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수) 말씀묵상 <요시야, 여로보암, 솔로몬, 힐기야>

성경/말씀 묵상|2025. 3. 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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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는 권고를 받았다.

요시야는 성년이 되면서부터 왕으로서의 그의 지위를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을 높이는데 이용하고자 노력하였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바뀌게 된다.

할 수 있는 한 그들 속에 하늘의 율법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계발시키고자 노력하였다

-> 묵상: 주님 저에게도 이런 마음을 주세요.

그러나 왕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까닭에 여호와께서는 용서와 은혜를 구한 그의 기민함을 인징하실 것이었다. 왕에게 기별이 전달되었다.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22:19, 20)

-> 묵상 진정한 회개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늘의 응보의 형벌을 선고하시면서도 여호와께서는 회개와 개혁의 기회를 거두지 아니하셨다. 요시야는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기꺼이 당신이 선고하신 형벌을 은혜로 경감시키실 것을 깨닫고 단호한 개혁을 일으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즉시 대집회를 준비하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장로들과 재판관들을 일반 백성과 함께 초청하였다. 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함께 성전 마당에서 왕을 만났다.

힐기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제대로 도운 대제사장
‘여호와는 나의 유업이시다’라는 뜻의 힐기야는 당시 제사장들이 흔히 사용하던 이름이다. 그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요시야 시대를 살면서 왕의 통치를 매우 지혜롭게 보좌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요시야 왕을 특별히 잘 보좌했다는 것은 왕이 추진하던 정책, 즉 종교개혁 정책이 중도에 좌절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하나님의 에 합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성전보수 공사를 단행했다.
그런 와중에 성전의 한 켠에서 모세의 율법책이 발견되는 큰 수확을 얻게 됐다(왕하 22:8~14).
학자들은 모세오경이 이 때 발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서 요시야 왕은 이 율법책 발견으로 신앙개혁의 강력한 동기를 제공받았다고 한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힐기야 대제사장은 개혁이 엇나가지 않도록 상당한 버팀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그의 개혁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역대하 34장18절을 보면, 요시야는 먼저 하나님 앞에 겸비했고, 이어 31절 이하에는 모든 백성들이 참가한 가운데 여호와의 언약을 체결하였으며, 33절을 보면, 모든 우상을 파괴했다고 했다.
모세 율법책을 발견한 이후로 진행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순서상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시에 언약을 회복한데 이어 우상을 척결했다고 결론 내린다.
기야는 바로 국정수행 최고 책임자인 요시야 왕이 올바른 개혁을 추진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힐기야는 성전보수 공사 진행을 총괄하던 책임을 맡았는데 심지어 모든 재정적인 문제까지 관리했다고 한다. 왕과 신하들로부터 받은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훌륭한 왕 곁에는 늘 신앙깊고 사려깊은 제사장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아사-아사랴, 여호사밧-예후, 요아스-여호야다 등이 그들이다.

출처 : 아이굿뉴스(http://www.igoodnews.net)

 

여로보암 

여로보암은에브라임 산악 지방에서 살다가 세겜을 세우고 거기서 살다가 다시 나와 브니엘을 세웠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드리고르호보암에게 갈 게 될걸 알고 결국은 자신을 다시 배신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베델(Bathel)과 단(Dan)에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으며 사제는 레위 제사장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을 임명하였다. 또한 여덟째 달 십오일을 절기로 정해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결국은 온 민족을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끌었다(열왕기상 12:31-33).

