의 공의의 처벌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악에 대하여 책망 받기를 거절하지 말며 행악의 마당을 청소하기에 너무나 열심이라고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지 말라.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불의에서 떠나기를 요청하신다. 회개하고 즐겨 순종하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오늘날 남녀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에게 내렸던 것과 같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묵상 -> 죄악을 가볍게 넘긴다면 무서운 재난으로 이어진다. 나의 삶에 죄악이 있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시정하자. 가정이든 어디든. ‘악’에 대한 책망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누군가로부터 내게도 있다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 혹은, 누군가의 비판(무지성 비판 제외)에 대해서 방어기제보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피라는 ‘섭리’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저희에게 평탄한 일과 허위의 예언을 말하지 않는 예레미야에게 분노를 발하였다.

 

묵상 -> 나에게 기분 좋은 소리만 듣고 싶은 요즘이다. 약간의 비판이나 지적에도 기분이 상한다. 말씀 중 양심을 찌르는 말이 있으면 듣기 싫어진다. ‘나는 아니야’라고 핑계댄다. 그런 마음과 태도는 위의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태도와 흡사하다. 곧 나에게 ‘평탄한 일’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아프지만 영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씀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구하자.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예레미야

 

수줍어하고 겁이 많은 성격을 타고난 예레미야는, 계속적으로 뉘우치지 않는 자기 민족을 볼 필요가 없는 평화롭고 조용한 은퇴 생활을 갈망하였다. 그의 민감한 영혼은 그의 기별을 멸시하고 그들의 회개를 위한 그의 수고를 경시하는 사람들이 퍼붓는 조롱의 화살에 계속 찔림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애 3:14).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선지자는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믿음으로 선언하였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매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렘 20:11, 13). 예레미야는 청년 시절과 또한 봉사의 후기 동안에 겪은 경험으로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다는 교훈을 배웠다.

 

묵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했다. 겁이많고 수줍음이 많은 예레미야의 성격상 민감하게 내적으로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는 믿음으로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가 날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하나님이었다. 렘20:11,13에 고백한 그의 믿음 선포를 배우도록 하자. 또 예레미야는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는 교훈을 배웠다. 즉, 인생의 길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지도함에 따라 우리는 걸어야 한다.

 

그는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렘 10:23, 24)고 기도하기를 배웠다.
예레미야는 시련과 슬픔의 잔을 마시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와 고통중에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말하도록 유혹을 받았을 때에도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회상하고 의기 양양하게 부르짖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18, 22-26).

 

묵상 예레미야의 고백을 본받자. 하나님의 섭리를 회상하고 의기양양하게 부르짖었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인도해주신 경험을 행복하게 회상하고 믿음으로 부르짖자. 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다!

Q. 417P

현대 이스라엘은 지금의 우리겠지?

 

 

 

 

실로Shiloh

성경은 실로의 위치에 대해서“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삿21:19)라고 말한다.실로는 세겜과 벧엘 중간에 위치해 있는 성읍으로서 여호수아 시대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16:6).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갖고 다녔던 회막,곧 성막을 실로에 세웠다(수18:1).또한 미리 땅을 분배받았던 요단강 동쪽의 르우벤,갓,므낫세 반 지파와 요단강 서쪽의 유다,에브라임,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지파,즉 베냐민,시므온,스불론,잇사갈,아셀,납달리,단 지파는 이곳 실로에서 제비를 뽑아 땅을 할당받았다(수18:2-10; 19:51; 21:2).이처럼 실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착할 때 신앙과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수22:9, 12).

사사기 시대에도 하나님의 집,곧 언약궤가 있는 성막은 여전히 실로에 있었다(삿18:31).사사 시대 말 한 레위인이 베냐민의 기브아에 머물렀는데,불량배들이 찾아와 성관계를 맺기 원하자 레위인은 자기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주었다.레위인은 아침에 첩이 죽은 것을 알고 그 시신을 가져다가 열두 덩이로 나누어서 이스라엘의 온 지파에게 보내어 베냐민 기브아 불량배의 죄악을 고발했다.이로 인해서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그 결과 베냐민 지파의 용사는 겨우600명만 살아남았다.열두 지파 공동체였던 이스라엘은 한 지파가 멸절당하는 잘못된 사태를 깨닫고 회개하지만 스스로 자기들의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기에,어쩔 수 없이 살아남은 베냐민 지파 남자들은 길르앗 야베스 처녀400명을 실로로 데려오고 부족한 처녀는 실로에서 행해진 축제 때에 춤추러 나온 여자들 중에서 얻었다(삿19-21장).

