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서로 함께 사는 삶

성경/골로새서|2026. 3. 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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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신자의 가정은 성경 원칙에 따라 존재하므로 일반 가정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아내는 먼저 주께 충성하고 그다음 남편에게 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되면 안 되고, 남편이 아내의 양심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 부모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는 자녀의 영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바르게 훈련될 때 그들은 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다. 주인은 종을 공정하게 대하며 주 안에 형제로 여기고 종은 주님을 섬기며 그 원칙으로 성실해야 했다. 기도는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해 하늘이 주신 방법이기에 바울은 기도를 강조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언행에 나타나야 하며, 그것은 성령의 감화와 은혜를 담은 것이어야 한다

 

 

<교과본문>

사람이 서로 가까이 살면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의견 차이가 긴장을 유발할 수 있고, 논쟁이 이어질 수도 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그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가장 가까운 관계는 당연히 가족이다. 가정을 때로 ‘가족 공동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가정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말하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과 가정을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가치관, 목표, 목적에 대한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서로 잘 지내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같은 원리가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확장된 형태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가정이 가장 잘 기능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경의 원칙에 따라 존재해야 하므로, 로마의 일반적인 가정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또한 가정 안팎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도움이 되는 다른 귀중한 원칙도 제시한다.

 

 

  • 학습목표

깨닫기: 가족관계는 성경을 따라 주께서 우리를 대하듯해야 하며 이 원리를 다른 관계에도 적용한다.

느끼기: 하나님의 지혜는 언행에 나타나야 하며, 이는 성령의 감화와 은혜를 담은 것이어야 한다.행하기: 서로를 성실하게 대하며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해 주신 기도에 열심을 낸다

 

도입질문)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갈등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

 

저는 여행가면 보통 그런다. 지난번에 한번 부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늦엊도 일요일 점심에는 출발해야 서울에 도착하는데 아버지가 갈 생각이 없으셔서 이곳가고 저곳가자고 하시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밤 19시-20시에 집에 오자고 하셔가지고 그렇게는 안된다고 그래서 갈등이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부산가기가 쉽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이제 언제 다시 부산오나 라는 생각에 그러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3월 15일 일 남편과 아내

 

Q) 혹시, 결혼을 했거나 아니면 하신분들도 있는데 내가 남편이되면 이런 남편이 되고 싶다. 아내가 되면 이런 아내가 되고 싶다 이런거 있나요? 하신분들은 앞으로 어떤 남편이 되고 싶은지?

 

  • 본문말씀 골3:18-19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교과본문>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위한 여러 지침이 포함되어 있다(엡 5:21–6:9, 골 3:18–4:1, 딛 2:1–10, 벧전 2:18–3:7 참조). 주목할 점은 이 “가정 규범”이라 불리는 지침들이 완전히 위계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관계를 더 호혜적이고 서로를 유익하게 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3:18, 19을 읽어보라. 여기서 어떤 균형을 발견할 수 있는가? 바울은 에베소서 5:22-25, 33절에서 어떤 권면을 더하는가?

 

어떤 남성들은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골 3:18)는 구절만 인용하고 말지만, 바울이 “주 안에서 마땅”하게 라고 덧붙인 중요한 조건을 놓쳐서는 안된다. 신약성경은 어디에서도 여자가 모든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되거나 지배받아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남편의 모든 변덕이나 욕망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다. 바울의 요점은 아내가 먼저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다음으로 남편에게 충성하라는 것이다. 아내의 독립성이 남편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남편이 아내의 양심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보여준다(엡 5:25). 남편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실해야 한다. 그는 아내의 최선의 유익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이익은 서로 일치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랑은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엡 5:33)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게 만든다. 건강한 기독교 결혼관계는 서로 상의하고 숙고하며, 부부로서 함께 결정을 내리는 상호성을 특징으로 한다. 때로는 온 가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 자녀들을 논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수 있지만, 그때 부모는 결코 자녀 앞에서 다투어서는 안 된다.

 

(이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도 부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성경이 제시하는 평화의 길은 그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한 아내가 남편의 판단에 순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남편은 자신이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조언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이 행복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더 많이 협력할수록 결혼 생활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Q) 어떻게 하면 배우자가 남편 혹은 아내를 존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꺼이 순종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 영감의 교훈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 “남편과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이다. 아내는 그에게 사랑과 동정을 바라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구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자녀임과 동시에 아버지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녀들의 행복에 어머니와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그분의 말씀의 교훈으로 지배를 받음으로 자녀들의 발길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재림신도의 가정, 211)

 

3월 16일 월 부모와 자녀

 

Q) 우리 다 지금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잖아요. 어떻게 이 교단안에 발을 들이게 됐고 또 신앙을 하게 됐는지 말을 한번 해볼까요?

 

대부분의 경우에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저도 그렇고. 자 그럼 본문 말씀 읽어드립니다!

 

 

  • 본문말씀 골 3:20-21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부모와 자녀와 관련된 말씀이 저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부모에게도 자녀를 노엽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네요.

 

<교과본문>

본문은 (이어서)부분부터 누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어서)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다 교회에 다닐 때, 한쪽 부모만 출석하는 것보다 더 높은 비율로 자녀들이 교회에 남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보다도 아버지가 꾸준히 교회에 출석할 때 더 많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에 남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녀의 영성 형성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아버지들이 자신의 역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Q) 부모님의 신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중학생 때는 이런 생각도 해봤던 것 같아요. 아빠는 교회에 헌금은 많이 내는데 왜 나 치킨은 한번도 안사주지? 그리고 교회에서는 좋은 사람인데, 왜 우리한테는 짜증내지? 

 

제가 고등학생 때였나? 이제 퇴근하고 아니 하교하고 축구를 보려고 하는데 TV화면에 A4용지로 뭐라고 적힌거에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재림신도의 가정은 어쩌고 하는 글이었어요. 엘렌화잇의 글이었는데요.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말씀을 읽다가 감동을 받고 거룩한 결심을 갖고 TV를 안보겠다고 결심하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누나와 저를 앉히더니 그러셨어요. ~~이래서 TV는 보면 안되겠다고.