매우 여러 해 전 여로보암 앞에서 선언된 예언은 이제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야 하였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솔로몬

감람산 남쪽 비탈, 모리아산에 있는 아름다운 여호와의 성전 맞은편에는

405p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는 그의 아내들을 기쁘게 하고자 세웠던 사당들과 우상들이 있었다

 

요시야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았을지라도 요시야의 열심이 지난 세대의 범죄를 속할 수 없었고 왕의 추종자들이 나타낸 경건이라 할지라도 우상숭배로부터 참 하나님의 예배로 돌아서기를 완고하게 거절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유월절을 지낸 후 10년 이상 요시야는 계속 통치하였다. 그는 39세에 애굽 군대와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여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되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대하 35:24,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왕하 23:25, 26).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나라의 거민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저희가 좋은 환경 아래서 배우기를 거절하였던 교훈을 거기서 배워야 할 때가 신속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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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말씀묵상 <모이라, 일상에서 즐거움 얻는 방법>

성경/말씀 묵상|2025. 3. 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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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셨나이다.

 

-> 이 말씀은에서 ‘기름받은 자’는 하박국 자신인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합3:17-19)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 임이니라”(습 1:17, 18).

 

->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질투’의 의미는?

 

모일지이다 모일지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2:1-3).

 

-> 왜 ‘모이라’고 했을까.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19, 20).

 

-> 하나님께서 ‘모이게’해주신다. 또, 수욕받았던 자가 명성과 칭찬을 얻고 하나님으로 인해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천하 만민 중에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는 표현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믿음안에서 잘 성장한다면 세상사람들도 그에게 명성과 칭찬을 표현할 것이라는 의미일까?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4-17).

 

-> 하나님은 나로인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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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목) 말씀묵상 <선지자와 왕 '므낫세와 요시야'>

성경/말씀 묵상|2025. 3.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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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안전히 피난처를 찾을 것이다.선지자들은 계속해서 층실하게 경고와 권고의 기별을 전하고 두려움없이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하였으나

383p그 기별들은 조롱을 받았고 타락한 유다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묵상: 타락한 사람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피난처를 찾는다.

 

그러나 이 회개가 비록 괄목할 만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여러 해 동안 우상숭배의 행습으로 부패된 나라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 죄의 결과는 남는다. 회개를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지만 그 사람의 죄로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고 회복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한”(왕하 22:2) 까닭이었다.

 

->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

 

그 때에 장래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자들의 생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통치하는 나라들의 정세를 기이하게 조절하셔서 바벨론으로 하여금 통치권을 계승하게 하실 것이었다. 이 두렵고 무서운 갈대아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채찍으로서 유다 나라를 돌연히 습격할 것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세상 나라의 정세까지도 기이하게 조절하시는구나.

 

이 무서운 형벌 중에서도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어떤 방법으로든 성취될 것을 확신한 하박국은 여호와께서 나타내신 뜻에 머리숙여 복종하였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라고 하박국은 부르짖었다. 그리고 믿음으로 머잖은 장래에 일어날 험악한 광경 저편을 내다보며, 당신을 신뢰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겠다는 귀중한 약속을 굳게 붙잡고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합 1:12)고 첨가하여 말하였다. 이와 같은 믿음의 선언으로 하박국은 자기의 사정과 믿는 모든 이스라엘의 사정을 자비심이 많으신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였다

 

-> 하박국은 믿음을 선언하였고 자기사정과 믿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다.

 

굳센 믿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이일은 하박국의 유일한 경험은 아니었다. 일찍이 그는 장래에 관하여 명상할 때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리라고 말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롭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1-4).극심한 시련의 때에 하박국과 모든 거룩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굳게 했던 믿음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을 유지시키는 믿음과 동일한 것이다. 가장 어두운 시간과 가장 험악한 환경 아래서도

387p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영혼을 모든 빛과 능력의 근원에 머물러 있게 할 수 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그의 소망과 용기는 새롭게 될 수 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낙담하거나 흔들리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기대 이상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여러가지 필요를 충족시킬 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시험받는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마련된 풍성한 준비에 대하여 감동적인 증언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하나님의 보증이 주어졌다. 감사와 신뢰로 이 시험을 마친 하나님의 종은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10)고 응답하였다.우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증거한 믿음 즉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당신께서 정하신 시간과 방법으로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을 간직하고 계발하여야 한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은 우리 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그 때에 최종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처럼 보이고 낙담하게 하는 환경에 의하여 영혼이 압박을 당하고 신임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실패할지 모르나 미증유의 배도의 시대에 유다를 격려하려고 노력한 선지자와 같이 우리도 굳게 믿고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고 선언하자.

