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연합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함

성경/빌립보서|2026. 3. 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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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2, 4)

 

Q) 제목과 기억절이 겸손함으로 하나로 연합하라는 메시지인데, ‘하나’가 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 가볍게 한번 왜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서론>

 

연합은 힘이다. 하지만 진리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연합을 위해 최선을 다함에도 우리 모두는 때로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적으로 연합을 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계속 그들이 “합하여 한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 근거하여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 특히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주제이다. 세계가 분열하게 된 기원은 완전한 환경 가운데서도(사 14:12-14 참조) 빠르게 퍼져 나갔던 하늘의 한 천사의 교만함, 지위와 권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이 정신은 이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에 대한 비슷한 불만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보다 더 높은 영역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통해 에덴에서 그 교두보를 찾았다(창 3:1-6). 이번 주 우리는 교회의 연합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며, 특히 예수님의 놀라운 낮아지심, 그분을 바라보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 그리고 그분을 더욱 닮아갈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 학습목표

깨닫기: 교회의 연합은 필수적이며 같은 믿음과 성령의 도움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느끼기: 마음을 바꾸기 어렵지만 그리스도의 겸손과성 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를 때 영적으로 변할 수 있다.

행하기: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놀라운 사랑의 모본을따라 닮아가며 한마음으로 연합한다.

 

 

 

 

1월 18일 일요일 빌립보 교회의 분열

 

Q) 내가 알고 있는 ‘교회의 분열’ 혹은 갈등 같은게 있나요?

 

 

  • 일요일 교과는 빌립보 교회에 ‘분열’이 발생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에 대해 사도바울이 권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 본문말씀 빌립보서 2:1-2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설명>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말씀으로 권면했듯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간에 말씀으로 서로 권면해야 한다. 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 모습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연약함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위로해야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의해서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여 교제를나누어야 함을 시사한다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설명> 

 

2절은 마음을 같이하여로 시작을 합니다.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는 ‘생각’을 같이하려는 의미이지만 뒤의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등이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감정, 마음, 태도 의지 등도 같이함을 뜻합니다. 

 

갑자기,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일치’를 강조한 것은 아니고 당시에는 이교도의 핍박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은 상호 간에 믿음의 일치가 필요 했음

또한, 빌립보 교회 내부의 분쟁도 있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 지도자들의 갈등. 두 분은 바울과 함께 헌신하는 지도자들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계에 문제가 생겼어요. 

바울이 4장에 이 두명의 이름을 직접 언급해서 이렇게 추측할 수가 있어요. 이 2명이 직접적인 문제가 있었지 빌립보 교인들 각 개인도 이기적이고 허영의 마음이 있었다 3절에 나오는.

 

교과내용도 함께 읽으면 좋겠어요.

 

<교과내용>

바울은 자신이 세우고 그토록 사랑했던 교회가 대립하며 서로 갈라지고 다툼에 빠진 모습을 보며 큰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강한 언어를 사용한다. “이기적인 야심으로”(eritheia, 헬라어, 현대인)라는 표현은 앞서 빌립보서 1:17에서 그리스도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바울과 달리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로마 대적들의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허영”은 육체의 일(갈 5:20) 가운데 하나이며, 야고보서가 밝힌대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약 3:16)을 뿐이다. “허영”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여기에만 사용되지만,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는 오만함, 공허한 자부심, 자신에 대한 과장된 인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한 권면에서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표현을 사용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갈 5:26)라. 바울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제시한 해결책을 주목하라. 

 

1. 그리스도 안에서 위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강력한 동기로 계속해서 제시한다.

 

2. 사랑의 위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요 15:12)

 

3. 성령의 교제. 성령의 임재는 초기 교회에 충만했던 것과 같은 친밀한 그리스도인 관계를 만든다(행 2:42; 고후 13:14 참조).

 

4. 긍휼.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자주 나타났고(마 9:36, 20:34, 막 1:41 참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3)와 탕자의 비유(눅 15:20)에서도 묘사되었다


5. 자비.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이 특성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삶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눅 6:36).

 

6.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연합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강조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 2:5)이다.

