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다니엘서, 참된 성공, 절제, 정욕, 식욕

성경/다니엘|2025. 3. 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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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예민한 이해력, 해박한 지식, 정선(精選)된 정확한 언어는 그들의 힘이 쇠퇴되지 않고 그들의 지력이 왕성함을 보여 주었다..

바벨론 궁정에서는 모든 나라의 대표자들 즉 최고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 가장 부요한 천부의 재능과 세상이 부여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 히브리 청년들과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체력과 용모와 지력과 학식에 있어서 그들과 비길 사람이 없었다. 바로 선 자태, 굳고 탄력 있는 발걸음, 우아한 용모, 흐리지 않은 판단력, 오염되지 않은 호흡 이 모든 것은 좋은 습관에 대한 수 없는 증명서요 자연이 그 법칙을 순종하는 자들을 명예롭게 하는 고상한 훈장이기도 했다.

묵상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됐다. 그들의 거룩한 구별의 삶이 그들을 남들과 다르게 했다. 그들의 이해력, 지식, 언어, 심지어 용모, 판단력, 바로선 자태(태도와 모습) 등 모든 것이 뛰어났다. 그것은 그들의 좋은 습관에 대한 증명이었다. 그들은 자연의 법칙에 순종했다. 이것은 자연이 그 법칙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명예로운 훈장이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르게 보인다.

 

다니엘과 그 동무들은 바벨론 사람의 지혜를 습득함에 있어서 동료 학생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으나 그들의 학식은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고 하나님의 지식을 저희 교육의 기초로 삼았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기도하였고 저희의 기도를 실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있는 곳에 자신들을 두었다. 그들은 저희 능력을 약화시킬 만한 것들을 피했고 각 방면의 학문에 있어서 이해력을 기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선용했다. 그들은 지력을 얻을 수 있는 생활의 법칙들을 따랐다. 그들은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였으니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교의 거짓 신앙 중에서 참 신앙의 대표자들로 서기 위하여 명료한 지력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 성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교사가 되셨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실히 연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접촉함으로 그들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어떤 방면의 사업에서든지 참된 성공은 기회나 우연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하는 일이요 신앙과 분별력의 보상이요 덕행과 인내의 보상이다. 우수한 지적 바탕과 높은 도덕적 경향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들을 주시며 성공은 기회를 이용하는 데 달려 있다.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 동무들에게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 소원을 두고”(빌 2:13) 역사하고 계시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이룩하고 있었다.

묵상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무언가에 대해 노력을 할 때 '기도'를 안한 적은 없는 듯 하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것이 다니엘과 3명의 친구가 지식을 얻기 위해 가졌던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이 모범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과 학문을 쌓을 때, 단순하게 그것을 공부하는 시간만을 '노력'으로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지식보다 뛰어난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함으로써 그 지식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지식보다 뛰어난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지적 내용들이 흘러 나오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이해하고 연구하고 알아가려고할 때 다른 지식들이 따라오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들의 삶의 방식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 '각 방면의 학문에 있어서 이해력을 기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선용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지식을 얻기위해 자연에서도 그 학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며 주변 지식인들에게도 끊임없이 물어보고 책도 찾아보며 부지런하게 공부했을 것이다.