 

-> 약한데서 나의 믿음이 온전하여 짐이라. 약한 것을 자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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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말씀묵상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묵상|2025. 3. 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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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자녀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희 창조주와 구주로 사랑하도록 배워야 하였고 그분의 거룩한 안식일을 그분의 창조의 능력의 기념일로 준수하기 시작해야 하였다

 

  •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의 기념일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저희가 스스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당신의 율법을 준수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 때부터 영적 이스라엘, 곧 지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의 일원으로 계수되리라고 말씀하신 까닭이었다.“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6-8)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스스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당신의 율법을 준수한다면 그때부터 영적이스라엘로 계수된다고 말씀하셨다’그것이 곧 교회의 일원이기도 했다.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6-8)

 

모든 사람에게 길을 열어놓으신 하나님.

 

여러 시대를 멀리 내다본 선지자는 이 영광스러운 약속들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세상 끝까지 모든 족속과 백성에게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는 여호와께서 복음시대의 교회에게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들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사 54:2, 3)리라.

 

선지자 이사야는 여러 시대를 내다보면서 복음을 세상끝까지 전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또 ‘명령’도 들었다.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사 45:22)

 

.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이 그들의 영혼에 비취고 있으며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이 빛이 그들의 발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것이다. 선지자 미가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미 7:8, 9)고 말하였다.하늘이 준비한 구원의 계획은 온 세계를 포함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넓다. 하나님께서는 패배한 인류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기를 갈망하신다.

 

그리고 그 분께서는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높고 고상한 것을 성실히 갈망하는 영혼에게는 그가 누구이든 간에 실망시키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가장 절망적인 환경에 싸여 있으면서도, 저희를 점유하여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 줄 능력 곧, 자신들이 가진 것보다 높은 능력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실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물로 자신을 주셔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키”(시 78:7)게 하신 분에게 대한 신뢰심을 굳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들로 접하게 하실 것이다.

 

묵상 ->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고상한 것을 갈망하고 앙망하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주님. 고상한 성품, 고상한 지식을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자. 믿음으로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 줄 능력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고 계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많은 섭리 속에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사 49:24, 25),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사 42:17)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슥 9:12). 이교의 나라들 가운데 마음이 정직한 모든 사람-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시 112:4)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사 42:16)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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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

성경/말씀 묵상|2025. 2. 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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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시78:38)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을 의미하죠. ‘진노’..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하는데 진노를 나타내시는게 말이 돼냐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야하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교과에는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고 나와 있어요.

Q 도입질문) 흔히, 성질 더러운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거 맞나요?

깨닫기 : 하나님의 진노는 피조물의 복락을 위하는 그분의 사랑의 합당한 표현이다.

느끼기 : 하나님은 자비하시지만 죄를 정당화하지 않으시며 십자가로 대속하신다.

행하기 : 그분이 진노하며 심판하는 뜻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한다.

1월 26일(일) 죄악으로 슬퍼하심

Q)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 혹은 실수로 인해 화가 났던 적이 있나요?

본문 성경: 시편78편 40~60절

40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42
그들이 그의권능의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의 표적들을,소안들에서 그의 징조들을 나타내사
.

.(생략)

.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53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

.

.

56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57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58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묵상)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나타내는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에는 ”사랑은 성내지 않으며“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왜 시편 78편에서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일까?

 

네 우리가 여기서 올바로 이해해야하는 건 ‘분노’ 혹은 ‘진노’에 2가지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는 불의한 분노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분노입니다. 내가 미움 받았고 내가 불공평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화를 내는 ‘이기적 분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진노’는 공의로운 진노입니다. 즉, 나 자신을 위한 분노가 아니요 이스라엘 전체를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분노입니다.

