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 8장 23절-27절, 예수님의 믿음

성경/말씀 묵상|2021. 2. 21. 21:48

마태복음 8장 23절~27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무리가 배를 타고 이동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등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피곤과 시장기에 지쳐 낮잠을 청하셨습니다. 이때, 갑자기 제자들과 예수님께서 탄 배에 큰 폭풍이 몰아칩니다. 번개도 치고 심지어 물이 배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강인한 어부들은 물을 안간힘을 쓰며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폭풍은 거세지고 바람은 더 세찼고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불렀을 때, 바람 소리에 그들의 소리가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늘의 평화를 나타내시며 낮잠을 주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사옵나이다"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리고나서 다시 그들의 최후의 힘을 다해 노를 저으려할 때, 예수님께서는 두손을 높이 드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자 갑자기 성난 바다와 거센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두려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하셨을까?

일반 사람이라면, 그 모습은 믿음이 적은 모습이 아닐 텐데, 그리스도인이기에 제자들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다고 표현하신 듯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몸담아왔던 그들이었기에 그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조금 난처해지자 예수님을 불렀으나 바람에 음성이 묻혔을 때, 그들은 다시 예수님께 다가가거나 예수님을 더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깨우기까지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 깨웠을 때 조차도 그들은 예수님께 한마디만 하고는 다시 노를 저으려고 했습니다.
 
다시 노를 저으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그때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죠.

믿음은 나의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네. 우리가 살펴봤던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겉으로만 의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정말로 믿었다면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바빴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살펴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경을 헤맬 때, 편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의지했으나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그분 자신을 맡겼기에 그 죽음의 찰나에도 하늘의 평화를 나타내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도상에서도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과 채찍을 맞으면서도 온유한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셨죠.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의 힘을 믿고 나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돌보심을 믿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편하게 안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평화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악인은 악한 마음을 품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도 성경에서는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57:20~21)
 
 
저도 요즘 악인 같은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금도 나를 돌보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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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산상수훈 2, 매일성경, 마태복음 5장, 마태복음 6장, 마태복음 7장

성경/말씀 묵상|2020. 12. 12. 15:18

매일성경 말씀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매일성경 오늘은 마태복음 6장과 마태복음 7장에 대해 말씀해드리겠습니다. 매일성경을 읽음으로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볼 때 생깁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며 성령은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아질때까지 쉬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이기심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기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게 하고 볼 수도 없게 만듭니다. 성령의 감화에 응답하는 이기심 없는 심령만이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사람은 화평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참된 화평을 창조하고 영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분의 은혜가 마음에 심겨질 때 그리스도의 화평에 속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에 응답하여 하늘의 복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성경 을 묵상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는 제자들뿐아니라 바리새인의 정탐꾼들 그리고 바리새인에 의해 교육된 백성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올바른 진리를 전하고자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진리에 대한 지식과 외형적인 의식으로 자신들을 의롭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이를 만족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뒷모습은 부도덕하고 저속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의미는 삶에 나타나지 않는 진리는 무가치하다고 말씀하셨고 진정한 의는 마음과 생애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된 사람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 할때에만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참된 경건이 사상을 향상시키고 생애를 고상하게 할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의 내용처럼 우리의 삶이 사람을 신경쓰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함으로 내적인 순결이 겉으로 발산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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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경 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이어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의 보호 아래서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참새를 돌보시고 들의 꽃이나 초목에게도 관심과 보호를 베푸십니다. 하물며 당신의 형상과 영광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돌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돌보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따라야 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한 도움을 주시지 않는데 이는 혼란하게 되도록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억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만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전 생애에 감화를 끼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에서 사람들에게 신앙생활과 삶에 감동적인 말씀을 주신 예수님, 그분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지처럼 가벼운 자아를 기초로 삼지 않고 오직 흔들림 없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삶의 모든 부분에서 반석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성경 을 펼치며 하나님앞에 선다는 마음으로 서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권고하는 말씀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에 대한 이상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온전함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처럼 높습니다. 사탄의 힘이 죄에 대한 구실로 간주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에 대해 변명할 때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이런 핑계이며 죄를 범하는 데에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이상은 바로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서 완전한 생애를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애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승리 하신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본성을 취할 때 예수님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구함으로 죄에서 분리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죄가 너무나 무섭기 때문에 우리를 그대로 두고 떠나지 않으시고 성령을 약속하신 예수님, 오늘도 성령을 구하여 거듭 하나님께로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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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산상수훈 1, 팔복, 마태복음 5장, 마태복음 6장, 마태복음 7장

성경/말씀 묵상|2020. 12. 8. 16:49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번에는 산상수훈 편입니다. 산상수훈 1편입니다. #마태복음 5장 주석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 마태복음 6장 마태복음 7장에 걸쳐 예수님께서 실제는 제자들에게 그러나 많은 무리가 있는 곳에서 하신 유명한 말씀입니다.

 

먼저 산상수훈의 시작이 되는 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팔복, 여덟가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 온유한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애통은 죄를 슬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할 수는 없지만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분을 볼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나의 죄로 인해 애통하게 됩니다.  온유, 모든 것에 순응하는 기준 없는 부드러움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유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한 마음의 겸손과 자제를 통한 고결성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선 애통을 느끼는 사람과 온유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들일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애통을 느끼고 온유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며 이 사람들이 하늘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구하여 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고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여 온유한 품성으로 만들어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뻐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산상수훈중에 있는 마태복음 5장 14절에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태복음 5장 주석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비추어야 하는 빛은 스스로 발하는 빛이 아닙니다. 그 빛은 세상의 생명이고 세상의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빛입니다. 예수님은 빛을 일으키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할 빛까지도 그분께서는 붙여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점점 세상은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 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이 주시는 빛으로 부르신 곳에서 작은 광명을 일으키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중 마태복음 6장과 마태복음 7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에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연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거두어들이지도 모아들이지도 않는 새들, 스스로 아름답게 치장할 수 없는 백합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들을 생각해보라고 하시며 그것들을 입히시고 먹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자연의 사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어떻게 우리를 돌보실지 믿음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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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예수님께서 생애 가운데 자연에서 비유를 정말 많이 사용하셨는데 그 이유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대가 없이 주신 그분의 선물을 통해 기별을 주신 것은 아닌가 하는 묵상도 해봅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는 자연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분의 형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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