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침례요한, 안드레, 빌립)

성경/요한복음|2024. 10. 2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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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과 위 말씀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거듭나야 반드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첫번째 증인-침례 요한 (요1:19-23)

예수님이 오시기 전 침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증인이었습니다.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Q1) 침례요한의 사명은?

침례 요한의 사명은 분명했어요.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일!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인지 알게하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이 곧 침례 요한의 사명이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바로 오시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Q2) 침례요한은 기별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했을까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듣기 싫은 말을 해야 했고 엄숙한 기별을 전해야 했기에 그는 철저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우리는 지난주 목사님 설교를 통해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됐다. 그런데, 만약 그 목사님께서 설교단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단에 내려오시자마자 정말 개차반의 모습을 보이신다면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은혜는 분명 깨질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설교는 단에서부터가 아니라 단을 내려오면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죠. 침례요한도 그가 전했던 기별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려면 그의 삶으로 그의 기별이 사실이라는 걸 말해야 했어요.

 

  • 침례요한의 증언: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요1:29-33)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Q1) 요한은 어떻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 수 있었는가?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후에, 감옥에서 제자들을 통해 기별을 보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침례요한은 분명,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는데도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자 예수님께 기별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리이까?'하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침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 돌려보내신다. 침례요한은 그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았을 것이다

Q2) 침례요한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는 증언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사람들은 잘못된 관념 속에 잡혀 살았다. ‘메시야’에 대한 오해인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의 속박에서 살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에 의해 지배당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메시아는 마치 우리나라의 광복과 같이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무력으로 구출해줄 한 영웅적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로마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 이었음. 그래서 사람들의 잘못된 관념속에 올바른 메시아관을 증언하는 일이었기에 중요했다!

*참고성경절

막10:45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롬5:6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벧전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두번째 증인 - 안드레, 사도요한 (요1:35-39)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Q1) 요한의 증언을 듣고 가장 먼저 예수님을 좇은 두 사람은 누구인가?

40절에 보면, 안드레 / 나머지 한명의 이름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요한의 서술 방식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쓰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쓰는 것을 통해 요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고성경절에 있는 요 21:24이 이를 뒷받침 하는 내용임.

Q2) 그들이 주님을 만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38-39절에 나와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서 말씀을 직접 들었고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우리가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법칙을 뛰어 넘을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 직접 가보고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시는게 얼마나 은혜로운지를 경험하고서야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오래 교제하며 시간을 나눌 때 우리는 그분의 증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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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예수님 올바로 이해하기! (말씀하나님, 성육신하신 하나님)

성경/요한복음|2024. 10. 2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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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서론에서 예수님이 하나님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하나님, 태초에 계셨던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 등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어요. 이번주는 말씀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이시자 육신의 몸이 되신 하나님인 예수님에 대한 주제로 살펴보아요.

 

본문성경절 요한복음 1:1-5

1 태초에1)말씀이 계시니라 이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2)깨닫지 못하더라

 

Q1) 요한은 요한복음 서론에서 지금 예수님에 관해 어떤 믿음을 선포하고 있나요?

Q2)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곧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것을 성경적으로 증명을 해야 합니다. 어디에 그 근거가 있을까요?

빌2:4-5, 사9:6, 롬9:5, 요일5:20, 행20:28, 디도서 2:13, 히1:8, 시 45:6

 

빌2:5-6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롬9: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나셨으니1)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Q3) 우리가 찾은 성경절 3개 외에도 많은 구절들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성경을 올바로 믿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자,  돌아와서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로 인해 역사적으로도 많은 토론이 있었는데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요1:14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4)진리가 충만하더라

Q1. 왜 굳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했는가?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범죄한 시점부터 복음을 주셨어요. 지금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면서 한 말씀이죠. 여기에는 ’여인의 후손‘이 나옵니다. 여인의 후손은 곧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땅에 오신다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 육신의 몸으로 오신겁니다.

우리 요한복음 1장 14절 한번 다시 볼까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이 여기서 ’거하시매‘라고 사용한 단어의 의미가 ’천막을 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천막인 성소를 통해 인간을 만나고자 했던 그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데 곧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성육신하심으로써 인간들과 가깝게 접촉하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가리셨어요.