그런데, 시편78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 공의로운 진노조차도 여러번 여러번 거듭거듭 돌이키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공의로운 분노인데 그것을 다 실행하지 않으시고 공의로운 분노는 잘못이 없는데도 계속 그것을 자제하시고 용서해주셨다고 나옵니다. 왜냐하면, 공의로운 분노 때문일지라도 사랑하는 내 자녀가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기를 극도로 자제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심은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입장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을 한번 보면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중 곤경을 겪고 있을 때 교회의 대표자가 링컨 대통령을 찾아옵니다. 대표자는 링컨을 격려하면서 ”대통령 각하, 우리는 주님이 우리 편에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어요. 링컨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이 어느 편에 계시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연 주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이 함께하신다는 증거와 그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조금만 눈에 안좋게 보이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죄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셨어요. 링컨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늘 그들의 편에 서계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가 짧게 읽었던 시편 78편은 ‘아삽’이라는 사람이 쓴 시입니다.  아삽은 레위 지파 사람이었고 – 레위 지파면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 아삽은 마에스트로였다고 합니다. 지휘자죠. 다위 왕 때에 봉사하는 성가대가 3조가 이었는데 그 중 한명의 지휘자. 구약시대 성가대 최고지휘자.

아삽은 돌이켜야 할 것은 하나님이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알고 시편 80편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시편80편 14-19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면 참 어리석습니다. 그렇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게 그간 얼마인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기간이 얼마인데, 눈에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또 자기 눈에 부정적으로 보인다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해보니까 이스라엘 사람이 누구에요? 저입니다... 그래서 아삽이 시편 80편에 쓴 이 말씀이 위로가 되는 겁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아삽의 시가 나와 있어요.

 

아삽의 시가 어찌보면 참 뻔뻔하다고 할 수 있네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께 악을 범했는지 적었는데 또 이렇게 회개의 노래를 하니까요.

 

아삽이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오직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긍휼’은 영어로는 Mercy로 표현할 수 있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라함’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해요. 라함은 자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용되는 ‘긍휼’을 우리가 읽을 때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고 기본적으로 이해하면 될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가지는 반응 등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는 표현을 우리가 곧잘 보곤하는데 그럴 때는 이스라엘이 죄에서 돌이켰을 때 주어지는 용서의 은혜를 표현하기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자체에 분노하시기보다는 ‘악’에 대해 슬퍼하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악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곧 우리들을 헤치기 때문이죠. 인간은 언약에 성실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기만한다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교과는 말합니다.

 

<영감의 교훈>

회개의여지를주심-"이감사할줄모르는백성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않은 일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나타났다. 그분은 스스로 미혹을 당하도록 허용한 회중에게 회개의 여지를 주셨다. 주님, 곧 저들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도자께서 이 일에 그토록 큰 인내와 긍휼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와 겸비로 그분께 돌아갈 때, 그분께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까지도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증거로서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교회증언 3권, 355).

 

1월 27일(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

 

Q.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했는데 용서를 못한 적이 있나요?

 

본문성경절: 욘3:1-4:3

 

1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니느웨로 가니라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

.

.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묵상) 왜 요나는 니느웨를 멸하지 아니하신 하나님께 불평했는가? 왜 그는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확신했는가?

 

<배경 설명>

니느웨라는 곳은 앗수르라는 나라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성경에서 흔히 ‘앗시리아’라고 오늘날의 이라크라고 합니다. 이 앗수르의 수도가 니느웨입니다. 그런데, 요나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갈라진 시기에 여로보암2세가 왕위에 있을 때 활동하던 선지자였어요. 그런데, 당시 앗수르라는 나라는 실제로 북방 이스라엘의 인접지역에서 그들을 위협하던 국가였어요. 실제로, 40년후에 북방이스라엘은 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특벽히 요나는 이 앗수르 사람들에 대해 적개심을 가졌을 것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앗수르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민족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곳을 다 불살랐고 모든 성인 남자들의 손과 귀를 자르고 눈도 뽑아내고 극악무도하게 죽였어요. 또 소년들과 소녀들도 산채로 불태워 죽였고 왕의 유흥을 위해 사람들을 산채로 껍질을 벗기곤 했다고 합니다. 진짜 악하디 악한 사람들이었어요.

