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악의 문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학습목표
깨닫기: 악의 문제는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을 따라 존재하는 문제이다.
느끼기: 하나님은 악의 문제도 사랑의 방법으로 해결하실 것이며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행하기: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어려움 중에도 자유의지로 그분을 사랑하고 따른다
2월 9일(일)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Q) 사람들 속에 있는 죄악을 보면서 정말 죄가 무서운 것이구나를 느낀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볼까요?
<삼풍 백화점 사건 - 원래 삼풍백화점은 삼풍쇼핑이라는 이름으로[9] 바로 옆에 있던 삼풍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10]로 설계 건축 중이었음. 그런데, 건축주가 갑자기 마음을 변경해서 건물용도를 종합상가가 아닌 백화점으로 변경할 것을 시공사에 요구했음. 그러나, 시공사는 건물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증축 거부. 건축주는 이에 계약 중도 파기하고 자신의 운영사로 건축을 이어나갔음. 원래, 백화점 같은 복합 건물은 설계 변경 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적인데 건축주는 그저 자신의 욕심 때문에 독단적으로 구조설계를 변경. 그 한 인간의 무서운 재물에 대한 욕망과 죄로 인해 무고한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 전쟁 재외 한국 역사상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한 사건을 보면서 죄가 참 무서운 것이구나를 느낌.
본문말씀1
욥기 30: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본문말씀2
시편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마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레미야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정도 있다.
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2.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3.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하시는데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왜 악한 사람들이 이세상에서 더 이익을 얻는가.
이런 생각은 무신론자들도 갖을 수 있지만 본문 말씀은 악인이 번성하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는 문제가 성경에서도 있었음을 말해준다
Q.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공기도 보이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다.
Q. 내가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왜 하나님은 응답을 안해주시는가?
우리가 부모가 됐다고 가정을 해보고. 부엌에서 칼질을 하고 있는데 사랑스러운 아이가 와서 아빠 나 칼좀 줘보세요. 갖고 놀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줄 부모가 있을까요? 아이에게 줬을 때 이것이 주어지면 안된다는걸 부모는 알죠. 하지만, 아이는 왜 부모님이 안주느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부모의 이해의 영역과 아이의 이해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토록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나의 영생과 구원의 길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응답을 안해주실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아픈데 그것의 회복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는 또 다른 착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돼 하나님을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말 성경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죠. 너가 기도가 응답이 안돼 정말 슬펐구나.. 그런데, 성경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 다윗도 그랬고 예수님고 그랬어. 하면서 말씀으로 인도한다면 오히려 신앙이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교과내용>
왜 많은 경우에 악인이 번영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이익
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가? 왜 의로운 사람이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는가? 악이 활개
칠 때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거
나 심지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이러한 질문이나 더 일반적인 악의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라도, 우리
는 분명히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악과 그 편만
함을 과소평가하는 식으로 넘어가려 해서는 안된다. 악은 매우 나쁜 것이며, 하나님
은 우리보다 훨씬 더 악을 미워하신다.
<굵은 글씨 함께 읽기>
특별히 하나님께서도 악에 의해 고통당하셨으며, 이 놀라운 사실이 십자
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강력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이런 가운
데도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악의 근원인 사탄을 물
리쳤고, 결국에는 악을 완전히 없애실 것이다.
악의 문제는 오늘날만 아니라 성경에서, 또 예수께서도 고통당하신 문제이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는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영감의 교훈>
주께서 요구하시는 능력 - “주께서는 그들이 고난에 대해 슬퍼하지 않고 곤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요구하신다. 아무 일에나 낙담하지 말고 모든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비할 데 없는 그의 사랑의 금 사슬로 그들을 하나님의 보좌에 붙들어 매셨
다. …저희는 악을 저항하는 능력과 또한 세상이나 죽음이나 혹은 지옥이라도 지배할 수 없는 능력,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처럼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여야 할 것이다”
(복음 교역자, 39)
2월 10일(월)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Q) 모든 것이 이해 돼서 믿는 성도들은 없을 것입니다. 아직 이해 되지 않는 일들(갑작스러운 죽음) 에 대하여 나누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의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 볼게요
우리 교단에서 오래된 이야기인데, 간호학과였던 학생분이 선교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재림연수원에 기도를 하러 갔다가 청년이 끌고 내려오던 화물차에 치여 죽는 일이 있었어요. 목사님의 자녀였죠. 참..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선교를 하고 싶었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다른 곳도 아닙니다. 연수원에 기도하고 말씀보러 갔는데 그런 사고를 당한 것이죠. 참담하고 슬프고 이해가 안되는 오늘 교과 제목에서의 ‘알 수 없는 일’인데.. 딸을 여읜 아버지 그 목사님께서는 오히려 책을 통해 그것을 드러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일을 통해 은혜받고 그 딸을 추모했음. 그 책이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 재림 연수원에 가면 큰 돌에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는 말씀이 있는데 아무튼.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을 겪었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참고말씀
욥기38:1-6
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참고말씀2
욥기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은 많은 고통과 시험을 겪고 왜 이런 고난이 자신에게 닥쳤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했어요. 그에 대한 대답이 우리가 방금 읽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이 약간 동문서답같아요.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물어보시고 땅의 기초를 놓는다는 것이 뭔지를 뜬금없이 물어보세요.
알 수 없는 것을 물으시는 겁니다.
참고말씀 2에 보면 욥이 이제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뒤의 성경절을 보면 욥이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이제 내 생각보다 내 논리보다 큰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겁니다. 이렇게 더 큰 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욥은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욥은 ’이해‘로 신앙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겁니다. 물론, 신앙에서 이해와 납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가장 밑바닥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바로 세워져야 하는 겁니다.
