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과 안식일

성경/말씀 묵상|2020. 11. 17. 08:50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가 바리새인들을 자극 할 것을 아셨으나 손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안식일에 왜 병자를 치료하시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것과 죽이는 것중 어느것이 옳으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렇듯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어진 날이기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뜻에 옳은 일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복을 누리도록 이날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그리스도를 창조주와 구속주로 가리키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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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회복시키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다가올 안식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더불어 참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장 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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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성경/말씀 묵상|2020. 8. 9. 16:15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자

 

 

자연과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 세상에 안 비추는 곳이 없는 햇빛은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놀랍고 절대적이며 공평한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비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산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바다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넓으신 분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늘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하늘이 파란색이 아니고 구름이 흰색이 아니면 우리에게 하늘을 보는 기쁨이 있을까요? 하늘을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도 하늘로도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일 매일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자연의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가장 따뜻하고 가장 와닿게 말씀하려고 최선을 다하십니다. 하지만, 이 자연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다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5분간의 스케이팅을 연출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시간들이 모여 단 '5분'에 집중되어 표현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준비하시고 수많은 노력과 사랑의 모든 마음을 쓸어담아 이 땅에 보내주신 당신의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물처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로 흐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셨음에도 자랑하지 않으셨고 무례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으셨으며 성내지 않으셨고 오래참으셨고 모든것을 바라고 모든것을 믿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

 

예수님이 하나님으로하여금 우리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을 구원하시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1:4)

 

묵상: 범죄한 인류에 대한 구원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 지금까지는 구원이 먼저고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인줄 알았지만... 가장 먼저 있었던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일이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10:17)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내어주실때 마음의 투쟁이 없지 않으셨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토록 놀랍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살면서 더욱 많이 더욱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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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죄의 시작

성경/말씀 묵상|2020. 8. 9. 15:45

하늘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셨고 아버지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셨던 예수님(천사장:미가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지위의 천사가 곧 루시퍼, 루스벨이었습니다.

 

루스벨은 하나님 아들의 권위를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하나님을 오해하게 했고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그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그를 돌이키려고 했으나 끝내는 그도 하나님께서 옳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멸망한 천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가 반역을 일으켰을때 곧장 그를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말이 엄청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분의 속성에는 '폭력'과 '제거'와 같은 성질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하나는 루스벨이 얼마나 악한 마음을 품었었는지 하늘의 천사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스벨의 반역의 결과가 다 드러나기 전에 그를 제거했으면 천사들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더 깊어졌을 것이고 루스벨이 얼마나 악한 마음을 품었는지 모두가 완전히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물이었던 루스벨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사랑하셨기에 그를 기다려주시고 그를 멸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용납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루스벨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루스벨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지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품지 않고 자신의 이기적인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와 같은 우리의 품성을 오래 참고 계시고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서 당신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활용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당연스럽게 생각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시험은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루스벨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나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보이십니까? 나보다 더 존경을 받는 어떤 위치의 사람이 보이십니까?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분명 당신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 사람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각자 위치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중이 있지 않습니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우리 스스로 질투와 시기심을 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을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회개의 선물을 받아야겠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어떤 사람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을 버리지 않는다면...(회개의 선물을 구하지 않아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곧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는걸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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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성경/말씀 묵상|2020. 7. 18. 20:26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이야기들 모두가 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앞으로 시간이 되는대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의 소년들은 어렸을 때부터 랍비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지도 아래 랍비의 규칙 아래 있지 않고 자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진짜 교사는 바로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늘 구약성경을 연구했고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라는 말씀이 늘 그분의 입술에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대로 온순하고 유순한 태도로 호감을 주기 위해 힘쓰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님을 사랑하셨지만, 그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집안 형편은 무척이나 가난했기에 그분의 어린 시절은 침묵과 끈기 그리고 인내의 공과를 배우기에 적절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에게는 마리에게서 난 아들 말고 다른 아들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곧 예수님의 형제들이었는데 그들은 랍비의 교육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따랐기에 예수님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순종하는 삶'을 완고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자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접촉하고 계셨지만, 형제들은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없었나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형제들 때문에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그 형제들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친절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이 계신 가정은 좀 더 순결한 분위기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들을 그런데도 사랑해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을 예수님의 삶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에서만 순결한 분위기를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셨기에 줄 돈이 거의 없으셨지만 자신보다 더 궁핍해 보이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의 음식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에게 거칠게 말할 때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고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그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냉수를 쥐여 주고 음식을 쥐여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표준은 형제들의 삶의 표준이 아니었고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삶의 표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이 영원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아셨고 순간을 보배처럼 여기시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자연 속에 있을때 가장 행복하셨습니다. 기회가 있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들판이나 골짜기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통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목수 일을 하셨고 무척이나 가난한 삶을 사셨고 쉼을 얻어야 하는 가정에서는 형제들로 인한 심적 편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운 삶을 살기에 가난한 삶을 살기에 형제가 나에게 막 대하기에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절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그런데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우리에게 모본으로 남겨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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