빌립보서 2장 7절에도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비우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고 말씀하여 이 영감의 교훈 내용을 증거하고 있어요.

요1:9-13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Q1. 12절에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뭐,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마저도 빛을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뭐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겼지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사건 후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말이 내가 곧 하나님다 라는 의미였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갔다는 건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지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침례요한도 이 사실을 말했어요. 침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요한복음 3:31-32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인 자가 없었고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화요일 소지 <교훈>의 내용을 누가 읽어주실 수 있나요?

 

’요한복음의 중심 주제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지 혹은 거부하는 지에 대한 것이며 그것은 주어진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의해 시작된다.

 

-->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지 혹은 거부하는지 시작된다는 의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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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마가복음 16장 예수님의 부활은 정말 사실일까?

성경/마가복음|2024. 10. 1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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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활은 우리가 믿는 신앙에서 왜 중요할까요?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 16:6)

 

우리는 지난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기시게 된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아까, 우리가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봤는데 저도 고백하면 부활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사실 많이 없습니다. 

 

예전 교회에서 같이 축구하면서 지냈던 동생네 아버지가 집사님이셨는데 그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장례식에 참석하게 됐을 때 그렇게 좋은분이 돌아가시다니 슬프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어렴풋하게나마 부활에 대한 소망을 잠깐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때 말씀드렸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있어서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는 듯 합니다.

 

근데, 요즘 더 느끼는 것이 이제 점점 부모님께서 나이가 들어가시는데 사람의 ‘죽음’은 피할 수가 없기에 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제가 확실하게 믿고있지는 못하지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정말 작은 소망이라도 갖게 되는 것 같아서 감사한 것 같습니다. 제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엄청 없는데 이것과는 별개로 ‘부활’은 우리가 믿는 신앙의 근간이 되기에 무척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저처럼 부활에 대한 믿음이 아직 없는 분들은 그래도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부활’을 알고 또 부활을 믿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안에서 잠들 수 있도록 전심으로 기도하길 바라겠습니다!

제 16 장

살아나시다 


1
안식일이 지나매막달라마리아와야고보의 어머니마리아와 또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1)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나사렛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Q1.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언제였습니까?

안식후 첫 날이기에 일요일 아침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사복음서에서는 이들이 해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갔고 예수님의 부활은 그날 미명에 일어났다고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그 날을 안식일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활을 의미있게 당연히 생각해야 하지만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는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정리하면, 예수님께서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날을 예배일로 지키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Q2.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골로새서 2장 12절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침례예식을 통해서 부활을 기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침례의 의미가 물속에 잠김으로 인해서 완전히 몸 전체가 죽은 상태였다가 다시 일으켜지면서 새 생명을 얻는다 곧 부활했다는 의미인데 우리가 이것을 진정으로 기념하는 방법은 침례의 행위도 그렇겠지만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안에서 거듭나는 경험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 죽으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성령의 침례를 통해 나의 그 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지어주셨다는 믿음을 갖고 그때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 진정 부활을 기념하는 방법

 

 

Q3. (교과 적용질문)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들에게 인생을 뒤바꿀만한 사건이 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요일 본문에서 찾아볼까요?

 

6절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시면 청년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하면서 말로만 하지 않고 무엇이라 합니까? 와서 보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거를 직접 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이 여인들은 이것을 보고 뭘 했을까요? 마태보음 28장 8절 “그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을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려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여인들이 슬픈마음으로 예수님의 시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아 누가 이 큰돌을 굴려주면 좋을텐데.. 그런데, 한 청년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직접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이제 믿음가운데 기뻐하며 그 소식을 전하러 가는 겁니다.

