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19절 - 빌립보서 1장 30절
Q) 내가 가장 이기적일 때는 언제인가요?
- 빌립보서 1:19-20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1:19
19절부터 보면
바울이 ‘내 구원’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내 이건 첫 번쨰는 감옥에서 석방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영적인 구원 이 두가지를 포괄해서 본다고 합니다.
또 19절에서는 ‘너희 간구’라는 건 이제 빌립보 교인들의 기도와 간구를 뜻하는데 바울이 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기도를 의지함을 알 수 있어요.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되려 하나니
====1:20
지난주 교과에서 빌립보서가 바울의 책 중에 어떤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네. 옥중 서신 즉, 감옥에서 쓴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사실 빌립보서를 썼을 때 바울은 감옥에 있었고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이었죠. 그래서 재판 결과에 따라 죽거나 아니면 풀려나거나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살든지 죽든지 재판정에 섰을 때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증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겁니다.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고 급박할 때 사람은 ‘이기적’이 되고 자신밖에 생각을 안하게 되는 존재인데, 바울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 사람 같아요. 자신의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재판결과는 중요치 않고 오직 빌립보 교회를 걱정하고 영혼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Q) 자기 주변에 혹시 이렇게 바울처럼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아내랑 친한 친구분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그 사모님은 자기 먹을 것도 주고 선물도 주고 선교를 떠나야 해서 경제적으로 압박이 있을 상황에도 주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장 그리스도인 같은 분인 것 같아요.
- 영감의 글
가장 헌신적인 사람- “사도 바울의 경험과 목사의 사업의 신성성에관한 교훈은복음 전도에종사하는이들에게 도움과 영감의 근원이다. 바울의 마음은 죄인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으며 그는 영혼 구원 사업에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그는 세상의 어떤 이보다 더 헌신적이요 끈기 있는 일꾼이었다. 그는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 사용할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구주에 관하여 설교하고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돕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사도행적, 367).
- 빌립보서 1:21-22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1:21
바울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이건 그의 삶 전체가 예수그시르도라는 의미로 예수님에 매여있고 예수님께 집중돼 사랑, 희망, 복종, 복음전파 등이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넘쳐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살고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들도 주변 누군가의 ‘죽음’을 겪어 본 나이인데, 바울에게는 이제 정말 ‘죽음’이 눈앞에 있는 그런 상황이었을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편지를 써서 빌립보 교회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죽기전에 조금이라도 더 교회를 위해 애쓰겠다는 일념으로 했을 겁니다.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1:22
22절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만약 석방이 된다고 하더라도 복음전파를 위한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말을 하고 있어요. 저는 만약에 오랫동안 감옥에 석방돼 있다가 풀려나면
오예 하고 스타도 많이 하고 아내랑 여기저기 좋은데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할텐데 그런 이기적인 모습은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영혼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이기심 없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기를 마치 옳은 일을 위해 싸우듯 해서는 안된다. “힘 있는 자가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자가 힘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존귀한 일이며 분명, 우리에게 주어진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다.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가장 완전한 모본이시다.
Q) 우리들도 사도바울처럼 ‘이기심’ 없는 모습을 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기심을 버릴 수 있을까요?
- 영감의 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유익함 - 이 정신이 바울의 생애 가운데 명백히 나타났다.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그의 생애는 사람
들에게그리스도를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였다. 죽음조차도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낼 것이며 영혼을 그에게로 모을 것이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빌 1:21, 20) 한다 말하였다”(시대의 소망, 549)
- 빌립보서 1:23-24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1:23
‘두 사이에 끼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네. 첫 번째는 석방돼서 복음사역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음 후에 바라보게 될 부활입니다. 이 두가지 소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두가지 중에서 이제 편하게 죽으면 기다렸다가 부활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으니 그 이야기를 뒤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1:24
네. 그런데, 여기서도 이기심없는 사도바울의 모습이 나옵니다. 나는 죽어서 기다렸다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픈 소망이 있는데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는 너희들이 너무 걱정이 되니 석방돼서 너희와 함께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내용>
바울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 구절은 오랜 세월 동안 크게 오해되어 왔다. 이번 주에 연구하는 본문에서 바울은 삶과 죽음을 대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심지어 그분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는 것도 “이득”인 것은 우리의 증언이 그만큼 더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되기 때문이다(빌 1:21). 믿음을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된 사람의 믿음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한 것이다. 그와 함께 우리는 죽은 자들이 실제로 죽은 상태임을 또한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부활의 때까지 무덤에서 쉬고 있다(전 9:5; 요 5:28, 29 참조). 그렇기에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에 대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만약 사람이 죽을 때 즉시 천국에 간다면, 나사로의 경우는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라. 나사로가 낙원에서 나흘간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천사가 와서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 “나사로, 미안하지만 예수께서 너를 땅으로 다시 부르신다. 낙원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오류를 다룰 때 그것의 논리적 결론까지 가보면 그것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죽음은 꿈도 꾸지 않는 잠과 같으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당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그 잠에서 깨우실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살아 있는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이다(살전 4:16, 17 참조). 바울이 현재의 삶에서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한다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빌 3:11)기 위해 그분과 함께 고난과 죽음을 겪는 것을 의미한다(딤후 4:6)
바울은 자신도 죽음으로 눈을 감을 것이며, 그다음에는 잠시 잠깐 후면 그를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마련하신 곳으로 데려가실(요 14:3, 고전 2:9)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이 “육신에 거하는 것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더 유익할 것을 알았다(빌 1:24). 바울의 이야기처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그분을 위해 죽는 것이 더 나은지를 말하는 것은 분명 쉽게 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바울은 살아서 남을 것인지 무덤에서 쉴 것인지의 두 가지 사이에 “끼어 있는”듯한 고통을 겪었다(빌 1:23).
