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 막 5:21-43, 옷자락에 전해지는 사랑

성경/말씀 묵상|2021. 3. 26. 23:21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12년간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루증이란 자궁출혈을 일컫는 병으로 여성분들이 기본적으로 하시는 '생리'(월경)과는 달리, 불규칙적으로 출혈이 일어나는 병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해버렸습니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도 얻었던 대답은 당신의 병은 불치병이라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찬양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_^>

이 여인의 삶 만큼이나 비참한 삶이 있을까요?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 어디 함부로 다니지도 못하고.. 1년도 긴 세월인데, 12년간을 그렇게 살았다니...

 

그런데, 이 여인이 한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듣고 희망을 품게 됩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께로 간 환자 중 어떤 사람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온 희망을 예수님 만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가 있는 곳으로 재촉해서 떠났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에게로 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병이 치료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시던 해변에 갔으나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레위마태의 집에서 예수님을 또 따라갔으나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시는 도중에 그 여자에게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무리에 둘러싸여 걸어가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예수님의 앞에 설 수 없음을 순간적으로 빠르게 깨닫고 그분의 겉 옷만을 만져도 구원을 얻겠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모든 믿음을 걸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그녀의 고통과 쇠약함은 완전히 치유됐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질병이 치유가 됐다고 착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녀의 병을 치유한 것은 예수의 옷자락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능력을

붙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말고도 당시 예수님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정탐꾼들, 예수님의 이적에 놀라서 따라다니는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받은 사람들, 무리에 이끌려 따라다니는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런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간절한 마음, 진실된 마음이 곧 심령이 가난한 마음이요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 없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무용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을 표면적으로가 아닌,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동여멥시다.

 

여러분이 혹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삶에 절망이 가득하다면, 혈루증을 12년간 앓던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해보세요. 저 역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삶에서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 삶이 변화됐습니다.

 

비록 삶이 힘들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끝이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나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그분을 한번 믿어보세요. 절대 후회하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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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 8장 23절-27절, 예수님의 믿음

성경/말씀 묵상|2021. 2. 21. 21:48

마태복음 8장 23절~27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무리가 배를 타고 이동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등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피곤과 시장기에 지쳐 낮잠을 청하셨습니다. 이때, 갑자기 제자들과 예수님께서 탄 배에 큰 폭풍이 몰아칩니다. 번개도 치고 심지어 물이 배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강인한 어부들은 물을 안간힘을 쓰며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폭풍은 거세지고 바람은 더 세찼고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불렀을 때, 바람 소리에 그들의 소리가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늘의 평화를 나타내시며 낮잠을 주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사옵나이다"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리고나서 다시 그들의 최후의 힘을 다해 노를 저으려할 때, 예수님께서는 두손을 높이 드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자 갑자기 성난 바다와 거센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두려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하셨을까?

일반 사람이라면, 그 모습은 믿음이 적은 모습이 아닐 텐데, 그리스도인이기에 제자들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다고 표현하신 듯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몸담아왔던 그들이었기에 그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조금 난처해지자 예수님을 불렀으나 바람에 음성이 묻혔을 때, 그들은 다시 예수님께 다가가거나 예수님을 더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깨우기까지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 깨웠을 때 조차도 그들은 예수님께 한마디만 하고는 다시 노를 저으려고 했습니다.
 
다시 노를 저으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그때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죠.

믿음은 나의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네. 우리가 살펴봤던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겉으로만 의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정말로 믿었다면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바빴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살펴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경을 헤맬 때, 편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의지했으나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그분 자신을 맡겼기에 그 죽음의 찰나에도 하늘의 평화를 나타내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도상에서도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과 채찍을 맞으면서도 온유한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셨죠.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의 힘을 믿고 나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돌보심을 믿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편하게 안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평화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악인은 악한 마음을 품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도 성경에서는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57:20~21)
 
 
저도 요즘 악인 같은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금도 나를 돌보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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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로마 백부장의 믿음, 나인성 과부의 눈물