 

즉, 우리들도 부활을 성경상의 이야기로만 치부하지말고 개인 스스로가 성경과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찾을 때 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부활’이 나에게 산 소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월 돌이 굴려져 있는데

 

7가서 그의 제자들과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정리: 다른 복음서를 참조해서 보면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한 소식을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돼 두려워하면서도 기뻐했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하고자 말을 아꼈다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합니다.>

 

Q1.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서 1장 4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만약,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정말 4대 성인으로만 남으셨을 수도 있다는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셧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겁니다. 그래서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Q2. 아까 학습목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적이나 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일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우선, 역사로 기록에 남으려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거를 과학적 입증 방법을 거쳐서 역사로 기록에 남게 됩니다.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을 역사학자라고 하는데

 

토마스 아놀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가장 잘 증명된 사실이다”고 이야기했어요. 역사학자인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이 가장 잘 증명된 사실이다고 말했어요. 학자들이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이야기로만 치부될 것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겁니다.

 

역사학자들보다도 더 증거중심주의 자들이 법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의 애드워드 클락 이라는 대법원 판사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법률적으로 검토했어요. 법률 재판 때의 사건을 다루듯 증거와 자료들로 검토를 한겁니다. 그리고 뭐라고 했냐면 “내가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확증적이다. 내가 대법원에서 많은 판결을 내려봤는데 이렇게 확고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신실한 증거는 항상 꾸밈이 없고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법률가로서 복음서의 증거를 받아들인다. 부활은 사실이다”고 말했어요.

 

저널리스트들도 엄청 비판적인데,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참 비판하기 좋은 사건인 듯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볼 겁니다. 프랭크 모리슨이라는 저널리스트는 사람들이 바보같이 믿는 예수님의 부활을 오류로 도출하기 위해서 저널리즘의 열정을 갖고 그 사건을 파헤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저 신화일 뿐이다 면서요.

깊게 파헤치고 파헤치고 그 결과를 책으로 썼습니다. 그 책은 결과적으로 부활의 허구성이 아닌 부활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책이 되버렸습니다. 그 책이 바로 ‘누가 돌을 옮겼는가’하는 책인데, 부활에 관한 아주 고전적인 변증서로 남게 됐습니다.

 

최근에도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이 일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리스트로벤이라는 사람인데 미국 ‘시카고 트리뷴지’에서 근무했던 사람인데 유명한 신문사인데 그 사람도 그것을 파헤치는 겁니다. 그 사람의 동기는 아내였습니다. 자신이 유명한 신문사의 저널리스트인데, 심지어 법률을 전공해서 과학적인 증거들과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인데 자신의 아내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겁니다. 그 사람에게는 미신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 사람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어요. 발품을 팔면서 몇 년동안 최고의 석학들을 만나고 다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오류로 입증하기 위해서요. 다년간의 연구가 마치고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버렸습니다. 이 책이 편찬됐고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개봉됐습니다. 영화제목 아시나요? “예수는 역사다” 실제 자기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아까 무덤을 찾은 그 여인들처럼 그 증거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깨져버리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증거 4가지

 

  1.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

눅24:3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반론1: 죽지 않고 혼절했다가 깨어나고 무덤을 탈출했다.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몸이 찢겨졌고 과다출혈 상태였고 극히 안좋은 몸상태로 6시간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고 거의 다 죽은 상태로. 창으로 심장을 관통했을 때 물과 피가 분리돼 나왔고 이건 찾아보니까 심장이 펌프질을 멈췄기 때문에. 사망선고를 받고 빌라도 총독이 재차 확인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는지. 그런데, 그 상태로 살아있다고 해도 의료 조치 없이 그 차가운 돌무덤에서 30시간이상 갇혀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살아 있더라도 그 바위를 굴려내고 밖에는 누가 있나요? 영화에서는 2명인데, 로마 군사 100인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파수꾼이 100인대였기 때문에. 당국자들이 두려워서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막고자 그렇게 배치한겁니다.

 

반론2: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

제자들은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훔쳐갔다는건 말이 안되기에

반론3: 당국자들이 시체를 숨겼다

 

그래서 시체가 사라진 것은 부활밖에 증거가 없다.

 

2. 예수님의 수의가 정리돼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게 아니라면 탈출했다면 그 급박한 상황에서 수의를 정리하셨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부활하신 분이 정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역사적 사실.