- 요약
이런 ‘오해’에 대해서 해명하는 것은 죽으면 무덤에서 우리가 잠자고 있다가 예수님의 부활 때에 부활하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 이교사상으로 죽으면 곧바로 낙원에 이른다는 주장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는겁니다.
- 영감의 글
죽음을 각오한 사람- “바울은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필요하다면 감옥과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였다. 바울은이렇게 부르짖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형제들은 그의 의도를 꺾지도 못하면서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다는 것을 알고 떼쓰기를 멈추고 다만 ‘주의 뜻대로이루어지이다’고 말할 뿐이었다”(사도행적, 397)
- 빌립보서 1:27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1:27,28
사도바울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을 하고 있어요. 이건 또 살펴보니까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가라고 말한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시민답게 사는 기준이 바로 ‘복음’인겁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심에 일차하게 특권과 책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밖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고 또 교회안에서는 위대한 중심이신 하나님께로 모여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겁니다.
Q)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있으면 나눠볼까요?
1) 저는 함께 순서 준비하는게 좋아요. 떄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이 적응하는 것
- 영감의 글
반박할 수 없는 논증- “교회의연합은하나님께서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이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다. 그러므로사탄은 연합과 조화를 방해함으로,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있는 타락, 분열, 분쟁을 보고 신앙에 대해 염증을 일으켜 그들의 완고한상태를 굳게 하게끔,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서로 불화하고 적의를 품을 때 모욕을 받으신다”(증언보감 2권, 263)
- 빌립보서 1:28-30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 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깊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1: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 '싸움'은 대적자들로부터 오는 장애물과 위험등,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게 될 재난의 개념이 내포된 것으로(TDNT),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의 영적 투쟁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겪었던 여러 가지 고난이 이제 빌립보 교인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라고한다.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행 16:16-24;살전 2:2). 그때 귀신들린 여종으로 인하여 빌립보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빌립보 교인들은 보았으며그들 자신도 동일하게 바울과 같이 이교도들의 훼방과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즉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과 같은 싸움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듣는 바'는 바울이로마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듣고있었음을 시사한다(빌 2:26).
우리의 연합과 “복음의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는 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사탄의 전략은 분열시키고 정복하는 것이다. 분열은 치명적이다. 예수님은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막 3:25). 우리가 이 단순한 원리를 잊을 때 사탄은 기뻐한다. 우리의 연합은 “영원한 복음”을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계 14:6) 선포하는 성경 예언에 나타난 남은 자로서(계 12:17) 역할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을 전파하는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연합은 필수적이며,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연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로 강조한다(요 17:17, 19). 우리의 기별은 우리의 사명이나 연합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함께 서거나 함께 무너진다. 이 세 개의 열쇠 중 하나라도 없다면 우리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모두 제자리에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는 “대적하는 자(를) ...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빌 1:28). 사탄은 패배한 대적이다. 설령 우리가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선한 것을 따르는 자”(벧전 3:13)가 된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 마귀는 하나님의 진리가 전진하는 것을 막을 힘이 없다. 마태복음 10:38, 사도행전 14:22, 로마서 8:17, 디모데후서 3:12을 읽고 이 구절들의 공통된 주제를 간략히 요약해 보라. 이 타락한 세상에서의 삶은 심지어 ‘가장 선한’ 사람에게도 힘든 것이다.
- 영감의 글
진리의 특성- “진리의특성은통일성이다.우리가그리스도의 기도에 응답하려 한다면 매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통일성이 우리 가운데 계발되어야 한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 중에 들어오고자 애쓰는 분열은 그 발붙일자리를 찾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업 발전에 무서운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셨던 것처럼, 하나님의종들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증언보감 1권, 45)
안성기 배우가 얼마전에 고인이 되셨죠...
그런데, 안성기 배우님 아들이 다섯 살 때 아빠가 쓴 편지 내용이 "다빈이가 겸손하고 정직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한다", "이 세상에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이 5살 때 받은 편지를 조문객들이 있는 곳에서 읽고 기억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 편지는 당시, 조문객들에게 큰 감동을 줬습니다. 아들에게 쓴 편지가 아들에게만 영향을 준게 아니라 그 사람을 아는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에게쓴 편지지만 우리들에게 보낸 편지로 기억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