 

일주일 뒤에, 하교하고 왔는데 아버지께서 누어서 TV를 보고 계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조금 웃긴 에피소드이고 저는 근데 뭐 학생때는 아 우리아빠 뭐야 아싸 축구볼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때는... 지금와서보면 그런 작은 노력들이도 실천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영향이 무조건 있다고 생각을 해요.

 

또 아버지가 그런말씀도 종종하셨어요. 나는 찬희와 시온이 너희한테 다른건 아니고 ‘신앙’을 물려주고싶다. 

 

그래서 ‘신앙’의 가치가 뭐길래?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조금 생각이 나서 나누고 싶었어요. 영감의 글 볼까요? 

 

  • 영감의 교훈

부모와 자녀를 위한 법― “이 규칙은부모에게는모든 억압을, 자녀들에게는 모든 불순종을 금하고 있다. 주님은 사랑과 긍휼과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의 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자녀와 부모들은 이 법을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와 자녀들의 생애를 규제하는 규칙은 무한하신 사랑의 소유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이 당신의 법을 가정에서 집행하는 부모들과 이 법을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임할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310).

 

3월 17일 화요일 직업관계

 

  • 골 3:22-25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3)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요약>

로마 제국에는 하인이나기능인뿐 아니라 교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 직종에종사하는 사람들까지 노예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읽은 성경절에서 바울은 ‘종’들을 당시 일반적인 가정의 일을 돌보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있는 직장과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 이야기나누기

그런데, 22절에 보면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고 또 오직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라고 권면하고는 있는데...

 

여기서 순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휘파쿠에테’ (ψπαKOÚE't E)를 사용했어요.

이 단어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뜻과 의미가 같게 ‘강제성이 있는 순종’이거든요.

 

직장에서 이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나 다른 현실이 있다면 한번 이야기 나눠볼까요?

그러니까 직장에는 관계, 업무, 스트레스가 공존하는 공간이어서 과연 성경의 이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는지 생각을 한번 나눠볼까요?

 

Q) 직장 상사가 불합리한 일을 업무지시를 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한다면?

 

  • 23절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정말 영혼까지 끌어올려 성실하게 행하라는 말씀

비록 종의 신분으혹 행하는일조차도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이아니라 주님께 대한 것이다. 

 

  • 24절 

‘유업’ 이다. 비울은 이미 골로새 교인들을위해서 준비된 영원한유업에 대해 언급하였다(1-4절 ;1 :5, 12, 27). 그러나 이 상은 그들을 양자로 삼아 주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이런 유업에 대해 속하신 자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섬기는 주이시다.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그리스도.

 

  • 25절

주인도 불의를 행하지 말라고 권고

 

우리가 윗사람이나 사장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

 

 

 

  • 본문말씀

골로새서 3:18–4:6

 

주께 하듯 하라

Q) 복종은 어떤?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Q) 모질게 구는 것에도 순종해야 하는가?

25절이 그 대답이 되는가. 즉, 불의한자는 불의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다만, 나는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

 

Q)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3)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 골로새서 4장

제 4 장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1)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Q) 우리는?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2)세월을 아끼라

 

Q) 여기서 말하는 외인은?


6
너희 말을 항상3)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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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

성경/골로새서|2026. 3. 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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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 도입질문 

가장 최근에 하늘나라를 생각했던 날이 언제인가요? 왜 하늘나라를 떠올렸죠?

 

 

  • 학습목표

* 깨닫기: 더 높고 순결한 새 생명의 특성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마음에서만 솟아날 수 있다.

* 느끼기: 우리가 더 고상한 생애를 살 수 있는 이유는 더 높은 왕국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 행하기: 새 생명을 받았지만 여전히 위협이 있기에 위의 것을 찾으며 땅의 것을 죽여야 한다

 

<서론>

골로새서 3장은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 원리 애 대햐 언급하는내용으로 펼쳐집니다.  

 

 

  • 결론

오늘 교과를 정리합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 원리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은 반드시 생활 속에서 씨앗이 뿌려지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생활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 생활을 외면하거나 생활과 무관한 신앙은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 기도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삶에서 열매맺는 그리스도인

 

3월 8일 일요일 하늘을 향한 마음

 

Q) 요즘 나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인가?

 

  • 골3:1-4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교과본문

산 정상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광활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태고부터 산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던 곳이다(시 121:1, 2 참조). 사람이 만든 인공산 지구라트도 이교도들이 신들과 만나기 위해 비슷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흥미롭게도 아브람이 떠나도록 명령을 받았던 우르성에는 땅끝에서도 보일만큼 거대한 지구라트가 있었다. 하지만 그저 조금 더 높이 올라간다고 해서 영적인 면에서 하늘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오직 은혜의 기적, 곧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것(침례로 상징됨, 골 2:12, 13)을 통해서만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골로새서 3장이 시작부터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위에 있는 것, 곧 하늘에 있는 것인 “위의 것,” “그리스도께서...앉아 계”신 곳,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골 3:1-4)와 같은 표현을 주목하라.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정말로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을까?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않은 육신의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러나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마음을 받았기에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 진정한 실체가 된다. 찬미가 369장의 가사처럼 그분이 살아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질문에 우리는 “내 속에 살아계심을 나 밝히 믿”는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것을 명령하는 이유는 우리의 영적인 삶이 항상 새롭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고후 4:16 참조)

(이어서) 우리는 실제로 떨어져 나갈 수 있고, 멸망할 수 있다. 이 땅의 삶 속에서 우리는 유혹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위의 것을 찾”(골 3:1)기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안전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골 3:3)어졌지만, 그 생명이 살아 있음은 결코 감추어질 수 없으며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요약

네. 우리가 읽은 교과몬문과 성경절에 ‘위의 것’을 바울은 이미 ‘하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위의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룩한 곳에 있는 소망을 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미 골로새 교인들은 하늘을 맛보고 참여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하늘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라고 권고 하는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하늘을 계속 바라볼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은

히브리서 12:2-3절에 나와있 듯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라’면 되는 겁니다 

 

Q) 세상에 속한 우리,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까?