실로의 지위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까지 유지되었다.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언약궤와 성막이 있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간구했고,아들 사무엘을 낳자 젖을 뗀 후 실로에 있는 당시의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겼다(삼상1:24).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은 실로에서 드려지는 제사 때에 악행을 행했던 반면(삼상2:12-17),어린 사무엘은 실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삼상3장).이때 블레셋 족속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서 이스라엘은 에벤에셀에,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다.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 전쟁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출전했지만,블레셋 족속에게 패해서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언약궤는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삼상4:1-11).비록 성경에는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만 나오지만,고고학자들의 발굴에 따르면 실로도 그 당시에 파괴당했다.아마도 블레셋 족속의 일부는 언약궤를 빼앗아 돌아가고,일부는 실로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블레셋 족속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다가(삼상5장)결국 벧세메스로 돌려보냈으며(삼상6:1-18),벧세메스에 있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다(삼상6:19-21).언약궤가 블레셋 족속에게서 이스라엘로 되돌아왔지만,더 이상 실로로 안착되지 않았는데,비록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실로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파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실로가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다.실로에는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있었다.그래서 솔로몬이 죽은 후 세워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실로에 있는 선지자 아비야에게 아내를 보내서 아들이 나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왕상14장).실로 사람 아히야는 여로보암 집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실현되었다(왕상14:10; 15:29;대하10:15).

수세기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실로와 언약궤를 예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집 성전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는 예루살렘에게 경고하였다(렘7:12, 14).나중에 하나님의 동일한 메시지를 다시 들은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다(렘26:6-9).이후에도 실로에는 사람들이 거주했는데,왜냐하면 예레미야가 실로 출신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렘41:5).

실로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다.그것은 야곱이 죽기 전 유다에 대해 축복하는 내용에서 나온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여기서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표현은“실로가 오시기까지”이다.실로가 분명히 지명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마치 사람처럼 번역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부분은“실로가 오시기까지”, “그가 실로에 오시기까지”, “그가 통치 지팡이를 쥔 자에게 오기까지”(시리아역),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새번역),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공동번역 개정판), “공물이 그에게 올 때까지”(until tribute is brought to him, NEB, JPS, NRSV)처럼 매우 다양하게 번역된다.일부는 실로를 지명으로 보기도 하지만,대부분은 앞서 언급된“규”와“통치자의 지팡이”와 연결된 통치자로 해석하며,일부는 이 통치자를 메시아로 이해한다.

오늘날 실로에 가면 성막이 있던 터를 볼 수 있다.실로에 안착된 성막은 광야 생활에 갖고 다니던 이동용과는 조금 달랐던 것을 추측된다.왜냐하면 어린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삼상3:15).문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집의 문과 같은 형태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성막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성경 구절

여호수아16:6; 18:1, 8, 9, 10; 19:51; 21:2; 22:9, 12;사사기18:31; 21:12, 19, 21;사무엘상1:3, 9, 24; 2:14; 3:21; 4:3, 4, 12; 14:3;열왕기상2:27; 14:2, 4;시편78:60;예레미야7:12, 14; 26:6, 9; 41:5

 

이 지도의 18번이 실로이다.

출처:http://www.generationword.com/Israel/Israel_site_page.htm

 

실로 입구.

 

비잔틴 시대 교회터.

 

실로 유적터 전경.

 

실로 성전터. 이곳에 성막이 안치된 것으로 보인다.

 

실로 성전터.

 

실로 발굴터. 2012년 6월에 방문했을 때 여전히 발굴 중이었다.

 

성막 모형.

실로 입구에 들어서면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방이 있으며, 그 옆에 성막 모형이 유리상자 안에 있다.

[출처]실로|작성자hesed414

[출처 https://blog.naver.com/hesed414/15015667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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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목) 말씀묵상 <예례미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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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저희 운명에 조용히 복종하고 가능한 한 저희 종살이를 즐겁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고는 이러하셨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정원을 만들고

442p그 열매를 먹으라 …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이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렘 29:5-7).

 

하나님께서는 젊은 예레미야가 자기 임무에 충실하고 큰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를 위하여 굳게 설 자임을 보셨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충성스러움을 보여 주었고 이제는 십자가의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야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사자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미증유의 배도의 시대에 그는 생활과 품성으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모본을 보여야 하였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시고 불러주신다. 하나님께서 불러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예레미야처럼 나의 능력이 무능하다고 생각될지라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예레미야는 때때로 현재의 비참한 광경 저 너머로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의 땅에서 석방되어 다시 시온에 심기움을 받을 미래의 영광스로운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들과의 언약 관계를 새롭게 하실 때를 예지하였다.

 

-> 예례미야는 시온에 심기울 백성들을 바라봤구나..