 

  • <요약>

빌립보 교회에 분열이라는 문제가 있었을 때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모본을 바라보고 성령의 교제를 통해 서로 친밀하게 돼 결국에는 하나의 마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

 

  • 영감의 교훈

교회 안의 분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자제력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자주 영혼의 원수에게 문을 여는가! 그릇된 감정을 지배하기 위한 노력이 거의 없고 사탄에게 이용 거리가 될 모든 말을 억제하는 노력이없으므로 세상 사람들도 부끄럽게여길 분열과 알력이 보편적으로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다. ... 문제들은 사탄의 앞에 나열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파괴시키기 위한 그의 뱀과 같은 지혜와 재능을 활용할 기회를 사탄에게 주게 된다”

(가려뽑은 기별 1권, 123)

 

 

<정리> 우리 직장인반도 서로 사랑하고 연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청년반, 30·40대, 장년들과도 하나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연합하지 못하고 분열한다면,
그 상황을 가장 기뻐하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성경과 영감의 글이 말하듯, 사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단지 ‘나 개인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의 이름으로 하는 행동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권면대로,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서로 더 사랑하고, 서로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 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 모두가 교회에 오게 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새롭게 하나 되라고 말하지 않고,
이미 성령께서 주신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
고 권면합니다.

결국 우리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더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하나 됨’이라는 선물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
이면 충분합니다.

 

1월 19일 월요일 연합의 근원

 

Q)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양보는? 자아를 내려놓은 기억은?

 

  • 영감의 교훈

 

신앙에 욕을 돌림- “모든신자는,그리스도의몸의 지체로서 동일한 정신과 동일한 소망으로 활기를 얻는다. 교회 안에서의 분열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욕을 돌리고 진리의 원수들에게 그들의 길을 정당화시킬 기회를 준다. 바울의 교훈은 그 당시의 교회만을 위해서 기록된것이 아니다.하나님께서는그 교훈이우리에게도 전달되도록 계획하셨다.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연합을 보존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교회증언 5권, 239)

 

  • 본문말씀 빌립보서 2:3-4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설명>

3절을 한번 볼게요. 3절을 보면 우리가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소극적 측면과 적극적 측면으로 행동을 나눌 수 있어요. 

 

소극적인 축면은 바로 ‘허영’과 ‘다툼’의 정신을 버리는 겁니다. 허영이라는 것이 뭐죠? 허영이라는 단어가 케노독시안이라는 헬라어가 쓰였는데 이건 케노스와 독사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케노스는 ‘내용없는’이라는 뜻이고 ‘독사’는 ‘영광’이라는 뜻. 그래서 허영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뜻은 내용없는 영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허영을 우리가 왜 버려야 한다고 바울이 말을 했냐면 우리가 헛되이 자기 자신을 높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한겁니다.

 

 

뒤이어, 적극적 행동은 바로 ‘겸손’을 갖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겸손’이 미덕이 아니고 노예 근성에서 비롯된 굴욕이나 비굴함을 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미 오셔서 ‘겸손’이 무엇인 정말 잘 보여주셨고 그 이후 ‘겸손’이라는 정신은 기독교 최고의 미덕이 됐어요. 이런 예수님과 같은 겸손함으로 우리가 서로를 섬기면서 ‘교회의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바울은 이야기 하는겁니다. 

 

4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설명>

여기서 ‘일을 돌본다는’건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이익도 생각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유익도 돌봐야 합니다. 특별하게, ‘일을 돌본다’는 구절을 교회 안에서의 ‘은사’로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그래서 자기안의 은사도 잘 살펴봐여하고 다른사람의 은사도 보고 그것을 본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교과내용 읽기>

  • 빌립보서 2:3-4절을 읽어보라 밑에부분부터

 

바울의 말은 겸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을 낮춰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며,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돌보는 것이다. 물론 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우리가 모든 상호관계에서 명심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우리는 대화하는 중에 흔히,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경청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하는 말에 자신이 어떻게 대답할지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갈등은 종종 그저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피할 수 있는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다른 이의 관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건강한 소통과 신뢰를 세우는 첫걸음이다.

 

바울은 우리를 “평화의 띠로 묶”(새번역)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엡 4:3)는 연합을 말한다. 교회에 분쟁이 요동칠 때 성령께서 물결을 잠잠하게 하시고 우리를 연합으로 이끄시며 조화를 이루게 하신다. 같은 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엡 4:13)라고 말한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아는 데서 비롯되는 동일한 믿음, 곧 성경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 가운데 연합이 충만히 이루어지는 데 필수적이다.

