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눅7장 23절, 침례요한의 제자들의 질문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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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사명이 끝나갈 즈음 그는 옥에 갇혔습니다. 어두움이 그를 짓눌렀고 제자들마저 인간적인 약함을 건드렸습니다. 사탄의 속삭임은 그를 더욱 괴롭게 했습니다. 비록, 침례 요한이 선지자라할지라도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그는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증거들을 기억했고 하나님의 일을 사람과 토론하지 않고 예수님께 직접 기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기별을 듣고 침례요한은 그가 연구했던 말씀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을지의 여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붙잡아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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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안식일에 병자 고치신 예수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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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의 환자를 안식일에 치료하셨다는 이유로 산헤드린 앞에 섰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천연계를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의 간구와 탄원을 들어주시기를 멈추지도 않으십니다. 하늘의 사업은 멈춤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또한 다른 날보다 하나님께 대한 요구가 더 큰 날이기에 예배와 건전한 안식 그리고 거룩한 행위를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동은 하늘의 사업을 멈추지 않으시는 일이었고 거룩한 행위였기에 안식일과 완전히 조화된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안식일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운 이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두렵고 어려운 이때 하늘의 지혜를 통해 안식일을 존귀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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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베데스다의 뜻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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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38년된 병자는 수도 없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말을 들었을테다. 매번 베데스다에 들어가지 못해 실망한 그에게 사랑과 자비의 얼굴로 물어보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그를 낙담케 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일어나 걸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자신이 완쾌됐다고 느껴질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그의 병은 나았다.

이 병자가 치유되는 과정은 마치 죄인이 새 삶을 얻는 과정과 비슷하다. 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낫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얼굴을 마주보시며 사랑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걸어가고 싶다. 베데스다는 희망이 아니지만 예수님은 최고의 희망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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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복음 4장 48절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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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아들을 둔 고관이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도움을 얻고자 나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색을 본 그의 믿음은 흔들렸다. 과연 이 사람이 나의 아들을 치료할 수 있을까? 이에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은 이 고관이 자신의 소망이 충족되야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것을 아셨다.

비록 조건적인 믿음이었지만 고관은 의심과 믿음사이에서 마치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면서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았듯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잡았다. 그리고 아들은 나음을 입었고 온 가족이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 아들의 생명만을 요구한 이 고관의 조건적인 믿음에 예수님은 더 큰 믿음의 기회를 주셨고 그의 믿음으로 온 가족이 구원의 기쁨에 참여했다. 나 역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조건적인 믿음의 사람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나의 그 조건적인 믿음에 더 큰 믿음의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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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침례, 마태복음 3장 13-17절

성경/말씀 묵상|2020. 8. 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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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9절 13절

 

마태복음 3장 13절에서 17절에는 예수님께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받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절 한절 깊이 말씀을 나눠봅시다 :)

#마태복음 3장 13절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예수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가난하셨기에 아버지인 요셉과 함께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목공소를 차려놓고 일하시지 못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시면서 일거리 없는지 여쭤보면서 다니셨다고 하네요. 아무튼, 이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신 예수님께서 아이가되고 청년이 되가실 즈음, 침례요한이 광야에서 기별을 전파하며 예수님의 사역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로 일을하시는 중에 이 기별을 전해들으셨고 '예수님의 때'가 오심을 알고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뒤 침례요한의 사역이 있던 곳인 요단강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침례요한은 친척간이었고 출생에 따른 사건때문에 깊은 관련이 있었지만 아직 서로 대면한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했는데 침례요한과 예수님이 서로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합심했다는 혐의를 받을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어린시절 랍비들과 대화하시던 일을 들었고 예수님의 죄없는 생애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약속된 분이라는 보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침례요한은 하나님의 때에 분명해지리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후에 침례요한은 메시아가 자신에게 침례를 요구할 것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4절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단강에서 예수님과 침례요한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은 예수님과 같은 분을 전에 결코 만난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품성의 순결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이 계신자리까지도 거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거룩한 감화를 나타내는 분을 앞에서 보게 되자 침례 요한은 자신이 침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자기가 예수님에게 침례를 주냐고 묻게됩니다. 죄인인 요한이 어떻게 죄없는 분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단 말입니까?