 

  • 영감의 교훈

죽일 것과 살릴 것- “그대는 자아에 대하여는죽음을경험해야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자아는 고려되지 않아야 한다. 교만, 자아 사랑, 이기심, 탐욕, 탐심, 세상에 대한 애착, 증오, 의심, 질투, 악한 추측, 이 모든 것은 굴복되고 영원히 포기되어야 한다”(교회증언 1권, 705)

 

  •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가 해결될 수 없음을 알 때 정말 궁극의 비참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그 죄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분이 그것을 해결해주셨다? 나 대신 죽으셨다라는 것을 마음으로 온전히 느끼게 될 때 ‘거듭남’이 시작이 되는겁니다. 즉, 거듭남은 사람이 예수님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품게되는 겁니다. 

 

  • 오래된 복음 성가 중 하늘소망이라는 찬양의 가사에 이게 잘 나와 있어요.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 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내 아버지 

너른 품 날 맞으시는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때까지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 엘렌 화잇도 “거듭남이란 오늘날 보기드문 진귀한 경험이다”라고 했다.

 

3월 9일 월요일 세속성을 끝내라

 

Q) 나에게 가장 어려운 시험은 무엇이 있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감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유혹이 되는 것?

 

*일요일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집중해야할 ‘하늘’에 대해서 말을 했다고 한다면 월요일에서는 하지말아야 하는 것에 대해 말을 하고 있어요.

 

  • 본문말씀 골3:5-6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1)진노가 임하느니라

 

5절의 모든 부정적인 단어들이 다 ‘욕망’에 관한 건데요.

 

*음란 포르네이아 = 타락한 성적 욕망

*부정 아카다르시아 = 더러운 욕망

*사욕 파도스 = 욕정

*악한 정욕 갈만 = 욕망

*탐심=욕망

 

그래서 정리하면 음란, 부정, 사욕 등은 성적인 욕망에 관한 표현 / 악한 정욕 역시 성적 욕망을 향한 욕망입니다.

 

  • 정리하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땅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욕망’을 성적 욕망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 그렇다면, 왜 바울은 많은 욕망 중 ‘성적 욕망’을 특히 강조하고 이것을 죽이라고까지 말을 할까요?
  •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들일지라도 이 유혹에서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는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거듭났음에도 성적 욕망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굴복한 사람들이 혹시 누가 있을까요?

 

  •  다윗, 솔로몬, 삼손(성령 충만했는데 정욕의 노예), 야곱의 아들들, 르우벤, 하나님의 거듭났던 백성들도 미디안 여인들로 인한 성적 시험에 모두가 패배하고 만다.

 

  • 하나님을 믿고 거듭났고 성령 충만했던 사람일지라도 가장 강력한 패배의 원인이 곧 ‘성적유혹’이었다. 근데, 유일하게 여기서 승리한 인물이 있는데 누군지 아세요? 요셉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런 승리가 드문겁니다.

 

<교과분몬>

2번째 문단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을지라도, 우리의 “지체” 곧, 우리 몸과 마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유혹들도 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령과 관련해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첫째, 골로새서 3:1에서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 형태는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음을 전제 한다. 둘째, 골로새서 3:5의 명령은 앞에서 말한 그 사실의 결과(“그러므로”)이다. 우리가 땅의 것들(음행, 부정, 정욕, 악한 욕망, 탐욕 등)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 받았고, 이런 것을 마음과 삶에서 제거할 수 있는 그분의 영적 생명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골로새서 3:6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노”라는 헬라어 표현이 정확히 같은 형태로 성경에서 다시 등장하는 유일한 구절은 로마서 1:18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그들의 악한 길에 그대로 두셨기에, 그분의 진노는 “불순종의 자녀들에게”(골 3:6, 흠정역) 임한다(계 6:16, 17 참조). 로마서 1:18에서 바울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를 언급하며, ‘더러움’(골 3:5과 동일한 헬라어)을 “마음의 정욕대로 ... 몸을 서로 욕되게 하”(롬 1:24)는 자들로 매우 구체적으로 연결한다

(이어서) 그들은 어떻게 자기 몸을 서로 욕되게 하였는가? 첫째, 그들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았고, 둘째, “마음의 정욕대로”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롬 1:26, 27)였다.

 

  • 영감의 글

버릴 것과 나타내야 할 것- “골로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귀중한 공과들, 즉 구주를 옳게 대표하는 사람의 생애에서 볼 수 있는 목적의 단일성과 목표의 고상함을 보여 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신자는 하늘 가는 길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발을 좁은 길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매일의 생애에서 자비와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사도행적, 477).

 

  • 기도

기도와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하며 노력하지만 어느새나타나는 땅의 속성들과 씨름하고 투쟁하는 우리를 불쌍히 보옵소서. 어려운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주님의 모습을 따라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3월 10일 화요일 지식에서 새로워짐

Q) 내 삶에서 ‘새로운 경험’이 있거나 ‘새로 산 물건’이 있다면 나눠볼까요?

 

  • 본문말씀 골3:7-10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 너희가 거듭나기 전에는 악 가운데 행했다. 하지만, 이제는 너희가 이런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을 버려야 하고 

악의를 버리고 여기서 악의는 남이 잘되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

그리고 비방은 모두 알 것이고

부끄러운 말은 뭘까요? 네. 음담패설이나 욕설을 말한다고 합니다.

 

10절의 ‘새 사람’을 입었다는 의미는 ‘거듭났다’라는표현이다. 