 

3.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다수였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서로다른 부활사건이 10건이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 여 제자들, 베드로, 엠마도 2제자, 다락방 10제자, 도마, 갈릴리 산에 모여서 예수님을 본 500여명의 성도들, 주의 형제 야고보, 갈릴리 호수에 갔던 사도들, 승천하실 때 감람산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목격자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너무 슬퍼한 나머지 허상을 본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는데 동시에 한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목격자가 있는 것이 그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됩니다.

 

4. 제자들

 

사도행전 4장 18-20절 누가 읽어주세요!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산헤드린이 야 니네 예수님 이야기하지마라 죽는다 이럽니다.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너희의 말을 듣는게 나은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게 많은지 판단해봐라. 우리는 보고 들은 걸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쫄아서 도망가고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 너 예수님이랑 같이 다녔던 사람 아니야 하니까? 난 모릅니다 하면서 3번이나 부인했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산헤드린에 맞서는 겁니다.

 

마지막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제자들은 부활사건을 기준으로 달라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전후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어요.

 

예수님의 부활 전에는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폭도들에게 예수님을 내어주고 도망가고 

믿음없는 모습을 보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이후,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고 끓는 어떤 사람은 칼에 목이 잘리고 어떤 사람은 끓는 물에 몸이 던져졌습니다. 십자가 사건처럼 예수님 부인하고 도망가면 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사람이 바뀌기가 정말 어려운데 어떻게까지 제자들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예수님의 부활말고는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도 성경상의 이야기로만 부활을 이야기하지말고 부활을 나의 삶에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댓글()

[마가복음] 마가복음 15장 1-32절 빌라도, 구레네 시몬, 십자가

성경/마가복음|2024. 10. 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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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시에 예수께서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막15:34)

서론: 마가복음 15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마가복음 후반부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15장은 그 중심입니다.

  • 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막 15장1-15읽기)

1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빌라도가 묻되 네가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요약: 대제사장들과 장로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빌라도라는 로마 총독에게 넘겨줍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그리고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총독의 역할은 

  • 총독은 조세 업무 감독.
  • 중요한 경우에는 재판관으로 활동.-사형 판결을 내리고 집행하게 하는 것도 총독의 권한
  • 총독은 또한 군대를 통솔

 

Q1. 빌라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15:1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는 일을 예수께 고하니 (눅13:1)’라는 말씀으로 보아 빌라도는 언제라도 사람들을 쉽게 죽이는 사람이자 폭력적으로 다스렸다는 의미입니다. 군대가 성전까지 들어와서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을 쳐 죽인 일이 있었다는 의미.

 

15장 1절에 보면 산헤드린은 언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러 갑니까? 네 맞습니다. 새벽부터 갑니다. 왜 새벽부터 갔을까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 마가복음 14장을 연구했는데 막14:2에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지 않기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합의를 봤습니다. 만약,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면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지지난 시간에 영상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보았어요. 예수님이 입성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 만약, 적법절차에 따라 예수님을 심문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했다면 분명, 민중이 난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쓴 지도자들은 ‘새벽’에 불법적인 절차에 따라 그 일을 처리하길 원했고 급했음. 그래서 으레히 사형선고를 내려주기를 바라면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감

 

Q3. 질문입니다. 왜 빌라도는 예수님을 넘겨받고 갑자기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나 –15:2

 

마가복음에 많이 생략이 돼 있어서 그럽니다. 요한복음을 보니까 18장 29절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끌고온 사람들에게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가 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그랬더니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이 예수가 흉악한 죄인이니까 데려왔지 그냥 데려왔겠어 빨리 사형시켜! 라고 하는겁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의 입장에서는 평상시 빌라도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다루듯 쉽게 다루었고 사형선고도 잘 시켰기에 새벽부터 예수님을 빨리 사형시켰으면 좋겠어서 데려온건데 갑자기 ”이 사람을 왜 죽이려고 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쥐어 짜내서 위증을 한 내용이 뭐냐면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했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했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 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누가복음 23장 2절. 그래서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예수님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종합해보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에게 빨리 사형집행되기를 바라고 빌라도를 찾아왔습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누군가를 사형집행시킬 권한이 없었어요. 그래서 로마 총독 이자 빌라도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 목숨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 또 질문입니다. 평상시에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쉽게 내리던 빌라도는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왜 죽이려고 하는지 물어봤을까요?

