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 13장 예수님의 마지막 때

성경/마가복음|2024. 9. 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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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기 마가복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총 16장까지 구성돼 있는데 우리가 오늘 나눌 내용은 12장의 마지막 부분과 13장입니다.

 

마가복음의 총 1장-10장까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지난 주 공부했던 11장-16장까지는 무슨 내용이 나오냐면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1-10장까지는 3년반동안 있었던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이고 11장부터 16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단 일주일에서 열흘정도의 일을 6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왜 3년반동안의 이야기는 10장에 압축해 놓고 일주일 남짓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성경 6장에 이렇게 늘여놨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끝이 가까울수록 사건 전개가 어떻게 되나요? 네 느려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것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막13:26-27)

 

<학습 목표 읽기>

 

느끼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시험을 당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지 않고 시험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인도하신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행하기’에서 말하듯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을 끄고 자고 있는데 누군가 불을 켜며 깨울 때 자고 있던 내 시야에 빛이 들어올 때 갑자기 너무 빛이 밝아서 그것을 쳐다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내 영적 시각이 잠들어있으면 아무리 마지막 때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어도 예언이 성취되고 있어도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Q.  <도입질문> 사소한 행동이라고 보았던 것이 큰 결과를 낳은 것을 경험해 봤습니까?

<해외에서 축구 하고 있던 선수를 인터뷰 하는게 목표 – 스포츠 에이전시 – 사업도 살짝 같이 – 독일도 다녀오고>

 

일 주께 드린 적은 동전 두 개

<막 12장 41-44절 읽기>

두 렙돈이면 지금으로 치면 얼마정도입니까? 

 

우선, 당시 이스라엘의 화폐에는 달란트, 므나, 드라크마, 데나리온, 앗사리온, 고드란트 등이 있는데 ‘렙돈’이라는 동전은 화폐단위에 끼기에도 낮은 그냥 ‘푼돈으로 사용했던 동전’ 정도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1렙돈의 가치가 그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1/64의 가치였다고 합니다. 검색해보니까 대략 현재 최저시급 기준 8시간 근로한다고 계산을 해보니 2,500원정도 였습니다.

 

Q. 자, 그럼 다른 사람들은 훨씬 많은 헌금을 드렸을텐데 어떻게 이 가난한 과부의 2,500원 정도의 헌금이 왜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이 다른 모든 사람의 헌금보다 더 크다고 선언하셨는가?

 

우리가 읽었던 마가복음을 제가 다시한번 보니까 가난한이라는 단어가 2번, 구차한이라는 단어가 1번 나옵니다. 총 4절의 성경절인데, 마가는 이 과부가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가난한’ 이라는 단어의 원어가 휘스테레세오스라는 단어인데 이 의미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 조차 채우지 못하는 극도의 가난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생각해볼 때, 그녀에게 이 헌금은 정말정말 큰 금액이었을 것이고 큰 희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지도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많은 헌금을 드렸어도 그들에게 큰 타격도 없었을 것이고 희생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당장 내가 지금 먹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마음인 자기희생적 태도로 헌금을 드렸고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에 이것을 드려도 당장은 먹고살기 어렵지만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을 때 자신의 생활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께서 날 먹이신다는 믿음을 갖고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과부의 헌금을 크다고 선언하신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부자들의 헌금은 자기희생과 믿음이 아닌 자기영광을 위한 헌금이었던 것입니다. 나 얼마냈어! 이렇게요. 

 

하나님께서는 헌물을 드리는 동기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요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 가난한 과부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라고 그녀의 헌금의 가치를 사람들이 보는 관점 우리가 보는 관점과 다르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혹시,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부은 여인의 이야기를 모두 아시죠? 네. 그때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칭찬해주시면서 뭐라고 말씀해주시냐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내려오고 있습니까? 네 우리에게까지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자 다시 그 가난한 과부에게로 돌아가봅시다. 그 가난한 과부가 그 가난 중에 드렸던 헌금의 이야기를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듣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녀의 믿음에 감동해 헌금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내다보시고 그 여인이 다른 사람보다 헌금을 많이 넣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류대균 교과 말씀

 

Q.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헌금드리는 마음을 칭찬하셨지만 과연, 그 돈이 하나님의 사업에 바르게 사용된다고 볼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시기 하루전에 무슨일이 있었냐면 성전 정결 예식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모습이 어땠습니까? 장사의 소굴이었습니다. 이 여인도 분명, 자신이 헌금을 드렸을 때 지도자들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그것을 알고도 헌금을 드렸던 것입니다.

 

Q. 오늘날, 우리가 드려지는 헌금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 행정 절차에 맞게 쓰여집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그 헌금이 우리가 느낄 때 올바로 사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헌금을 드려야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시대의 소망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은 과부의 예물을 강요하여 악용한 이기심을 책망하셨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창고에 그의 예물을 가져온 과부를 칭찬하셨다. 사람이 예물을 악용한다고 하여 그 바친 자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소망,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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