 

 

요나는 그 도시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게 하심으로 그 성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을 때에 제일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인해 기뻐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평판에 눈이 멀어 그는 그 불쌍한 도시에 있는 영혼들의 무한히 큰 가치를 보지 못했다. 회개한 니느웨 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동정을요나는 몹시 싫어하고 성냈다.요나가 여호와께 여쭈어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1, 2)고 하였다.


요나
는 다시 한 번 의문을 제기하고 의심하는 그의 성벽에 굴복하게 되었고 또 다시 그는 낙담과 좌절감에 억눌리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은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그는 살아서 그 성읍이 구원 받는 것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났다고 느꼈다. 그는 불만족이 가득해서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요나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를 보여준다.

 

 "노하기를 더디하"심 또는 "오래 참으"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구절은 문자적으로 는 '코가 길다'로 번역할 수 있다. 히브리 관용구에서 분노는 은유적으로 코와 연관 되어 있는데, 사람이 화를 드러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코의 길이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 "코가 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분이 노하기를 더디하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화를 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하나 님은 지극히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며 은혜를 아낌없이 풍성하게 베푸시면서도 죄 를 정당화하거나 불의에 눈 감지 않으신다. 그 대신, 십자가를 통해 죄와 악을 속하 심으로 하나님은 공의롭게 행하시며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는 분이 되신 다(롬 3:25, 26).

 

 

<영감의 교훈>

징벌과 자비가 완전히 부합되는 분 -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출 34:6, 7), ... 하나님 정부의 권위와 능력은 반역을 진압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보응하는 징벌을 나타내는 모든 일도 자비롭고 오래 참고 긍휼이 많은 하나님의 품성에 완전히 부합될 것이 다"(각 시대의 대쟁투, 541).

 

1월 28일(화) 의로운 분노

 

Q) 혹시, 내가 냈던 화 중에서 ‘의로운 분노’에 속하는 것이 있다면 나눠볼까요? 

혹은 의로운 분노란 무엇일까요?

 

본문 성경1: 마21:12-13절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함을 짓밟고, 과부와 고아, 가난한 사람 들을 편취하는 방편으로 삼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합당한 분노인 '거룩한 진노'를 보이신다(마 21:13, 요 2:16 비교).

하나님의 성전은 은혜로운 용서와 죄인을 정결케 하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배가 됐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귀한 마음을 갖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착취해서 그것들을 자신들에게 이롭게 사용해 장사하는 소굴로 만들어 버렸어요. 원래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해 뜻하신 바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렵혔고 악을 행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의로운 분노를 표출 하신 겁니다. 

 

본문 성경2: 막10:13-14

 

13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본문 성경2에도 예수님께서 노하시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는 어린아이들이 오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의 어머님들께서 아이를 데리오 예수님께 나아오자 꾸짖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해받게 두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의로운 분노를 다시한번 나타내셨어요.

 

본문 성경 3: 막3:2-5

 

2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완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셨어요. 여기서 예수님의 분노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강퍅한 것을 보고 슬퍼하시기 때문에 나타낸 분노였어요. 

 

우리가 살펴본 이 3가지 예수님의 ‘의로운 분노’는 결국 

 

 

다른 곳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대해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려 하자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 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셨다(막 3:4).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막 3:5) 그 사람을 고치셨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분노는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슬퍼하시기 때문이었다.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분노가 사랑의 공의로운 진노인 것과 같은 사랑의 의분이다. 사랑이 악에 대해, 특히 그 악이 사랑의 대상을 해할때 어떻게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악이 사랑의 대상을 해칠 때 사랑이 악에 대해 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 나님은 사람의 완악함에 슬퍼하며 사랑으로서 죄에 대해 공의롭게 진노하신다.