 

그가 예수님을 대면하고 그가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과 달리 너무나 고결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죄인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던 겁니다.

Q4. 왜 예수님께서는 허위 고소로 인한 총독의 심문에 대해서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셨을까 –15:2

예수님은 자신의 앞에 선 빌라도가 예수님 자신에게 영적으로 끌리는 것을 아셨다. 비록,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 ”옳도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자신을 끌고온 사람들이 옳다구나 싶어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 짐작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과 죽음보다 중요한 것이 앞에 있는 ‘영혼’ 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진리를 제시하신 겁니다. 

 

Q.5. 왜 빌라도 총독은 정치적 압박과 빗발치는 고소에도 그분을 살리려고 명절의 전례까지 이용하며 그토록 애를 썼는가? 빌라도라는 인물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살리려고 했습니다. 

-전체내용

빌라도 앞에서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을 상상해봅시다. 빌라도와 대면하시는 뒤편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악에 받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압박하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란스럽고 자신의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기 방어를 하려고 움직이기 마련인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자기 변호도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아도 화도 내지 않으십니다. 빌라도는 많은 심문의 경험을  통해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분에 대한 존경과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들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시대의 소망에는 ‘조롱의 표시인 자줏빛 옷을 입고 가시관을 쓰고 서 있는 그분이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에게서 나왔다’고 써있습니다. 그리고 그 빌라도의 아내의 서신에도 ‘그를 해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많이 생략이 돼 있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계속 살리려고 거의 10번에 가까이 거듭거듭 노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지어 명절의 전례를 이용하면서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우리가 빌라도를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무너진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4:27에 빌라도를 ”이방인과 헤롯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 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헤롯과 같이 그도 예수님을 거스르고 죽인 악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읽었던 성경절에서 찾아봅시다>

15절: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라고 나와있습니다.

빌라도는 그간의 심문 경험으로 그리고 양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확신대로 하지 않고 예수님을 끌고온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압박을 받게 될까봐 (이건 그가 이전에 행했던 악한 일로 인해 황제에 의해 자리를 잃게 되는 이유) 양측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무리의 만족을 주는 선택을 하게 된겁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칠까봐 그 악의 편에 섭니다. 그렇게 타협함으로써 양심을 거스르게 되는 겁니다. 즉, 내가 어떤거 하나라도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사망의 길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1: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Q. 나의 무지로 인해 잘못한 적은 없었나요? 무지라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까 무지도 잘못이라고 느꼈던 적은?

  • 막15:15-20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경례하여 이르되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요약: 빌라도가 무리가 너무 들끓자 이제 예수님을 군인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브라이도리온’이라고 나와있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병영’이라고 보시면 될듯합니다. 병영이란 군인들이 주둔하는 건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조롱을 당하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수치와 폭행을 당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오시기 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새벽 전 밤에 끌려가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수치를 당하시고 폭행을 당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빌라도의 집무처에 있던 군대는 이방사람들이었고 대제사장 가야바가 있었던 곳에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였지만 똑같이 예수님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똑 같은셨는데 이방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죄나 이방인의 죄나 다 짊어지고 가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구분없이 책임지시겠다는 의미. 그들 모두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들 모두에게 용서의 길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에서 반복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유대인의 하나님이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냐?‘ 이로써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다.

 

<월 영감의 교훈 읽기>

 

화 십자가  

 

성경구절:막15:21-32

 

21 마침알렉산더와루포의 아버지인구레네사람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예수를 끌고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그 위에 있는 죄패에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1)(없음)
2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Q1. 왜 군병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했는가

 

