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아덴의 선교사 사도바울
요즘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까요? 네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테네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그리스’는 철학과 신전으로 유명한 나라인데 그 도시가 바로 ‘아테네’입니다. 아테네 여행을 가보면 뛰어난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축물들 중 신전이 많습니다. 파르테논 신전(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의 수호자로 여겨진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신전), 에렉테이온(에렉테우스를 위한 신전), 포세이돈 신전 (수니온 곶), 니케신전 등 상당히 많은 신전이 있는 곳이 바로 아테네입니다.
사도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 바로 이 ‘아테네’ 지역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정말 1도 몰랐던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수 있는지를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4)
네 여기 성경절은 사도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은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신전을 많이 짓고 숭배하는데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아테네로 떠난 사도바울
사도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데살로니가에 이어서 베뢰아로 갔고 베뢰아(베리아)에 이어서 ‘아덴’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덴’은 우리가 아는 ‘아테네’입니다.
아테네라는 지역에 대해 간단하게 배경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리스의 성경 이름이 ‘헬라’인데, 헬라는 과거 제국을 이뤘던 국가입니다. 이 헬라 세계에서 유명했던 것이 철학, 예술, 학문 등이었는데 우리가 잘아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고향이 모두 아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덴이라는 지역은 헬라 세계의 중심지였고 영향력이 대단한 곳이었다. 한마디로 이교문화의 심장부같은 곳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아덴이 펠로폰네수스 전쟁으로 인해 크게 쇠퇴했고 빛을 잃은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과거 명성이 대단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이곳은 공식화된 우상만 300여개가 있었고 온갖 신들에게 드리는 주상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주상을 만나기가 더 쉬웠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곳을 사도바울이 선교하러 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정이 잘 나타나있는 성경절이 있습니다.
"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 (행17:16)
혹시 누가 위 성경절을 찾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이 마음이 엄청 분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사도바울이 느꼈던 ‘분함’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런 ‘분함’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사도바울의 분함은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네. 감사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책에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바울이 주위의 아름다움과 장엉함을 보고, 또한 도시 전체가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보았을 때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시는 것을 알고서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위한 질투심으로 분기되었고, 그들의 지적인 교양에도 불구하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덴 백성들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사도바울이 느꼈던 ‘분함’은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지 못하시는데에서 오는 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실에 큰 동정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아덴사람들을 봤을 때, 사도바울은 그가 느꼈던 동정심을 동기로 그들에게 선교를 하고자 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선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듯 싶습니다.
사도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
아덴에서 사도바울이 처음 선교를 했던 곳은 아마 저자였던 듯합니다. 저자라면 흔히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될 듯 합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선교를 계속하니까 어떤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보게됐겠죠?
그 내용이 행17:18~21에 나옵니다.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네 아무래도 사도바울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리’를 전하니까 아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아레오바고’라는 곳으로 초대가 됩니다.
여기서 ‘아레오바고’는 아덴 사람들의 귀족회의 였습니다. 한마디로 지식인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여기로 사도바울이 오게 됐습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여기서 그 유명한 ‘아레오바고’연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아덴 사람들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깐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도바울도 지적 교양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는데 가말리엘은 유대교 바리새파 중 최고의 학자였다고 전해지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가말리엘의 수제자 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레오바고에서 유대교 최고 학파의 수제자와 헬라에서 사상의 홍수를 이뤘던 사람들이 만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무래도 그가 가말리엘 밑에서 배운 언변과 지식을 성려께서 사용하실 것으로 기대했던 듯합니다. 듣고 있던 청중이 사도바울의 논리 정연함, 지식에 놀랐지만 이 전도방법에는 결실이 적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별로 없었습니다.
"아덴의 철학자들을 만났을 때의 사도 바울의 경험을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중 논리는 논리로, 과학은 과학으로, 철학은 철학으로 대항하였다. 그의 청중들 중 가장 현명한 사람도 놀라서 아무 말을 못했다. 그의 말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별반 결실이 없었다.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바울은 활동의 방법을 바꿨다"
비록, 아덴에서 사도바울이 선교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실패에 가까운 경험을 했지만 우리가 알 듯이 그것은 과정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이 아덴에서의 경험은 훗날 큰 교훈으로 자리잡아 사도바울의 선교 태도를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그 내용이 잘 나와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노라" (고전2:2)
사도바울은 이 경험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게 됩니다.
이제 자신의 지식으로 선교를 하던 사도바울이 겸손해져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기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할 때 전해야 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나처럼 더럽고 죄많은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가 전해야합니다. 그 사랑의 절정이 곧 높은 곳에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할 때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높이되 우리 자신은 그 아래 낮아져야겠습니다.
Q. 바울은 아덴에서의 경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노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혹시, 내가 전도를 하다가 혹은 선교를 하다가 얻은 경험 혹은 교훈이 있으면 한번 나눠볼까요? (크건 작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지금 나누는 작은 경험이 이후에 여기 있는 누군가가 복음을 전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선교의 열쇠: 접점 찾아내기
비록, 결실이 적었던 아덴에서의 사도바울이었지만, 우리가 그에게 배워야할 교훈이있습니다.
<성경 행:17:22~23>을 누가 읽어주세요.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네. 저 같았으면 이질감을 느끼고 바로 너네들 우상 이거 잘못됐다 이렇게 말해버릴까 같은데, 사도바울은 오히려 그 사람들의 영적인 호기심을 칭찬합니다.
사도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거짓 신과 종교를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바울이 아덴사람들의 종교적 열심을 자신과의 ‘접점’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가 나와 비록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배경을 존중하고 나와 그들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이 선교에서는 중요한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셉붓소 이야기
조셉붓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국인이며 한국말이 서툽니다. 그는 세상사람들과의 접점이자 자신의 달란트를 '노래'라고 생각한듯 싶습니다. '너목보'에 나가고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 노래를 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고 심지어 그가 노래를 잘하기에 그에게 흥미를 느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된 사람들 혹은 믿게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과의 접점을 찾아야합니다. 그 접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갈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모두 자신과 세상의 접점을 찾아내보면 좋을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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