 

 

  • 정리

교회안에 분열과 갈등이 생길 때 우리가 허영과 다툼이 아닌 겸손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또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신 성령에 의지해 하나가 되야 한다는 겁니다.

 

1월 20일 화요일 마음을 바꾸는 방법

 

Q)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포기’는? 내가 하기 가장 어려웠던 포기의 순간은?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내용을 보면 교회의 분열과 다툼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사도바울이 이에대해서 권면하는 내용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화요일 소지에는 특별히 사도바울의 권면이 더 강력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제목이 ‘마음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을 누가 한번 읽어주세요.

 

  •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도바울이 이미 3절에서 다툼에 대해 권고할 때 ‘겸손’의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읽은 5절에서 그 예증이 누구에요? 예수그리스도라고 말을 합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떄 다툼없이 ‘겸손’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마음’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떠 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흔쾌히 지셨나요? 그러지는 않았어요. 예수님의 마음에도 고통이 있었어요, ‘하실만 하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도 드리셨지만 끝에는 결국, 복종하시는 마음으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게 복종의 마음인 것 같고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인 듯 합니다. 내 생각대로 하고 싶고 내 뜻을 굽히고 싶지 않을 때가 그것을 굽히기가 참 어렵죠. 그런데, 우리가 그때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도 교회의 연합을 위해 순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읽기>

  • 빌립보서 2:5을 읽어보라 밑에부터 읽어주시겠어요? 3번째 문단정도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생각을 바꿀 수 있겠지만,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성령께서 “성령의 검”(엡 6:17), 곧 “살아 있고 권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수술 하셔야 한다. 그분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히 4:12)신다. 본성상 우리 마음은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렘 17:9)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다.

속인다는 뜻의 히브리어 ‘거짓된’(‘aqov, 아코브)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울퉁불퉁한 땅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 뒤틀리고 왜곡되고 굽은 생각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롬 12:2)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네 감사합니다. 바로 영감의 교훈 읽어볼까요? 누가 읽어주세요!

 

  •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가 그 마음속에 거하시는 사람의 생애“참된 성화는 사랑의 원칙을 실천함으로 이룩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사람들의 생애에는 실제적 경건이 나타날 것이다. 품성은 순결하고,향상되고, 고상하고, 영화롭게 될 것이다. 순결한 교리가 의의 행위와 섞이고 하늘의 규례가 거룩한 행실과 혼합될 것이다”(사도행적, 560)

 

 

1월 21일 수요일 그리스도의 마음

 

Q) 내가 생각하는 겸손은?

 

  • 본문말씀 빌립보서 2:6-8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6절부터 보면, 5절은 아까 봐서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과 본체로 동등하시죠 그런데, 우리가 모두 알 듯이 그런 지위를 포기하고 낮아지신 겁니다.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7
7절도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포기하여 죄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시사한다(막10:45;눅 22:27).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8
8절에 보면 예수님의 겸손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결국에 지셨는데 하늘의 왕권을 버리시고 타락한 인간으로 오셨고 복종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겸손이 아닌가...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겸손’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교과함께 읽기>

 

하나님이시며 그분과 동등이신 예수님은 단지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종”(doulou, 노예)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갈 3:13)셨다고 말한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렇게 하기 위해 그분은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셔야 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곧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고 희생하고자 하는 예수의 마음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 1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여러 면에서 빌립보서 2:5-8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과도 일치한다. 바울은 여기서 “무엇을 하든지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빌 2:3, 우리말)라는 이전의 권면을 더욱 강력하고 생생한 표현으로 반복한다.

 

  •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의 마음- “‘너희안에 이 마음을품으라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종이 주인보다 더 큰가? 그리스도는 당신의 삶을 우리 모본으로 주셨다. 당하는 멸시로 마음이 들끓고, 모든 실제 혹은 가상의 손해에대해 분개한다면 그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자아를 변호하고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는 일은 고상한 마음의 증거가 아니다. 우리는 보복의 정신이나 화를 쏟아내 영혼을 상처 입히기 보다는 수백 번 잘못된 대우를당하는 편이 더 낫다”(교회증언 2권, 426).

 

 

결론

 

우리는 마음을 바꿀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며 성령을 통해 제시되는 권능의 말씀이 모난 우리 마음을 영적으로 변하게 도와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 사랑,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의 모본은 영원을 통해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경건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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