십자가의 실제 무게는 59kg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갈 수 없고 졸도하시니까 대신 질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보면 로마 군인들이 피지컬이 상당합니다. 실제로도 그랬을텐데 왜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지지 않았을까요? 십자가 형벌은 고대 로마의 사형 방법 가운데 하나인데 가장 굴욕적인 처형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앞에서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우리가 접하게 되는 많은 예술작품에서는 예수님의 중요 부분에 옷이 있는 그림을 우리가 접하게 되는데 요한복음 19장 23절을 보면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옥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라고 나와있습니다. 즉, 십자가형을 받게되면 나체로 십자가에 달리게 되며 굴욕과 수치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형이 가장 악명 높은 형이었던 이유는 화형이나 팽형 등도 고통스럽지만 그것들은 고통의 순간이 짧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최대한 죽지않게 인간의 정신적 한계를 체감시키고 숨을 끊는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에 보면 십자가 형을 소개한 영상이 있는데 거기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십자가형은 죽음의 모든 차원을 경험한 후에 죽게된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다시말하면 십자가는 굴욕의 상징이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신으로라도’ 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군병들도 대신지지 않았고 옆에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라는 이유로지지 않았죠. 핑계를 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구레네 사람 시므온이 예수님을 측은하게 보고 동정으로 바라보니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겁니다. 어찌보면 그가 강요에 의해 십자가를 졌다고 볼 수 있겠으나 성경 어디에도 그가 저항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동정했고 십자가를 대신 지기로 했다는 증거입니다. 21절에 보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구레네 사람 시므온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마각 기록한 이유는 알렉산더와 루포가 그의 동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시므온은 아들들을 통해 예수님을 알았을 것으로 추정은 됩니다. 

 

한가지 더 알고가면 좋은 것은 시몬이 환경에 의해 십자가를 지게 됐지만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가는 과정이 예수님을 그가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14:27)’ 고 하셨습니다. 역사상 유일하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은 구레네 시몬이 유일무이했습니다. 그말은 곧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감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는 겁니다. 이 행위 자체에서 시므온이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체험으로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그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Q2. 몰약 탄 포도주를 거절하신 이유는?

십자가형이 무척 고통스럽기 때문에 몰약탄 포도주라도 줘서 약간의 진통제 같은 역할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권하는데 이것은 관례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라도 영적인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것은 드시지 않았던 겁니다. 그 상황에서도 절제하시고 인내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이장면이 ‘몰약탄 포도주 대신 ’쓸개 탄 포도주‘라고 이 구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 69편 21절의 예언의 성취인데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포도주‘가 결국 술일텐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전쟁 중에 마취제나 진통제가 없을 때 술을 사용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잠언 23장 31-32절에 보면 “포도주를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고 또 “이것이 마침내 뱉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다”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정신이 혼탁해져서 사탄에게 뱀 같이 물리고 독사같이 쏘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마심으로써 비록 약간의 진통효과는 있었겠지만 정신을 흐리게 해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되니 그것을 생각하고 거절하셨다로 보시면 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의인으로서 묵묵히 망치질을 믿음으로써 했고 방주의 구원을 경험했던 노아조차도 그 술 한잔으로 인해 패배를 당하게 됐습니다. 

 

Q3. 왜 이런 과정이 필요했을까?

Q4. (26절)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힌 죄패가 의미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복음서에 보니까 이 죄패를 많은 언어로 기록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만국 공통어로 기록한 겁니다. 어디서 왔든 읽을 수 있게. 사실 이 죄패는 빌라도에 의해 이렇게 기록이 됐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적혀졌다고 영감의 글에 나와있습니다. 예수님의 죄패는 약간 최초의 전도지 같은 느낌이었던 듯 합니다. 전도지는 짧고 명료해야 하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어야 하고 눈에 띄어야 하는데 이 죄패가 딱 그랬기 때문입니다. 

 

Q6. 왜 꼭 예수님의 좌우편에 2명이 있어야 했을까? 왜 그들은 2명이어야 했으며 좌우편에 있어야 했을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십지가의 위에 죄패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적혀있었을텐데 그것을 지러 갈 때 이 두강도가 함께 갔고 많은사람들이 그 죄패를 봤겠지만 누구도 봤다? 그 강도들도 봤다. 그런데, 그 죄패 즉,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고도 한 사람은 구원을 얻지만 다른 한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제 3의 선택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죄패라는 전도지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왕으로 인정하거나 어떤 사람은 대적하거나 하는 겁니다. 

Q7.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조롱에 주님이 끝까지 응하지 않으신 이유를 그 조롱 속에서 찾아보자.

(영감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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