 

<교과내용>

3번째 문단부터

 

바울이 “새 사람”과 대비하여 “옛 사람”을 언급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롬 6:6, 엡 4:22-24 참조). 바울이 이같은 옛 것에서 새 것으로의 변화를 표현하는 데 사용한 동사들은 마치 낡고 더러운 옷을 벗고 새 흰 옷을 입는 것(슥 3:4 참조)을 연상하게 한다. 이와 같은 옛 것과 새 것의 구별은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서도 이루어지는데, 각각 율법의 외적인 자구와, 성령으로 마음에 새긴 율법으로 특징지어진다(고후 3:4-18)

(이어서) 이러한 은유들은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부르는 회심과 그 결과를 묘사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골 1:15)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골 3:10)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으므로 우리는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고후 3:18)른다. 이 변화는 우리가 모든 민족적, 지리적,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골 3:11), 이는 우리가 더 높은 왕국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 추가설명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쫓아 지식에까지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본절은 새사람을 입은그리스도인에 대한 설명이다. 새롭게 하심을 받는자의 모델로 언급된 ‘창조하신 자의 형상’ 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창 1:26)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은 그리스도인들이 버 려야만 하는‘옛사람’ 이기 때문이다(Bruce , 0' Brien). 그러므로본절의 ‘창조하신 자’ 는 분명히 하나님을 의미한다.또한 바울은 그리스도7}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1:1 5;롬 8:29;고전 15 :49;고후 4:4;벌 2:6). 둘째 사람, 곧 첫 아담이 옛 피조물의 머리가 되었던 것처 럼 새 피조물의 머리가 되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은 철저하게 성경적이다.따라서 이것을증명하는자료를성경의 전승밖에서

찾야서는안 된다. 구약성경과성경 후기 시대의 유대주의 (postbiblical Judaism) 에서는 앞으로 올 시대가 새 피조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W. D. Davies, Pauland Rabbinic judaism), 그 시대에는 (옛 시대에서처럼) 새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이 ‘인자 같은 이’ 에게 주어졌다(단 7:13) 신약 성경에서 ‘인자 같은 이’(one like a son of man)는 예수와 동일시되고 있다(막 13:26;14:62; 계 1:13).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를둘째 아담으로 적극적으로표현하고 있다. 이것은복음서와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를둘째 아담으혹 명시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Bruce).따라서 ‘창조함을 받은 새 사람’ 은 각 성도가 새로운인간, 곧 새로운 피조물의 한 구성원으로 중생하는순간 되어지는 새로운 인격적 존재(고후 5:17;갈 6:15;4:24)를가리키며, ‘장조하신자의 형상’ 이란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념이 사람을 재창조하셨음을 시사한다(0 Brien). 한편 ‘새롭게 하심을 받는’ 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카이누메논’ (civαKatvOÚμEVOV)은 현재 시상으로 새롭게 되어가는 과정이 계속적으로 반복됨을 나타낸다. 즉 새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부단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새로워지게 되는 것이다(Lohse).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지속적으로 새로워져야 하논 목적은 ‘지식에 이르게 하기 위함’ 이다(Carson). 

 

새사람이 획득한 ‘지식’ 은 이론상의 지식이거나 자연적지식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한 생활에서 흘러 나오는 신앙적 지식, 곧 영적 통찰이다(VanLeeuwen). 이 지식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받을 수있는 영적 통찰이다(Hodge). 중생함으로써 새사람을 입기 이전의 골로새 교인틀의 지식은 이러한 참된 지식에 비하면 왜곡되고 불완전한 것이었다. 요컨대 새사람이 획득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인식하논 능력으로(1 :9) , 인간이 갈망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이다. 따라서 새사람은 이 지식을 통하여 창조자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옛 사람’ 이라고 계속 언급이 돼서 더 설명하면 좋을 듯 합니다.

사도바울은 옛 사람이라는 표현과 ‘새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옛 사람은 뭘까요? 네 아담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이었지만 아담은 인류 최초의 죄를 범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죄 없이 승리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이어받은 존재이기에 ‘옛 사람’을 버려야 한다고 말을 하고 예수그리스도이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 보면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표현하곤 하는겁니다.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지식

여기서 지식이라는 단어가 조금 의아한데요. 이 지식은 이론상의 지식이나 자연상의 지식이 아니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한 생활에서 흘러나오는 지식이자 영적 통찰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지식은 오직 성령의 여사로만 받을 수 있는 지식이고

특히, 거듭나기 전의 골로새 교인들이 갖고 있던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고 이론적인 지식이었다고 한다면 새 사람을 입은 그들은 사람이 갈망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식을 통해 더더욱 새로워진다는 의미.

 

  • 영감의 교훈

변화를 이룸- “‘너희는유혹의욕심을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한때 그들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육적인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세속적 마취제에 의해 중독되고, 사탄의 간계로 인해 눈이 멀고, 당혹감을 느끼고, 속임 당하였다. 이제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로가르침을받았으므로,생애와품성에결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교회증언 5권, 172

 

3월 11일 수요일 새 생명의 특성

 

Q) 최근에 불친절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어떻게 대했나요?

 

  • 본문 골3:12-14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Q) 긍휼 -

자비 -

겸손 – 12절에서 다른 단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비슷한데 / ‘겸손’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겸손이 무슨 뜻일까요?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자세, 또 타인을 섬기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온유 – 또 온유 역시도 마찬가지. 온유는 이래도 응 저래도 응 이런 것이 아니라 / 예수님의 모습 중 자신을 해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인내하고 사랑으로 보는 모습. 우리가 지난 주 묵상한대로 예수님을 배신한 베드로를 경멸의 눈이 아닌 온유의 모습으로 바라봐주신 예수님은 정말 최고의 온유한 사람이시죠. 보복하지 않는 정신

오래참음 -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도 바울이 골로새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하나님앞에서 그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14절에서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라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사랑’을 통해서만 온전함으로 인도된다는 의미.

 

  • 교과 몬문

2번째 단락

 

바울이 언급한 여덟 가지 자질은 꽤나 긴 목록이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 용납하며 피차 용서하는 것,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골 3:12-14)을 더해야 한다. 이것들은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된 마음에서만 솟아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분의 성품과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골 3:13).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골 3:14)이다. 우리를 그분께 묶어주고 다른 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다(요일 4:11, 12). 이러한 자질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 자비, 친절, 용서를 베푸는 것은 우리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복이 된다.

 

(이어서) 이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을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우리에게 같은 방식으로 친절하게 반응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는다(마 5:7, 마 6:14). 두 번째, 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격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영혼을 둘러싼 그 어떤 영향력도 이기심 없는 생애의 감화력만큼 강력하지 않다. 복음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사랑을 실천하고 또 사랑받을 만한 그리스도인이다”(치료봉사, 470).