 

그가 선지자의 사명에 부르심을 받은 데 대하여 스스로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렘 1:9, 10)다고 하였다.
“건설하며 심게 하였”다는 말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 말로써 예레미야는 회복하시고 치유하시는 여호와의 목적을 확신하였다. 다가올 여러 해 동안에 전해야 할 기별들은 엄격하였다. 절박한 형벌에 대한 예언들을 두려움 없이 전하여야 하였다. 시날 평야에서 “재앙”이 “일어나 이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할”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무리가 나를 버”렸은 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고 선언하셨다(렘 1:14, 16). 그러나 선지자는 이 기별들을 저희 행악을 버릴 모든 자들을 용서하시리라는 보증과 함께 전하여야 하였다. 예레미야는 현명한 대 건축가처럼 그의 필생의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유다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회개함으로 그들의 영적 생애의 기초를 넓고 깊게 놓도록 격려하였다.

 

예레미야는 어느 다른 선지자보다 더 모세의 율법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이것이 어떻게 국가와 모든 개인의 마음에 최고의 영적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고 간청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렘 17:24, 25)라고 선언하셨다.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이러한 번영이 약속되었지만 이 약속에는 그 거민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충실하지 않을 때에 그 성읍에 내릴 무서운 형벌에 대한 예언도 첨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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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수) 말씀묵상 <요시야, 여로보암, 솔로몬, 힐기야>

성경/말씀 묵상|2025. 3. 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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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는 권고를 받았다.

요시야는 성년이 되면서부터 왕으로서의 그의 지위를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을 높이는데 이용하고자 노력하였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바뀌게 된다.

할 수 있는 한 그들 속에 하늘의 율법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계발시키고자 노력하였다

-> 묵상: 주님 저에게도 이런 마음을 주세요.

그러나 왕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까닭에 여호와께서는 용서와 은혜를 구한 그의 기민함을 인징하실 것이었다. 왕에게 기별이 전달되었다.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22:19, 20)

-> 묵상 진정한 회개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늘의 응보의 형벌을 선고하시면서도 여호와께서는 회개와 개혁의 기회를 거두지 아니하셨다. 요시야는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기꺼이 당신이 선고하신 형벌을 은혜로 경감시키실 것을 깨닫고 단호한 개혁을 일으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즉시 대집회를 준비하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장로들과 재판관들을 일반 백성과 함께 초청하였다. 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함께 성전 마당에서 왕을 만났다.

힐기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제대로 도운 대제사장
‘여호와는 나의 유업이시다’라는 뜻의 힐기야는 당시 제사장들이 흔히 사용하던 이름이다. 그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요시야 시대를 살면서 왕의 통치를 매우 지혜롭게 보좌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요시야 왕을 특별히 잘 보좌했다는 것은 왕이 추진하던 정책, 즉 종교개혁 정책이 중도에 좌절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하나님의 에 합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성전보수 공사를 단행했다.
그런 와중에 성전의 한 켠에서 모세의 율법책이 발견되는 큰 수확을 얻게 됐다(왕하 22:8~14).
학자들은 모세오경이 이 때 발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서 요시야 왕은 이 율법책 발견으로 신앙개혁의 강력한 동기를 제공받았다고 한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힐기야 대제사장은 개혁이 엇나가지 않도록 상당한 버팀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그의 개혁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역대하 34장18절을 보면, 요시야는 먼저 하나님 앞에 겸비했고, 이어 31절 이하에는 모든 백성들이 참가한 가운데 여호와의 언약을 체결하였으며, 33절을 보면, 모든 우상을 파괴했다고 했다.
모세 율법책을 발견한 이후로 진행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순서상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시에 언약을 회복한데 이어 우상을 척결했다고 결론 내린다.
기야는 바로 국정수행 최고 책임자인 요시야 왕이 올바른 개혁을 추진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힐기야는 성전보수 공사 진행을 총괄하던 책임을 맡았는데 심지어 모든 재정적인 문제까지 관리했다고 한다. 왕과 신하들로부터 받은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훌륭한 왕 곁에는 늘 신앙깊고 사려깊은 제사장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아사-아사랴, 여호사밧-예후, 요아스-여호야다 등이 그들이다.

출처 : 아이굿뉴스(http://www.igoodnews.net)

 

여로보암 

여로보암은에브라임 산악 지방에서 살다가 세겜을 세우고 거기서 살다가 다시 나와 브니엘을 세웠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드리고르호보암에게 갈 게 될걸 알고 결국은 자신을 다시 배신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베델(Bathel)과 단(Dan)에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으며 사제는 레위 제사장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을 임명하였다. 또한 여덟째 달 십오일을 절기로 정해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결국은 온 민족을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끌었다(열왕기상 12:31-33).