 

정당한 분노 -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정당한 분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수치를 받으시 고당신의사업이누명을쓰는것,무죄한자가억압당 하는 것을 볼 때는 의분이 심령을 격동시킨다. 민감한 도덕심에서 나온 이런 분노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일상 의 도전에 대해서 분노나 적개심을 품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사탄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하늘과 조화되기를 원한다면 원한과 증오심이 심령에 서 추방되어야 한다"(시대의소망, 310)

 

결론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생각하는 진노와 다르다. 진노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의의 진노이고 또 하나는 공의의 진노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진노가 곧 공의의 진노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그 죄로 인해 그 자녀까지 죽게 만드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진노 역시도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돌이키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자녀들이 고통스러워 하실 것을 차마 못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듭거듭 진노를 돌이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품성이시다. 반면, 이기적 진노란 요나가 니느웨로 기별을 전하러 갔을 때 하나님께 분노를 표출한 것. 그것이 곧 이기적 분노에 해당한다. 요나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취급 받을 까 곧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겨질까하여 하나님께 분노한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공의로운 진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진노조차도 우리를 위해 거듭거듭 돌이키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에서 돌이키고자 하는 영혼을 '긍휼히'여기신다. 그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은 곧 엄마가 아기를 돌보는 그런 측은한 마음이다. 언제라도 하나님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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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첫 성전, 두번째 성전

성경/말씀 묵상|2024. 4. 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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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첫 성전은 그 외관의 아름다움이 상당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완성했던 첫 성전은 파괴됐다. 그리고 뒤이어 완성된 두번째 성전은 그 외관이 첫 성전보다 못했다. 사람들은 첫 성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광스럽지 못한 두번째 성전을 보고 울었다. 그러나, 두번째 성전은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약속됐다. 그리고 두번째 성전이 더욱 영광스러울 수 있는 이유는 그곳을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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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부활

성경/말씀 묵상|2022. 7. 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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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사로를 곧바로 살리러 가시지 않았던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했다.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하셨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다.

약간 원망섞인 목소리로 "예수님이 계셨다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는 원망섞인 목소리였지만 믿음의 목소리가 아닌가 예수님이 계셨다면 죽음이 없었다니

그리고 마르다는 덧 붙였다. "그러나 주께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던지 그대로 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고백한 마르다에게 나사로의 부활은 물론 의인의 부활로 이끄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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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양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성경/말씀 묵상|2021. 10. 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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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중에 양은 가장 겁이 많습니다. 그리고 방향 감각도 둔하고 시력도 나빠 길을 잘 잃습니다.

 

불과 10미터 안팎의 물건만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피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또한, 양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톱도 없습니다.

 

 

게다가 느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양은 절대적으로 목자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목자는 바위틈에서 양을 노리는 맹수들의 습격에 양을 지켜야 하며 약탈자들의 공격에도 늘상 대비해야 합니다.

래서 목자는 낮이건 밤이건 눈붙일 겨를 없이 양을 돌봅니다. 이런 목자의 수고는 야곱이 라반의 의심에 대해 말했을 때도, 잘 드러났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31:40) 야곱의 말처럼 목자는 눈 붙일 겨를 도 없이 양을 돌봅니다.

 

 

생명을 걸고 양을 지키기에 양의 생명은 목자의 생명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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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 막 5:21-43, 옷자락에 전해지는 사랑

성경/말씀 묵상|2021. 3. 2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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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12년간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루증이란 자궁출혈을 일컫는 병으로 여성분들이 기본적으로 하시는 '생리'(월경)과는 달리, 불규칙적으로 출혈이 일어나는 병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해버렸습니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도 얻었던 대답은 당신의 병은 불치병이라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찬양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_^>

이 여인의 삶 만큼이나 비참한 삶이 있을까요?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 어디 함부로 다니지도 못하고.. 1년도 긴 세월인데, 12년간을 그렇게 살았다니...