믿음은 정보, 지식이 아니고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그분께 신뢰하고 맡기는 겁니다.
<교과내용>
교훈 답을 모른다 해서 좋은 답이 없다거나, 답이 오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
다.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아도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선함을 신뢰해야 한다
<영감의 교훈>
설명할 수 없는 신비 - “그들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이런 일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의심한다. 여기에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불신과 의심에 싸여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 있고 구원에 필수적인 진리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다. 죄의 존재에 관하여 질문하면서 하나님께서 결코 계시하지 않으신 것까지 알아내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있다”(각 시대 의 대쟁투, 492).
2월 11일(화) 회의적 유신론자
Q) 허망하기는 하겠지만 살면서 꾸었던 꿈중에서 가장 좋았던 꿈을 꾸었던 경험에 대해 나누어볼까요?
’회의적 유신론자‘ 지금 우리 세대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지만 얼굴도 희망차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하나님에 대해 관심도 없고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
이렇게 살아가니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하게 되고 거절하게 되는 상황.신앙이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을 하는겁니다. 점점 신앙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살다가 신앙을 포기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성경말씀에 두셨어요. 우리에게 희망이 될만큼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싶어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과 연결돼 있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이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궁금증에 대한 비밀을 성경 말씀에 두셨다는 겁니다.
<영감의 교훈>
공정한 보응의 날 - “악한 자가 번영하고, 그들이 당신께 대한 적의를 나타내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죄악의 잔이 찰 때 모든 사람이 그들의 완전한 멸망 가운데서 그분의 공의와 자비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보복의 날, 곧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의 백성을 학대한 모든 자가 공정한 보응을 받는 날, 그의 충성된 백성에게 행한 모든 잔학하고 불의한 행위가 그리스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인정되어 벌을 받는 날이신속히 다가오고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 48).
2월 12일(수) 자유의지론
Q.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는 강요되는 사랑은 기쁨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랑을 강요 받았던 경험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본문말씀
창세기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교훈>
자유의지론은 그것을 오용한 결과 악이 생겼다고 본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것
을 주신 것은 고귀한 사랑, 선, 기쁨도 그것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감의 교훈>
자유의지를 주시는 이유 -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 정부의 기초이므로 모든 지성적 존재들의 행복은 그들이 이 의의 대원칙과 완전히 일치함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사랑의 봉사 곧 당신의 품성을 인식함으로 솟아나는 봉사를 원하신다. 그분은 강제적 굴종을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모든 존재로 하여금 당신께 자원하여 봉사하도록 그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신다”(부조와 선지자, 34).
2월 13일(목) 사랑과 악
본문말씀1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본문말씀2
요한계시록 21:3-4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참고말씀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다.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
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탄의 기만적 세력이 깨어져야 했다.
이것은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이 사탄의 성
품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시대의 소망, 22).
<교과내용>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것은 그것이 사랑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이 자유의지를 오용하는 것이 악의 원인이다.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있
지만, 하나님이 그토록 악을 미워하시면서도 잠시 악을 허용하신 것은, 악의 가능
성을 배제하게 되면 사랑의 가능성도 배제하게 되기 때문이다. 악이 초래한 문제가
모두 드러나기 전에 그것을 소멸시킬 수 없는 것은 사랑에 필요한 신뢰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감의 교훈>
“오늘날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지적 존재로서의 특전을 박탈하는 것이며, 단순한 자동인형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의지를 강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도덕
적 행위자로 창조되었다. 다른 모든 세계의 거민들처럼, 그는 순종에 대한 시험을 받아야 하였다. 그러나 …그가 대항할 수 없는 어떤 유혹이나 시련도 그에게 오도록 허락되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331)
참고말씀2 <죄가 용납된 이유>
“비록 사탄이 하늘에서 추방되었을 때에라도 무한하신 지혜자는 그를 멸하지 않
으셨다.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봉사뿐이므로, 당신의 피조물들
의 충성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에 대한 확신에서 우러나와야 했다. 하늘과 여러 세
계의 거민들은 그 당시에 죄의 참 성질과 결과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
로 사탄의 멸망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를 즉각적으로 멸
망시켰더라면 사랑에서가 아닌 두려움에서 하나님을 섬겼을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기만자의 영향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반역의 정신도 완전히 근절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궁한 세대를 통한 온 우주의 복지를 위하여, 사탄이 그의 원
칙들을 충분히 발전시켜서 하나님의 정부에 대한 그의 비난을 모든 피조물이 바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그분의 율법의 불변성
에 대하여 영원히,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남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사탄의 반역은 앞으로 오는 영원한 세월을 통하여 우주에 한 교훈, 즉 죄의 본질과
그 무서운 결과에 대해 영속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증언이 될 것이었다. 사탄의
통치가 낳은 결과와 그것이 사람들과 천사들 모두에게 끼친 결과는 하나님의 권위를
버린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
조물들의 행복이 그분의 정부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거할 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이 무서운 반역의 경험의 역사는 모든 거룩한 존재자들에게 영원한
안전 장치가 되어 저들이 범죄의 본질에 관하여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며, 범죄하
거나 그 죄의 형벌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42).
결론
악의 문제는 예수님도 당면하셨으며, 우리는 답을 알 수 없는 많은 문제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것이 답이 없다는 뜻은 아니며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 악의 가능성에도 그분이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사랑, 선한 것도 자유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악의 문제도 사랑의 원칙을 따라 대하시고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성소를 볼 때 우리는 정의롭고 심판하시는 주님을 보며 선악의 대쟁투 가운데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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