성경/말씀 묵상|2020. 12. 17. 08:04

성경 마태복음 8장 5절-13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로마인중에 한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노예(종)는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존재였기에 사람들은 노예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백부장은 자신의 종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중풍병에 걸려 죽게 됐습니다. 백부장은 종이 거의 죽게 됐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통해 예수님께 기별을 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대면한적이 없었으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분을 믿었습니다


장로들은 백부장의 친절을 경험했던 터라 예수님께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으로 오실 때, 백부장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꼈으나 용기를 내고 앞으로 나와 이런 수고를 하지 마시고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나의 종이 낫겠나이다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종의 죽음으로 무력감을 느꼈고 예수님 앞에 무가치함을 느꼈으나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요 친구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다르게 자신의 선함에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그저 우리가 큰 필요를 느끼고 그분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을 구하여 예수님에 대한 큰 필요를 느껴 그분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인이기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할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탄에게 우리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비록 내세울것이 종이 한장, 김 한장도 없지만..우리에게 내세울 것이 없는 그 무력감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밖에는 바랄 수 없는 소망이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고 그분께 나가야 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다만 십자가에 매달리며 오늘도 예수님께 나아가시길 기도합니다. 


성경 누가복음 7장 11절-1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발걸음을 나인이라는 마을로 옮기셨는데 거기서 한 장례행렬을 보셨습니다. 그 행렬은 모든 사람이 몹시 슬피 울었기에 그 슬픔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그토록 사람들이 슬피 울었던 이유는 한 과부의 유일한 의지의 대상이었던 독자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슬피 우는 과부의 곁으로 가셔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손으로 관에 갖다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청년은 일어났고 어머니와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청년을 육체적 사망에서 건지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권세 또한 물리치셨습니다. 그 청년을 살리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곁에 살아계셔서 죄 가운데 죽어가는 우리에게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귀가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깨어 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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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산상수훈 2, 매일성경, 마태복음 5장, 마태복음 6장, 마태복음 7장

성경/말씀 묵상|2020. 12. 12. 15:18

매일성경 말씀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매일성경 오늘은 마태복음 6장과 마태복음 7장에 대해 말씀해드리겠습니다. 매일성경을 읽음으로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볼 때 생깁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며 성령은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아질때까지 쉬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이기심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기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게 하고 볼 수도 없게 만듭니다. 성령의 감화에 응답하는 이기심 없는 심령만이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사람은 화평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참된 화평을 창조하고 영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분의 은혜가 마음에 심겨질 때 그리스도의 화평에 속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에 응답하여 하늘의 복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성경 을 묵상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는 제자들뿐아니라 바리새인의 정탐꾼들 그리고 바리새인에 의해 교육된 백성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올바른 진리를 전하고자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진리에 대한 지식과 외형적인 의식으로 자신들을 의롭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이를 만족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뒷모습은 부도덕하고 저속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의미는 삶에 나타나지 않는 진리는 무가치하다고 말씀하셨고 진정한 의는 마음과 생애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된 사람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 할때에만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참된 경건이 사상을 향상시키고 생애를 고상하게 할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의 내용처럼 우리의 삶이 사람을 신경쓰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함으로 내적인 순결이 겉으로 발산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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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경 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이어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의 보호 아래서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참새를 돌보시고 들의 꽃이나 초목에게도 관심과 보호를 베푸십니다. 하물며 당신의 형상과 영광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돌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돌보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따라야 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한 도움을 주시지 않는데 이는 혼란하게 되도록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억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만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전 생애에 감화를 끼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에서 사람들에게 신앙생활과 삶에 감동적인 말씀을 주신 예수님, 그분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지처럼 가벼운 자아를 기초로 삼지 않고 오직 흔들림 없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삶의 모든 부분에서 반석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성경 을 펼치며 하나님앞에 선다는 마음으로 서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권고하는 말씀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에 대한 이상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온전함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처럼 높습니다. 사탄의 힘이 죄에 대한 구실로 간주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에 대해 변명할 때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이런 핑계이며 죄를 범하는 데에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이상은 바로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서 완전한 생애를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애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승리 하신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본성을 취할 때 예수님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구함으로 죄에서 분리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죄가 너무나 무섭기 때문에 우리를 그대로 두고 떠나지 않으시고 성령을 약속하신 예수님, 오늘도 성령을 구하여 거듭 하나님께로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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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과 제자들