 

  • 영감의 교훈

창조주의 형상을 본받아야- “그들은자기들이창조주의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본받아야 할 분이 된다는 사상을 감명 깊이 이해해야 한다. 구원의 지식을 알려 주고 생애와 품성을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시켜 줄 교육에 가장 열렬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진정으로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사랑과 황금의 실처럼 생애에 짜여져 있는 영혼의 순결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도달해야 할 높이는 아직껏 충분히이해되지 않고 있다”(교회증언 6권, 127)

 

 

3월 12일 목요일 새 삶을 사는 것

  • 본문말씀 골3:15-17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부르며2)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5절 – 평강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평강 /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 헬라어 브라뷰에토 = 지배하다, 통제하다, 결정하다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예수님의 평강으로 통제해야함을 의미한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 =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으니 당연히 감사해야 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는 

우리에게 평강을 갖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감사는 서로의 관계를 지켜주고 상호간의 평강도 지속될 수 있게 도와준다.

 

16절 – 그리스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도 맞고 또 예수님에 관한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17절 -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 한국인이 외국에서 뭐 올림픽에서 선수로 메달을 따면 한국 전체가 주목을 받고 또 비매너 행위를 해도 한국 전체가 이제 욕을 먹거나 그렇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환경에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명과 책임감을 갖고 모든 일에 ‘예수님의 이름이 달려있다’는 마음으로 생활해야한다는 의미

 

 

3월 13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성령께서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실 때, 회개한 영혼에게서 새 노래가 터져 나온다. 이는 자신의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자신의 허물과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개하였고 인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나타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롬 5:1)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자기를 위해 성취된 일에 만족하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영적인 왕국에 들어가고자 결심한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본성의 모든 능력과 정욕이 어둠의 왕국 세력의 지원을 받아 자신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날마다 헌신을 새롭게 하고, 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 옛 습관들, 악으로 기울어지는 유전적 기질은 언제나 지배권을 쥐려고 분투할 것이다. 이것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경계하며 승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간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높고, 더 순결하며, 더 고상한 생애의 능력이다. 세상은 우리의 생각을 너무 많이 차지하며 그에 비해 하늘나라는 매우 작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어떤 것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도덕적·영적 완전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약속되어 있다. 예수님은 능력의 근원이시요 생명의 샘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전능한 하늘의 대리자를 움직이고 계신다. 매 발걸음마다 우리는 그분의 살아 계신 능력과 연결된다“(사도행적 476-478)

 

  • 본문말씀 골로새서 3장 1-17

 

제 3 장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Q)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겠지?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Q) 땅에서 사는데 땅의 것을 어떻게 생각 안한단 말이지?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1)진노가 임하느니라

 

Q) 여기서 진노는?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Q) 여기서 말하는

분함 -

노여움 - 

악의 -

비방 -

부끄러운 말 -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Q) 지식 -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 스구디아인 은 흑해 북쪽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의 기마 민족(스키타이인)을 뜻합니다. 당시 가장 야만적이고 교육받지 못한 민족으로 여겨졌으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야인, 유대인, 할례자 등과 차별 없이 동등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언급됩니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Q) 긍휼 -

자비 -

겸손 -

온유 -

오래참음 -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 1만 데나리온의 비유: 오재호 목사님 설명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부르며2)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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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예수님은 탁월하심

성경/골로새서|2026. 3. 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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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서론>

지난주까지는 빌립보서를 마무리 했고 오늘부터는 골로새서를 살펴봅니다. 빌립보서를 말씀드릴 때 바울이 로마 감독에 갇혔을 때 썼던 서신으로 언급했어요. 마찬가지로, 골로새서 역시 이 감옥에서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작성하고 동역자 두기고라는 인물이 골로새 교회에 서신을 전달했어요.

 

골로새서라는 책에 대해서 잠시 소개합니다.

 

당시, 바울은 왜 감옥에서까지 골로새 교회에 서신을 썼느냐 생각해보면 골로새 교회에는 당시 이단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을 때 세상의 거짓된 지식과 가치관을 이길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살펴보면 이단 사상뿐만 아니라 세속 사상의 도전도 받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갈등이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바울의 골로새서는 현대교회에도 제시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깊게 뿌리를 내려서 세움을 입고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야함을 시사합니다.

 

 

  • 학습목표

 

깨닫기: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십자가의 사랑으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다.

느끼기: 만물보다 먼저 계신 그분 안에서 만물이 시작되었으며 그분의 부활로 만물이 재창조된다.

행하기: 하나님인 예수님 안에서 구속을 받아 흑암의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간다

 

 

2월 15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Q) 누군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좋았나요 싫었나요?

 

종성이형

 

  • 본문말씀 골1:15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구약의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는 무지개와 같은 밝은 광채 중앙에 ‘사람의 모양과 같은 형상‘이 좌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봤고 이것은 (겔 1:26)에 기록이 돼 있어요. 

 

그리고 골로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 역시도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시면서 찾아오신 회심 과정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라는 말씀은 그냥 문자로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의 경험으로 확신있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는데 ’형상‘은 무슨 뜻인가요?>

 

감사합니다. ’형상‘을 뜻하는 헬라어는 ’에이콘‘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두 개의 개념을 나타내는데 

 

첫 번째는 ’유사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꼭 닮았다는 의미에서볼 때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하나님과 꼭 닮았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 형상을 사용합니다.

 

형상이 나타내는 두 번째 개념은 바로 ’현시‘입니다. ’현시‘라는 의미는 ’나타내 보인다‘는 의미죠.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히 나타났다는 데에서 이 ’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겁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님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을 한 것은 자신의 확신의 경험으로 예수님의 모습과 성품에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나타났다고 표현을 한겁니다.

 

<교과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또 다른 관계성을 표현하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누가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

 

(3번째 문단) 예수께서 당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신 다른 방식들을 살펴보라부터 이어서까지 누가 읽어주세요.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어서)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반복해서 당신을 절대적인 차원으로 묘사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출 3:14 참조);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요 14:11);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감사합니다.>

 

그래서 읽어주신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겁니다. 일요일 소지 교훈에도 나와 있는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본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다. 그분은 들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보이는 하나님의 성품이시다.“라고 합니다. 영감의 교훈을 읽고 다음 소지로 넘어가보겠습니다.