그들은 또 건강하게 생활했던 것 같다. '지력'을 얻을 수 있도록 생활 법칙을 따랐다고 하니 아무래도 자야할 때 자고 일어나야할 때 일어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갔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대단하고 본 받아야 하는 일이 그들이 이 지식을 얻고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대한 목적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이 일을 했다. 정말정말 멋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런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여기에 완성된 거룩한 협동의 원칙이 나타나 있으며 이것이 없이는 참된 성공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아무 쓸모가 없고, 인간의 애씀이 없이는 하나님의 수고가 많은 사람에게 전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몫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뜻을 정하고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지 결코 우리의 노력의 대용물로써 주신 것은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과 그 동무들과 협력하신 것처럼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실 것이다. 당신의 성령을 나누어 주심으로 그분은 모든 참된 목적과 모든 고상한 결심을 굳게 하실 것이다. 순종의 길로 행하는 사람들은 많은 방해에 직면할 것이다. 강하고 교묘한 감화가 그들을 세상에 붙들어 맬 지 모르나 주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사람들을 패배 시키려고 작용하는 모든 행위를 무용하게 하실 수 있으며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은 모든 유혹을 이기고 모든 난국을 극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 동무들을 바벨론의 위대한 사람들과 교제하게 하셔서 그들로 우상 숭배자들의 나라에서 당신의 품성을 나타낼 수 있게 하셨다. 어떻게 그들은 그처럼 큰 임무와 명예스러운 지위를 맡기에 적합한 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의 전생애의 특징은 작은 일에 충성함이었다. 그들은 가장 작은 의무에 있어서도 큰 책임을 맡았을 때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바벨론에서 당신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 다니엘을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를 세상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도록 부르신다. 일상 생활의 가장 큰 일에서처럼 가장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어떤 큰 일이 주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날마다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낼 기회를 잃는다. 날마다 그들은 생애의 작은 의무들을 성심 성의를 다하여 수행하기에 실패한다. 그들은 큰 재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큰 사업을 기다리며, 이와 같은 그들의 열망에 자족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의무가 다 중하다. 주께서는 봉사를 위한 모든 가능성을 정확하게 측정하신다. 사용하지 않은 능력들에 대해서도 사용한 능력과 똑같이 책임을 추궁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했어야 할 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고상한 품성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며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은총이나 거저 주심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기 수양과 고귀한 품성을 위하여 비천한 성질을 버리는 것과 하나님과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일의 결과이다.
히브리 청년들이 보여 준 절제 원칙에 대한 충실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다니엘처럼 담대히 바른 주장을 이행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순결한 마음, 강한 손,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악과 선 사이의 투쟁에는 끊임없는 경계가 요구되는 까닭이다. 사단은 모든 영혼들로 하여금 식욕에 방종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유혹을 가지고 시험한다. 몸은 품성의 건설을 위하여 마음과 정신을 계발시키는 가장 중대한 매개물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원수는 체력을 약하게 하고 퇴화시키는 데 그의 유혹을 주력한다. 이 점에서 그가 성공했다는 의미는 때때로 전 존재가 악에 굴복 당했다는 뜻이다. 육체적 성향이 보다 높은 능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분명히 파멸과 죽음을 초래할 것이다. 육체는 보다 높은 능력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정욕은 의지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의지 그 자체는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이성이 생애를 지배해야 한다. 지력과 체력과 수명은 불변의 법칙에 의존된다. 이 법칙에 순종함으로 인간은 자신을 정복하고 자신의 기호(嗜好)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을 정복할수 있다.

묵상

식욕과 정욕에 대해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도 투쟁하고 있다. 투쟁이 뭔가... 반 포기상태디고 의식도 없을 때도 많다. 그런데, 위 말씀에 정답이 제시돼 있다. '육체는 보다 높은 능력에 복종해야 한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식욕과 육체적 정욕은 우리의 '의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나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니엘과 3명의 친구처럼 우리는 기도에 기도를, 연구에 연구를, 노력에 노력을 해 우리의 '이성'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하며 그 '하나님의 성화된 이성'으로 우리의 몸을 우리의 생애를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상징한 고대의 의식 중에서는 흠 없는 제물만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릴 수 있었다. 그리스도를 예표 해야 할 희생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자녀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엡 5:27)는 “산제물”(롬 12:1)이 되어야 할 것의 예증으로 이를 지적하였다. 히브리의 존귀한 자들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벨론 궁정의 유혹적인 영향을 저항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무한하신 능력을 의지한 까닭이었다. 이교의 민족은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예증을 보았다. 

히브리의 존귀한 자들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벨론 궁정의 유혹적인 영향을 저항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무한하신 능력을 의지한 까닭이었다. 이교의 민족은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예증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경험에서 유혹을 이기고 타락 중에서도 순결을 지키는 원칙과 무신론과 우상숭배 중에서도 헌신하고 충성한 승리의 실례를 볼 수 있다. 다니엘이 가졌던 그 정신을 오늘날 청년들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한층 더 불리한 환경 아래서도 동일한 능력을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으며 동일한 자제력을 가질 수 있고 저희 생활에서 동일한 미덕을 나타낼 수 있다. 각종 형태의 관능적 쾌락이 쉽게 행해지고 또 이를 부추기는 대도시에서 방종하고 싶은 유혹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그들의 목적을 굳게 유지할 수 있다. 굳은 결심방심치 않는 경계를 통하여 그들은 영혼을 엄습하는 모든 유혹을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의를 행하려고 결심하는 자만이 승리를 얻을 것이다.
이 고상한 히브리인들의 필생의 사업은 얼마나 훌륭했는가! 그들이 유년 시절에 성장한 가정을 작별할 때는 얼마나 고상한 운명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충실하고 끈기있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으셨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내신 동일한 강력한 진리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청년들과 어린이들을 통하여 나타내시고자 하신다. 다니엘과 그 동무들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당신께 복종하고 전심으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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