매우 여러 해 전 여로보암 앞에서 선언된 예언은 이제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야 하였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솔로몬

감람산 남쪽 비탈, 모리아산에 있는 아름다운 여호와의 성전 맞은편에는

405p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는 그의 아내들을 기쁘게 하고자 세웠던 사당들과 우상들이 있었다

 

요시야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았을지라도 요시야의 열심이 지난 세대의 범죄를 속할 수 없었고 왕의 추종자들이 나타낸 경건이라 할지라도 우상숭배로부터 참 하나님의 예배로 돌아서기를 완고하게 거절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유월절을 지낸 후 10년 이상 요시야는 계속 통치하였다. 그는 39세에 애굽 군대와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여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되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대하 35:24,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왕하 23:25, 26).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나라의 거민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저희가 좋은 환경 아래서 배우기를 거절하였던 교훈을 거기서 배워야 할 때가 신속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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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말씀묵상 <모이라, 일상에서 즐거움 얻는 방법>

성경/말씀 묵상|2025. 3. 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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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셨나이다.

 

-> 이 말씀은에서 ‘기름받은 자’는 하박국 자신인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합3:17-19)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 임이니라”(습 1:17, 18).

 

->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질투’의 의미는?

 

모일지이다 모일지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2:1-3).

 

-> 왜 ‘모이라’고 했을까.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19, 20).

 

-> 하나님께서 ‘모이게’해주신다. 또, 수욕받았던 자가 명성과 칭찬을 얻고 하나님으로 인해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천하 만민 중에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는 표현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믿음안에서 잘 성장한다면 세상사람들도 그에게 명성과 칭찬을 표현할 것이라는 의미일까?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4-17).

 

-> 하나님은 나로인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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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목) 말씀묵상 <선지자와 왕 '므낫세와 요시야'>

성경/말씀 묵상|2025. 3.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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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안전히 피난처를 찾을 것이다.선지자들은 계속해서 층실하게 경고와 권고의 기별을 전하고 두려움없이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하였으나

383p그 기별들은 조롱을 받았고 타락한 유다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묵상: 타락한 사람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피난처를 찾는다.

 

그러나 이 회개가 비록 괄목할 만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여러 해 동안 우상숭배의 행습으로 부패된 나라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 죄의 결과는 남는다. 회개를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지만 그 사람의 죄로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고 회복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한”(왕하 22:2) 까닭이었다.

 

->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

 

그 때에 장래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자들의 생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통치하는 나라들의 정세를 기이하게 조절하셔서 바벨론으로 하여금 통치권을 계승하게 하실 것이었다. 이 두렵고 무서운 갈대아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채찍으로서 유다 나라를 돌연히 습격할 것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세상 나라의 정세까지도 기이하게 조절하시는구나.

 

이 무서운 형벌 중에서도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어떤 방법으로든 성취될 것을 확신한 하박국은 여호와께서 나타내신 뜻에 머리숙여 복종하였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라고 하박국은 부르짖었다. 그리고 믿음으로 머잖은 장래에 일어날 험악한 광경 저편을 내다보며, 당신을 신뢰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겠다는 귀중한 약속을 굳게 붙잡고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합 1:12)고 첨가하여 말하였다. 이와 같은 믿음의 선언으로 하박국은 자기의 사정과 믿는 모든 이스라엘의 사정을 자비심이 많으신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였다

 

-> 하박국은 믿음을 선언하였고 자기사정과 믿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다.

 

굳센 믿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이일은 하박국의 유일한 경험은 아니었다. 일찍이 그는 장래에 관하여 명상할 때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리라고 말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롭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1-4).극심한 시련의 때에 하박국과 모든 거룩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굳게 했던 믿음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을 유지시키는 믿음과 동일한 것이다. 가장 어두운 시간과 가장 험악한 환경 아래서도

387p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영혼을 모든 빛과 능력의 근원에 머물러 있게 할 수 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그의 소망과 용기는 새롭게 될 수 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낙담하거나 흔들리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기대 이상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여러가지 필요를 충족시킬 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시험받는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마련된 풍성한 준비에 대하여 감동적인 증언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하나님의 보증이 주어졌다. 감사와 신뢰로 이 시험을 마친 하나님의 종은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10)고 응답하였다.우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증거한 믿음 즉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당신께서 정하신 시간과 방법으로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을 간직하고 계발하여야 한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은 우리 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그 때에 최종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처럼 보이고 낙담하게 하는 환경에 의하여 영혼이 압박을 당하고 신임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실패할지 모르나 미증유의 배도의 시대에 유다를 격려하려고 노력한 선지자와 같이 우리도 굳게 믿고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고 선언하자.

 

-> 약한데서 나의 믿음이 온전하여 짐이라. 약한 것을 자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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