 

  • 영감의 교훈

인성을 통해 신성이 나타남-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과 생애를 잘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 신성이 인성을 통해 나타났고 보이지 않는 영광이 보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하여 나타났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늘의 사물이 세상 사물을 통하여 드러났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가르침 속에서도 그것은 사실이다”(실물교훈, 17)

 

 

감사합니다. 어제 대학교 교수님을 만나 뵙고 왔어요. 그분이 축구 국가대표팀 분석관이신데, 그분이 거의 15년전에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영국에서 ’경기 분석‘에 관한 석사 박사까지 하고 오셨고 이제 자기가 배웠던 그런 선진 축구에 대한 교육을 대학생들에게 하시려고 교수로도 활동을 하시는 겁니다. 이분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목적성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후학을 양성해서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겁니다. 자신의 시간과 전문성을 갖고 다음세대를 위해 사용하시는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그런데, 이런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목적성과는 비교가 할 수 없을정도로 예수님께서는 차원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것을 땅의 언어로 가르쳐주시고 또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는 겁니다.

 

 

2월 16일 월요일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 본문말씀 골1:15-17

 

15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교과>

신약성경에서 “맏아들”과 “먼저 나신 이”라는 말은 거의 대부분 예수님을 가리키며(눅 2:7, 롬 8:29, 히 1:6, 계 1:5 참조), 골로새서에 기록된 두 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단어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반드시 연대순으로 먼저 태어난 자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성경의 “장자” 개념은 출생 순서와 관계없이 아들이 아버지와 가진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다.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이 늦게 난 아들이 더 탁월한 경우도 있다. 다윗은 여덟 형제 중 막내였으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삼상 16:10-13), 시편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시 89:27)겠다고 말씀하셨다. 또 모세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고 말씀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장자는 탁월하다는 측면에서 첫째를 의미한다.

 

<설명>

네 감사합니다.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면, 갑자기 읽다가 ’장자‘라는 단어가나와서 조금 의하하셨을 겁니다. 본문 성경 말씀 15절에 ’먼저 나신 이‘에 대한 당시 개념이 ’장자‘로 표현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장자라는 의미가 가장 먼저 낳은 아들이라는 의미잖아요. 

 

고대에는 이런 장자가 특별했어요. 왜냐하면 장자는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특권을 부여받아요. 그래서 해당 집안의 형제들과 권속들에 대한 경영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물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꺠닫게 되는 겁니다. 

 

 

골로새서 1:15-17을 읽어보라. 바울은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부르는 이유로 무엇을 제시하는가?

 

<교과읽기>

바울이 예수님을 제일 먼저 창조된 존재라고 제시하려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단호히 배제한다. 

 

<설명만 짧게 할게요!> 본문 성경절이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 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했잖아요. 이것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예수님이 그럼 다른 창조물보다 먼저 창조된 존재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됩니다. 

 

그래서 설명을 해주는 겁니다. 저자가. 바울이 제시하려는 것은 그게 아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이게 중요한 것이 실제로 아리우스라는 신학자가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큰 논쟁을 초대교회에서 일으켰어요. 그의 주장은 예수님이 신성이 있지만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 봤어요. 그런데, 교과 저자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아리우스와 같은 사상으로 바라볼 때 다른 본문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주석에서도 그렇고 교과 저자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나신 자‘라는 의미에는 시간의 우선과 존재론적으로 다른 피조물보다 우선한다는 의미가 깔려있는겁니다. 

 

<계속 읽어주세요!>

 

 

그는 두 번의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만물은 그분에 의해,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다(골 1:16). 두 경우 모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 과정을 수행하게 한 인격적 대리인으로 나타난다(엡 3:9, 요 1:1-3, 계 4:11 참조). 바울은 가능한 포괄적으로 진술하였다. ‘모든 것’이란 공간적으로(하늘과 땅), 존재론적으로(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기능적으로(보좌와 권세와 주관자와 권능) 모든 것을 의미한다. 기능적인 진술은 일반적으로 천상의 존재들을 가리킨다(엡 3:10, 엡 6:12 참조). 마치 오해의 여지를 없애려는 듯이, 바울은 예수께서 “만물보다 먼저”(골 1:17) 계셨다고 밝힌다.

(이어서) 헬라어의 표현은 시간적인 것만 아니라 순위에서 먼저인 것을 의미할 수 있지만, 바울의 글에서 다른 모든 경우는 시간을 가리킨다(고전 2:7, 갈 1:17, 엡 1:4 참조). 바울이 예수님의 탁월함을 설명하는 또 다른 근거는 “만물이 그 안에 함께”(골 1:17)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라어 쉬니스테미(synistēmi)는 “함께 모으다” 또는 “통합하다”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구속주이시기 때문에 우주를 하나로 연합하게 하시는 분이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영감의 교훈을 읽겠습니다.

 

  •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셨다 -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는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고 밝히 말하였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달려 있게 하고, 우주 만물을 질서정연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활동하도록 붙드는 손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다”(교육, 132)

 

 

2월 17일 화 교회의 머리 – 2월 18일 수 시작 함께

 

  • 본문말씀 골1:18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에 주목을 해보죠.

 

먼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에 대한 2가지 설명

 

첫째, 그리스도와 교회는 매우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갖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더불어 생명을 공유하십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둘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권자로서 절대적지배권(支配權)을 갖는다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권자인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 생명의 길을 올바로 갈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한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는데요.

 

첫째, 교회는 생명체로서 그 구성원들 상호간의 결합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가 그의 뜻과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방편(方便)이다. 

셋째,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 사이의 유대 관계는 매우 본질적이고도 실제적인 것이기 떄문입니다.

 

세가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교회라는 것은 나 혼자서 될 수 없고 ‘연합’에 의해 이뤄진다는 걸 알 수 있다. 헬라어로 교회를 에클라시아라고 합니다. 이건 그냥 일반적으로 모임 – 회중 –과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협력’과 ‘연합’을 통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연합 / 그리고 나와 다른 성도의 연합 그것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교회인겁니다. 어떤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어주시지 않느다면 교회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나 말고 다른 성도가 없다고 한다면 교회는 불완전한 존재인 겁니다.

