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24장, 이삭과 리브가

성경/창세기|2020. 11. 2. 08:38

창세기 24묵상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이 그의 종을 통해 이삭의 신붓감을 찾는 과정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먼저 보내사라며 믿음의 말을 장면도 은혜롭고 그의 종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리브가를 찾는 과정도 은혜롭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지가 믿음을 통해 선택한 신붓감을 자신의 아내로 취하기를 전적으로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이 닮고싶었습니다.

이삭은 어린시절에도 아브라함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일에도 순종했던 바 있습니다. 제가 이삭의 모습에 왜 더 크게 감명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니 제가 아버지께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던 이삭,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던 예수님.. 저도 이제 순종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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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

성경/창세기|2020. 11. 2. 08:37

창세기 19장 묵상 19장에는 롯이 거주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으로 변했고 롯과 두 딸은 아브라함의 기도와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받았습니다. 롯은 비록 두 딸을 죄악된 거주민들의 악환 감화에서 지켜냈다고 생각(‘남자를 모르는’) 했지만 그들의 악한 감화에서 완전하게 두 딸을 보호할 수 없었음이 ‘33-근친상간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롯은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의 가족이었지만 그의 유일한 후손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족속이었던 모압과 암몬족속이었습니다. 쾌락과 재물에 전념했던 롯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살리시는 분이지만 죄의 결과는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임을 더 분명히 알게됐습니다. 죄의 무서움을 알고 두려워하여 나의 지금의 발걸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발걸음인지 영원한 죽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인지를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여 내딛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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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의 시험 2

성경/창세기|2020. 11. 2. 08:35

13믿음의 시험묵상2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찾으려고 했다면 핑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핑계로 피난처를 찾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공평하고 의로우신 분임을 알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마음에서만 머물지 않았고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했지만 결코 고통이 없는 순종은 아니었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온 밤을 기도로 지새우고 갈등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끝내 순종했고 여호와이래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믿음대로 높은 표준에 올랐고 오늘날까지 그의 믿음은 위대한 믿음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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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묵상] 창세기 17장, 아브라함의 시험 1

성경/창세기|2020. 11. 2. 08:3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로 둔갑시켰고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일부다처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실수가운데서도 그 아픔을 마주하고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근심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아를 부종하고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자 결심했고 인간적인 감정이 틈탈까봐 사라에겐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끝까지 따랐던 아브라함의 모본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제 삶에 큰 나침반이 되는 듯 합니다. 주님의 작은 말씀도 지키고자 분투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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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구속의 은혜, 요한복음 3장 16절

성경/창세기|2020. 9. 26. 18: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이제 그들은 죽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브와 아담에게 죄의 선고로 해산의 고통과 노동을 지정하신 것에 대해 우리는 다 알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신분인 이유는 그분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죄의 선고를 내리시기전에 먼저 희망의 말씀을 하셨다는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비록 죄를 범하여 사탄의 이후의 공격으로부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면서도 사탄이 영원히 그들을 속박할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근거로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인간에 대한 희생을 치르실 것이고 그로 인해 인간에게는 은혜의 시기가 주어지고 회개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다시 하나님과 연결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평화의 회의를 결코 짧게 마치지 않으시고 긴 대화 끝에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실때 마음에 투쟁이 결코 없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사진=pixabay

 

Q 왜 예수님만 사람을 대신해 죽는 것이 가능했을까?

우선, 죄를 범한 사람은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일획도 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과 사람은 죄로 인해 영원히 분리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조 당시 사람은 천사들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하는 존재였으나 타락하여 이전과 같이 지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품성의 시험을 이겨내고(우리의 성품과 마음이 그리스도까지 자라나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인류를 너무나 동정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사람을 위한 구속의 계획을 세우고 이땅에 예수님이 오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변함이 없기에 죄의 값을 치러야 했고 영원한 생명을 갖고 계셨던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죄의 수치를 떠맡으신 예수님

 

위에도 언급했듯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인간에게 자동적으로 내주신것이 아닙니다. 쓸어내리는 마음을 안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인류를 위해 아들을 힘든 마음을 느끼면서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를 경험하실 것이었고 하늘의 보좌에서 인간세상으로 오시는 수치를 우리를 위해 감당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사람이 거의 없었음에도 그것을 알고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단 한명의 생명을 살라기 위해서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 인류, 그러나 ..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회복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회개의 길을 걷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락한 인간은 세대가 갈 수록 더욱 타락하고 인내심과 체력과 도덕적 지적 능력등은 최초의 인류보다 계속해서 저하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종 죄로 세상은 무척이나 더럽고 방종한 세상이 될것이었습니다. 이 모든것이 아담에게 이브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자신의 죄를 더 슬퍼했습니다. .