 

그런데, 이 여인이 한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듣고 희망을 품게 됩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께로 간 환자 중 어떤 사람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온 희망을 예수님 만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가 있는 곳으로 재촉해서 떠났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에게로 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병이 치료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시던 해변에 갔으나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레위마태의 집에서 예수님을 또 따라갔으나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시는 도중에 그 여자에게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무리에 둘러싸여 걸어가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예수님의 앞에 설 수 없음을 순간적으로 빠르게 깨닫고 그분의 겉 옷만을 만져도 구원을 얻겠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모든 믿음을 걸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그녀의 고통과 쇠약함은 완전히 치유됐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질병이 치유가 됐다고 착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녀의 병을 치유한 것은 예수의 옷자락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능력을

붙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말고도 당시 예수님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정탐꾼들, 예수님의 이적에 놀라서 따라다니는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받은 사람들, 무리에 이끌려 따라다니는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런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간절한 마음, 진실된 마음이 곧 심령이 가난한 마음이요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 없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무용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을 표면적으로가 아닌,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동여멥시다.

 

여러분이 혹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삶에 절망이 가득하다면, 혈루증을 12년간 앓던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해보세요. 저 역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삶에서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 삶이 변화됐습니다.

 

비록 삶이 힘들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끝이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나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그분을 한번 믿어보세요. 절대 후회하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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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과 제자들,마 14:22-33

성경/말씀 묵상|2021. 3. 2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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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22-33 에는 예수님의 해상 보행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해상 보행 이야기의 배경에 대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해상보행을 하시기 전에 먼저 하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은 곧 우리에게도 흔히 잘 알려진 '오병이어'의 이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던 무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입니다. 그 이적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 혹은 식욕적 방종을 위해서 하시지 않고 육체적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우실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더욱 영적으로 하나님을 붙들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적을 맛 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바와는 다르게 그 이적을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그 능력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권위 있는 자리에 앉기 원하시지 않는 것을 아시고 자신들의 계획으로 능력 있으신 예수님을 그 자리에 앉히려고 했습니다. 이 일에는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함께했습니다. 제자들은 항상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이 비난을 받으시는 것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속이는 자'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항상 큰 시험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예수님께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면 예수님의 제자인 자신들의 위치도 높아지고 이제는 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속이는 자'의 제자라는 누명을 안 써도 됐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서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로 주의를 끌거나 존경을 얻고자 조금도 노력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무리와 제자들은 의논을 거쳐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의도를 아시고 위엄있는 말씀으로 그들의 계획을 멈추셨습니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예수님께서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랐으나 이전에 없던 위엄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볼 때, 그분을 만류할 수 없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3절에는 무리를 따로 보내시고 예수님께서 홀로 산에 기도하러 가신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시간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예수님 자신을 위하지 않고 사람들을 위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당신의 사명의 본질을 사람들에게 밝히 드러낼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자들과 무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사명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동안 제자들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더욱 예수님께 왕위에 앉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자들은 영적인 시험에 더욱 깊이 빠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보여주신 은혜와 선물을 잊고 우울해했습니다. 그때, 이전에 제자들을 덮쳤던 것과 같은 강풍이 제자들이 탄 배를 덮쳤습니다. 그들은 강풍이 그들이 탄 배를 때릴 때마다 바다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격렬하게 노를 저었습니다. 

 

그들은 밤 사경까지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그들의 힘으로는 더 할 수 없었음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절대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강풍과 싸우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제자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빛이 될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로 보시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당신의 자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듯,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을 바라봤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속 야심이 가라앉고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힘겹게 어렵게 슬프게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을 밤새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겸손하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찾는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옆에서 지키시는 예수님을 쓸쓸히 내버려 두지 마시고 믿음으로 예수님과 만나는 귀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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