 

 

<교과내용>

 

히브리어에서 “머리”(roʾš, 로쉬)와 “시작”(rēʾšît, 레쉬트)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성경에서 ‘시작’이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1이다. “태초에[레쉬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님은 성육신 때문만이 아니라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인류와 교회의 머리이시다. 

 

헬라어에서 “시작”(archē, 아르케)이라는 단어는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이 구절에서 “시작”은 예수님을 교회의 근원 또는 시작이신 분(골 1:18)으로 가리키기에,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은 예수님이 창조의 “시작” 또는 창시자이신 것과 같다. 

 

예수님은 창조와 교회의 시작이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롬 6:3, 4)을 통해 재창조의 시작이 되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예수님의 사망에 대한 승리는 또한 죄에 대한 승리와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재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이 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먼저 나심’의 의미는 월요일 연구 참조)이신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의 부활이 최초는 아니지만(모세가 최초였고, 그의 몸을 두고 마귀와 논쟁이 벌어졌다. 유 1:9),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으뜸인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그 누구도 죽은 자 가운에서 부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예수께서 탁월하신 이유에 대해 바울이 제시한 모든 주장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1.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현현이시다.2.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3.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으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한다.4.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이어서) 5. 그분은 창조와 재창조의 시작자이시다. 6. 그분은 죄와 죽음을 정복하셨기에 그분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을 부활시킬 권리를 얻으셨다.7. 예수님은 항상 존재하셨으나, 이제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인류의 머리이자 교회의 머리로서 만물의 으뜸이 되셨다.

 

  • 화요일 영감의 교훈

교회의 머리-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전 11:3; 엡 1:22, 23). 교회는 그 기초인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있는바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한다. 교회는 사람에 의존하거나 사람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은 교회의 책임 있는 지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행하는 바를 명령할 권위가 부여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신다”(시대의 소망, 414)

 

 

 

 

 

결론

 

우리는 사람이시며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서 구속을 받는다. 그분이 구원을 이루셨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그는 보이지 않은 분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재하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만물을 연합하게 하신다. 그는 교회의 머리시며 또한 부활하심을 통해 재창조의 시작이 되신다. 그분은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이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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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감사하고 기도해야하는 이유

성경/빌립보서|2026. 3. 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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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함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주께서 아시며그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를채우셔서바울처럼감사함으로서로를 생각하며 교제하게 하옵소서

 

기억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서론>

26년 1기 교과가 시작됐어요. 우리는 이번기동안 빌립보서와 골로새서를 통해 말씀을 나눌겁니다. 빌립보서와 골로새서는 사도바울이 쓴 책인데, 어떤 성격의 책인가요? 네. 바울의 대표적인 옥중서신입니다. 투옥 중에서 쓴 책인데요.

사도바울이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 여기서)

Q) 제목이 감사하며 기도하는 이유인데, 혹시 우리는 왜 감사하고 기도해야하는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번주 교과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굳건하게하는 말씀들을 살펴봅니다.

 

 

  • 학습목표

깨닫기: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교회가 은혜 가운데 교제하며 소망과 평화의 선물 가운데 거하기 때문이다.

느끼기: 역경 속에서 그에게 감사가 넘치는 것은 영적 분별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때문이다.

행하기: 말씀은 생명이기에 열매 맺을 것이며 성령의역사를 따를 때 기쁨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

 

도입질문) 지난주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는지, 혹인 1년을 돌아보며?

 

1월 4일 일요일 복음안에서 교제함

 

Q) 나는 기쁜일이 있을 때, 슬픈일이 있을 때 혹은 고민이있을 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습니까?

 

빌립보서 1:3-8을 읽어보라. 함께 읽기

바울은 무엇에 감사하는가? 

 

사도바울은 그리스에 있는 필리피스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그 교회의 성도들은 마음으로 낳은 자녀의 존재였을 것. 바울은 그래서 그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생각만해도 기쁘고 감사한겁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안에 이고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겁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바울이 옥에 갇혔지만  빌립보 교인들이 마음으로 기도하며 함께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에게 감사하는 겁니다.........................................

 

  • 개인적으로

묵동교회 직장인반의 시작부터 함께하면서 많은 청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에 드는 생각이 ‘참 좋다’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깊이 있게 만나면서 맛있는것도 먹고 말씀도 나누고 항상 만나면 반갑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올한해는 우리가 더 하나님의 복음안에서 마치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처럼 가까워지길 기도합니다.

 

  • 영감의 교훈

 

감옥의 벽도 막지 못함- “비록 원수들이 그들을 옥에 가둔다 할지라도 감옥의 벽이 그들의 영혼과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차단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모든 연약함을 보시고 모든 시험을 잘 아시는 그분께서는 세속적인 모든 권세를 초월하신 분이시다. 천사들은 적막한 옥에 갇혀 있는 그들을 찾아가서 하늘의 빛과 평화를 줄 것이다. ... 바울과실라가빌립보감옥에서밤중에기도하고 찬미했을 때처럼 그 음산한 담벽이 하늘 빛으로빛날 것이기 때문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27)

 

1월 5일 월요일 바울의 기도요청

 

빌립보서 1:9-11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를 읽어보라. 

 

이 성경구절은 3개구절인데, 교과내용에 잘 나와있어요!

 

이 기도의 초점은 무엇이며, 바울은 어떤 중요한 요청을 드리고 있는가? 바울의 기도는 기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이 기도는 헬라어로 43단어에 불과하지만,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 자세히 펼쳐나갈 사랑, 지식, 분별, 진실함, 흠 없는 삶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 등 바울의 모든 관심 주제를 담고 있다. 이 기도와 이전의 바울의 감사의 표현들의 바탕에는 전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강조가 깔려 있다. 

 

바울의 기도는 전적으로 타인을 향한 것으로, 교회 전체, 그리고 교회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구성 요소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사” - 바울은 단지 더 많은 사랑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지식과 모든 판단”(빌 1:9, 흠정역)을 따라 풍성하기를 간구한다. 여기서 지식은 단순한 이지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의 말씀 연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적 통찰(엡 1:17, 엡 4:13, 딤전 2:4 참조)을 말한다. “분별하며”- 바울은 이를 “선한 것을 분별하며”(도덕적으로 해로운 것을 구별) “진실하여 허물 없”게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한다(빌 1:10). “진실하여”- 이 헬라어 단어는 햇빛 아래서 판단 받는 것을 의미하며, 행동이 흠 없고 순수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은 햇빛처럼 투명해야 한다”(엘렌 화잇, Reflecting Christ, 71).