 

사진=pixabay

십자가에서 율법은 폐지됐나

 

만약,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될 수 있는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보여주셨습니다. 사탄은 이에 대해 하나님께 무어라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변경 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죽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사람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다 죽게 됐고 하나님의 아들도 영원한 생명을 우리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변할 수가 없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공의로운 분이시고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을 살리려고 낮이지신 예수, 사람을 속이려고 낮아진 사탄

예수님과 사탄 모두 사람을 위해 낮아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셨지만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으로 낮이지셨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속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자신을 감추기 위해 뱀으로 낮아졌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를 감추기 위해 낮아지기도 하고 사랑을 베풀기 위해 낮아지기 합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 우리라면 예수님을 닮기위해 낮아져야겠습니다.

 

창세기 3장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을까요? 그 이유는 사탄이 원했단 바였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이 죄로 인해 고통의 삶을 자신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속에서 살기를 바랐기에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어 죄스러운 존재로 영생하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죗된존재가 영생하는 길이 곧 그 존재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그 생명나우의 실과를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지 않고 그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믿는 우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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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요?

성경/창세기|2020. 8. 22. 10:38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Q1. 선악과를 만든 이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시금석으로 삼은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동산에 있는 다른 모든것들을 사용하시는데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으나 오직 한가지만을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중에서 창조의 극치인 인간은 천연계와 달리 '자연법칙'에 의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고 도덕법칙에 의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Q2. 하와는 어디에 있다가 뱀을 만났을까?

뱀으로 변장한 사탄은 선악과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전 영역을 활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 대해 천사들과 하나님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고 사랑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특별히 천사들은 하와에게 아담이 천연계를 돌보는 중에 그의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항상 같이 있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브는 아담이 천연계를 돌보는 사이 이쪽 저쪽 다니게 됐습니다. 문득, '아 너무 멀리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을 의지했고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브는 결국 하나님께서 금지한 열매에 이르게 됐고 뱀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단지 인간이 선악과 하나만을 먹엇을 뿐인데 너무 인간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탄이 주는 생각들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왜 선악과에 가면 안되는지 사탄은 어떤 존재인지 심지어 함께 있어야 한다고까지 충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사랑으로 타일러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가볍게 여겼기에 결국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Q3.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대하는 하와의 마음에는 어떤 투쟁이 있었을까?

 

뱀은 하와의 아름다움을 교묘히 칭찬하며 유혹했습니다. 만약 사탄이 뱀(타락하기전에 가장 아름다웠던 동물)의 모습이 아니라 위협적인 존재로 변장했더라면 하와는 바로 위협감을 느끼고 도망갔을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자신을 숨기기위해 아름다운 뱀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췄습니다. 이에 이브는 뱀이 유혹의 매개물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사탄과 같은 사람입니까, 예수와 같은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겸손'하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왜인지 겸손해야 할것 같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3장에서 '겸손'한 사탄을 보게 됩니다. 사탄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뱀으로 낮아졌습니다. 겉모습으로 봤을때 낮아졌기에 사탄의 모습을 겸손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겉모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겸손하려고 하느냐 아니겠습니까?

즉, 동기가 가장 중요한 듯 싶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고 자신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행복할 수 있었던 모습을 인간에게서 봤기에 인간을 타락시키고자 뱀으로 낮아졌습니다. 사람들을 유혹하고 자신을 감추기 위해 낮아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없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 존경받기 위해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겸손'을 나타내는 사람은 아닙니까?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나는 무엇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을 살리기 위해 하늘의 왕좌를 버리시고 하찮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랑'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사탄의 겸손,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사탄의 낮아짐에는 이토록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과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추구해야겠습니다. 순도 100%의 겸손말입니다.

 

 

*하와의 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였는 바 바로 이것이 그 여자를 타락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범죄한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을 멸망시키는 일에 사탄의 대리자가 되었다.

 

*아담의 죄: 죽는다는 사실, 그 일이 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죄를 지었다.

 

이브는 결국 선악과를 먹었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습니다. 아담은 그 이야기를 듣고 슬퍼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결국은 죽게 될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아담은 죽을것을 알고 함께 죽고자 선악과를 베어 먹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두려워 숨어있던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이에 아담은 

 

창세기 3장 12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나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함께 죽고자 선악과를 먹었던 아담. 이브를 위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줬던 아담의 사랑은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핑계'대며 탓하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이토록 죄가 무섭고 인간의 사랑이 보잘것 없는가 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 아담 -> 이브 -> 뱀)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장 최근에 지었던 순서대로 찾아가서 물어보십니다. 처음에는 아담에게 물으셨고 그다음은 이브에게 물어보셨고 이제는 뱀에게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대로 뱀과 이브와 아담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왜 죄지은 사람들에게 심판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죄를 그대로 놔둔다면 과연 사탄은 하나님을 무엇이라 할까요?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되 죄는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와 '죄'의 심판을 결코 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죄라고 분명히 지적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죄를 지어 죽을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쓸어내리는 가슴으로 타버리는 가슴으로 내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아버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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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2장: 창조와 안식일

성경/창세기|2020. 8. 17. 08:10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2)

 

Q 하나님께서는 왜 쉬셨을까?