성경/말씀 묵상|2020. 11. 20. 13:50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이 됐어야 할 제자들은 완전했기에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자는 다 결함이 있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악한 성질과 복수심을 갖고 있었고 베드로는 충동적이었고 빌립은 의심이 많았으며 도마는 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이 결함이 있음에도 죄가 있음에도 부르신 이유는 진리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해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결함 많고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결코 돌아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역시 사랑 어린 책망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변할 것 같지 않았던 그들은 매일 매일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품성이 변화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듯 지금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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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가 죄가 있고 불완전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결코 돌아서지 않고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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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제자 빌립

성경/말씀 묵상|2020. 11. 19. 12:25

예수님의 제자중 빌립은 믿는데 느렸습니다. 그의 믿음 부족은 곳곳에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실때에 그는 불신을 나타냈고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 물을 때 그 기회를 붙들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마지막 몇시간전에는 믿음을 꺾는 말을 했습니다. 3년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했던 빌립은 이토록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학교의 학생이었던 빌립의 불신과 우둔함을 예수님께서는 인내로 참으셨습니다. 그 결과 빌립은 예수님의 승천후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굳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사가 됐습니다. 사도행전2장 27-39에도 빌립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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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빌립보다도 믿음이 부족한 저이지만 하늘 교사 되시는 예수님께서 저의 불신과 어리석음을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주심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게 해주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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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과 안식일

성경/말씀 묵상|2020. 11. 17. 08:50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가 바리새인들을 자극 할 것을 아셨으나 손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안식일에 왜 병자를 치료하시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것과 죽이는 것중 어느것이 옳으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렇듯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어진 날이기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뜻에 옳은 일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복을 누리도록 이날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그리스도를 창조주와 구속주로 가리키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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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회복시키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다가올 안식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더불어 참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장 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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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 9장 2절-8절,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50

죗된 결과로 중풍병자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소식을 듣고 낫길 원했으나 죄로 인해 병이 생겼다는 사실에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지고 병들어갔습니다.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으로 운반해달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예수님 계신곳까지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너무나 많은 군중들이 있어 몇 번을 시도했으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병자는 지붕을 뚫고 예수님의 발 앞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친구들은 마침내 그를 예수님앞에 데려갔습니다. 병자의 탄원하는 눈빛을 바라보신 예수님은 그가 죄에서 먼저 해방되길 원하는것을 아셨습니다. 눈빛으로 말하는 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새 생명의 은혜로 받아들인 그는 죄 사함을 받고 육체적 병에서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저는 오늘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사용해 예수님께 나아간 중풍병자를 보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마음이 힘들어서..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던 제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떠올리며 핑계없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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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누가복음 5장 12절-16절, 예수님과 문둥병자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44

가족과 세상과 격리된채 살아온 한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중에는 병을 앓았던 모든 사람이 그분을 만나고 치료 됐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이에 문둥병자는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비록 사회에서 격리됐지만 샛길에서 산길에서 예수님을 만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께 있었으므로 그는 예수님만을 만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간절히 원한 끝에 예수님을 만났고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문둥병자를 치료한 예수님의 사업은 영혼을 죄에서 깨끗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업에 대한 예증이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인 우리이지만 그 모습을 안다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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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 5장 1절-11절, 예수님의 제자들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42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른 사람들은 갈릴리의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최고로 교육받은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실 수 있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자신만만해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사람들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예수님의 동역자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교육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분의 가르침을 세상에 막힘없이 전 할 수 있는 통로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교육을 받고 그분께 훈련받은 제자들은 후에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출신은 미천했지만 그들을 크게 사용하신분은 하나님이었기에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고 그분을 최고의 지도자요 교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필요한 훈련들을 견뎌 하나님의 사랑을 막힘없이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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