 

(이어서) “흠이 없이”- 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곧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방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 주제를 깊이 다루며, 빌립보서 3장에서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자신에게는 전혀 의로운 것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의만 있을 뿐이다.

 

 

  • 영감의 교훈

우리에게 절실한 경험- “거룩한 위탁을 받은 자들은 믿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들을 통하여 신령해지고, 고귀해지고, 생기로워져야 한다. ‘...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골 1:9, 10) ... 편지에 묘사된 경험이 교회에 이보다 절실히 필요한 적이 없고, 교회가 누리도록 하나님이 이보다 더 간절히 열망한 적도 없었다”(교회증언 5권, 746)

 

1월 6일 화요일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Q) 분명히 나쁜 경험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통해 당신은 어떤 교훈을 배웠습니까?

 

빌립보서 1:12-18

 

 

감사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투옥된 일이 복음에 진전이 됐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당한 일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

@나 바울은 이곳에서도 전도하고 있다!

@나 바울이 갇히므로, 형제들 다수가 전도에 나섰다!

@어떤 자들은 사랑과 순수함으로 전도하고!

@어떤 자들은 순수한 뜻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수를 전파하니 바울 자신은 기뻐하고 있다!

 

  • 영감의 교훈

부당한 속박 속에서- “세상의 정신과 매우 다른 그의 정신은 세상의 능력보다 더 높은 능력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그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그 일을 위해 공적으로 활동하다 물러나게 된 그 사업을 옹호하는 사람들로서 보다 큰 정력을 가지고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그는 그가 전적으로 제외된 것처럼 보인 밭들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단들을 거둬들였다”(사도행적, 464).

 

 

1월 7일 수요일 복음의 열매

 

골로새서 1:3-8을 읽어보라. 

 

사도바울이 무엇에 감사하고 있나요?

 

@너희(골로새 교인)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사하고 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에! 감사하고 있고

@너희의 믿음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예수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된 것 감사! 하고 있습니다.

 

  • 영감의 교훈

복음의 역설- “불가능하게 보인 이곳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가서 확고한 발판을 구축하게되었는가?바울은빌립보인들에게보내는그의 편지 가운데서, 네로의 가족 가운데서 신앙으로 개심자들을 얻는데 성공한 것을 그의 투옥 덕분으로 돌렸다. 그의 고통이 복음의 발전에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보증하였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알기를 원하노라’(빌 1:12)”(사도행적, 463)

 

1월 8일 목요일 기도의 능력

 

골로새서 1:9-12을 읽어보라. <교과 함께읽기>

 

바울은 기도 가운데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간구하고 있는가?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우리말) 되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지혜와 영적 깨달음”(골 1:9, 흠정역)이라고 설명한다. 지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기꺼이 행하며(요 7:17),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을 때(잠 3:5)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삶 속에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찾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주요 원천이 있다. 1. 가장 중요한 지혜의 원천은 성경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2. 하나님께서는 대언의 영(계 12:17, 계 19:10)을 통해 마지막 때를 위한 특별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는 엘렌 화잇의 저술을 통해 나타났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라고 권면한다(대하 20:20). 3.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은 그분께 문을 열어주시고 또, 닫아주시기를 요청함으로써(골 4:3 참조) 섭리적인 정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4. 성령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알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사 30:21).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주께 합당히 행”하기를 기도한다(골 1:10). 물론 누구도 그 본성이 주께 “합당”한 이는 없으나, 하나님은 그 은혜로 우리를 합당하게 여기시고 그분의 높은 부르심을 따라 행하도록 요청하신다(엡 4:1, 살전 2:12)

 

(이어서) 바울은 이 서신에서만 동사 “행하다” 또는 “행하였다”를 세 번 더 사용한다(골 2:6, 골 3:7, 골 4:5). 이는 하나님의 율법(출 18:20)에 따라 살고 행동함을 의미하며, 이는 오직 성령의 역사(겔 36:27)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바울은 또한 그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삶이 “모든 일에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기도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나열한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골 1:9, 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골 1:10), 마지막으로 “감사”(골 1:12, 우리말)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Q)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며, 어디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합니까?

 

Q) 하나님이 당신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시는지 어떻게 아시나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영감의 교훈 

“바울은 많은 기도와 끊임없는 경계를 통해서만 보다 높은 그리스도인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고 이 일을 마음에 주입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영혼을 회개시키기에 족한 능력을 얻고, 모든 죄악의 유혹을 물리치기에 적합한 자들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그들의 갑옷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쟁 무기로 삼을 때 그들은 원수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307

 

  • 결론

결론 바울이 감사로 인사하는 것은 천사도 살피기 원하는 깊은 은혜와 사랑에서 나오는 소망과 평화의 선물 가운데 그들이 거하기 때문이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며 복음 안에서 교제하였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 감사하며 영적 분별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골로새에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은 주의 말씀은 생명이며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타심을 보여주며 연합된 교회를 강조한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자라며, 그때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 기도 

인생의 발걸음마다 주님을더욱 의지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이 가득하지만 더욱 기도하게하시고매일 주님의 지혜를 찾도록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도록 인도하옵소서

 

  • 더깊은 연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그들의 삶은 불안정하다. 그들은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며 그것이 종종 그들을 불안과 초초함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순례자의 삶임을 기억하자. 

 

우리에게는 자신의 생애를 위하여 계획을 세울 지혜가 없다.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히 11:8).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아버지께서는 날마다 당신의 계획을 펼쳐 보이셨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삶이 그분의 뜻을 그대로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분께 우리의 길을 맡길 때, 그분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미래를 계획하다가 완전히 실패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계획하시도록 하라. 어린아이처럼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라(삼상 2:9). 하나님은 만일 당신의 자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볼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동역자로서 성취하고 있는 목적의 영광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들이 인도해 달라고 선택하였을 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신다”(치료봉사, 47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영적으로 이끄신다.

 

Q) 지난 한주를 돌아보면서 감사했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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