 

하나님은 피곤한 자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지혜와 선하심의 열매와 당신의 영광의 나타남을 기뻐하는 자로서 쉬셨다.

 

Q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날인가?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창조주의 모본을 따라 사람은 이 거룩한 날에 휴식할 것이었는바, 이는 그가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회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숭겸심으로 가득 차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안식일은 전 인간 가족의 아버지요 대표자인 아담에게 위탁되었다. 안식일의 준수는 세상에 거할 모든 자들 편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정당한 주권자시라는 것과 그들은 그분의 손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그분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을 감시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숙고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 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그에게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상기시켜 주고 그가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자선심 많은 손에서 나온 것임을 그에게 상기시킴으로 감사 하는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 힙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언제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큰 책을 열어 그 속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찾도록 명령한다.

 

Q 창조 당시, 사람의 모습은?

 

사람은 외모나 품성에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이시나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애정은 순결하였고 그의 식욕과 감정은 이성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

 

 

Q.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을 위해 하와를 만드셨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8)

 

인간은 고독하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사교적 존재가 될 것이었다. 반려자가 없었다면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광경과 유쾌한 노작도 완전한 행복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천사들과의 교제라 할지라도 동정과 반려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자기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

 

하와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취한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것은 여자가 머리가 되어 남자를 지배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마구 짓밟힘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과 동등한 자로서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

미한다.. 그 여자는 제 2의 자아로서 이러한 관계에 필수적인 밀접한 연합과 애정적 결합을 보여 주었다.

 

*최초의 결혼제도 역사의 주관자이자 결혼 주례자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그래서 결혼제도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다. 혼인은 귀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들 중 하나였으며, 타락 후에 아담이 낙원 문들 저편에서 가져온 두 제도 중 하나이다. 이러한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원칙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에 결혼은 축복이 된다. 그것은 인류의 순결과 행복을 수호하며 사람의 사회적 필요를 채워 주며 육체적 지적 도덕적 본성을 향상시킨다.

 

창조주의 걸작품이며 그를 위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이 단장함을 입은 존재인 사람이 활동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사람은 외모나 품성에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하나님께서 땅 위에 지으신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에게 비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에게 한 반려자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거룩한 부부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부족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창조주께서는 한 동산을 특별히 그들의 집으로 마련해주심으로 당신의 사랑의 다른 증거물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이는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최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숭경심으로 가득 하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묵상: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성적 존재이자 자연의 법칙이 아닌 도덕법칙에 의해 자신을 섬길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도덕을 사전에서는 양심과 연결시켜 이야기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발적인 마음에 의한 사랑의 봉사를 원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감사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처음으로 하나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부분이다.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면 당신을 닮은 모습(품성과 외모)으로 창조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가장 마지막에 창조하시어 이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을까 생각하니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고 또 용기가 되는 듯 하다. 왜냐하면 배우자는 내가 스스로 얻는 목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동반자의 필요를 느끼기 원하셨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어쩌면 내가 정말 정말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의 온 영혼과 나의 온 마음에서 간절하게 느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외롭고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 희망이 자꾸 꺾일 때 눈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고백한 시간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듯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주례자였다는 사실과 아담과 하와가 이미 풍족하게 누리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살 터전인 에덴 동산을 마련해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일 역시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뤄야 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만드셨고 가정을 만드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결혼가정에 대해 염려가 있고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하나님께 기도해야함을 말하고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와 선물로서 우리의 살 터전과 결혼을 구해야 함을 말하지 않나 생각한다.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살 터전을 제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우리의 살 터전을 주신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하다.

 

네 번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이었지만 절대 방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들을 만드셨다. 위에서 언급한 결혼을 통해 이뤄지는 가정이 그렇고 안식일이 그러하며 천연계들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선물의 참 뜻을 알고 하나님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래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어렵지 않은 일을 나는 왜 를 앞세우며 어렵게 만드는지...

 

가 아닌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여 이 많은 선물들을 누리며 살아가길 기도하자.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입힌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입힌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이다.

우리는 영원한 언덕들, 교목들, 피어나는 꽃봉오리들과 아름다운 꽃들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만물은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언제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큰 책을 열어 그 속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찾도록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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