 

#마태복음 3장 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고 온유하신 음성으로 침례요한에게 '허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의미에서 침례를 받지 않으셨고 다만 우리와 같이 죄인의 모양이 되셔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것입니다. 침례를 받으신 후의 예수님의 생애 또한 우리에게 모본입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시던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 제도를 만드신 분이 그 제도를 파괴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을것이었고 하늘의 하나님이 '바알 세불'이라고 불릴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것들을 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사명을 행하고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침례를 받으시고 나오자마자 엎드려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의 팔을 붙잡기 위해 당신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받으신다는 증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보좌에서 영광의 빛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비둘기 같은 가장 순결한 모양의 빛이 흘러내려와 예수님위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은 영광으로 빛이났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늘에서 분명한 말씀이 선포된 것은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고취시키고 예수님에게 힘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지만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고 하시며 예수님을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인류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눈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계시됐던 그 표적을 알아보고 성령이 그에게 임하자 양손을 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임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 말씀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 후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성령이 임한 사실 역시 죄인인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된다는 것을의미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많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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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돌아가자

성경/말씀 묵상|2020. 8. 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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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그분께서 받아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에게 가서 우리의 죄를 씻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마음과 새 정신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받을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셨는지 설명해줍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치유했다고 말합니다.

 

38년간 걷지 못했던 베데스다의 환자를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라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이 나를 온전하게 하시면 내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완전하게 나았다고 믿었고 걷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했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환자의 모습 그대로 말씀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베데스다의 환자가 믿었을 때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셨듯 우리가 믿을 때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됐다고 느껴질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를 정결하게 해주시고 당신과 같아지게 해줄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한 생애를 살 능력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게 되면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당신을 바쳤다면 다시 되돌아가지 마세요. 결코 예수님의 품을 떠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그분의 성령을 주실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달라고 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전에 변화의 증거를 보여야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흔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거룩한 생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작을 성령을 구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죄와 싸울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라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인의 모습일 때 지금당장 당신께 나아오시길 원합니다. 우리의 어리석고 볼품없고 연약하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죄를 한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정결하게 해주시고 의롭게 해주시는 것이 그분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강하고 순결하고 의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옷을 입히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느낄 때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는 성령하나님께서 죄인을 아버지의 품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특별한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죄가 많고 그 죄가 클지라 하더라도 마치 집을 나간 아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리며 오늘오나 내일오나 마중나가서 기다렸던 그 아버지처럼 아니 그보다 비교도 안되는 큰 사랑으로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520)

 

아직도 의심이 되십니까? 의심과 두려움이 걷히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지금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 귀한 아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시다.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기도하세요.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께 나아가 그 축복을 받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읍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켜 그분과 같이 완전한 생애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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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헌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성경/말씀 묵상|2020. 8. 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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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모두 죄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상태를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죄악적인 본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주시고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쳐주시기 위해서는 우리를 전적으로 변화시키셔서 새로운 욕망과 습관을 갖게해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여기서 헌신이란 우리의 죄된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큰 죄인입니다. 저는 죄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저의 죄와 저의 죄된 모습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부디 저의 죄를 책임져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미워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진정으로 헌신하는 기도이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된 자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기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에 죄에 무너지고 하나님께 굳은 결심을 하여도 매번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에 자포자기 하고싶을떄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나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그 능력만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우리 삶의 선택들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선택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수는 있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의미는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쳐주시거나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거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거나 섭리로써 말씀하실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면 됩니다. (순종) 그리하면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영으로 지도함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과 같아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안에 사시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는 행복으로 우리는 더욱더 마르지 않는 샘물에 가려고 합니다. 

 

 

저는 헌신의 의미를 이제까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고 선교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헌신이란 우리의 죄된 마음을 드리는 것이자 우리의 온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사탄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지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된 마음 그대로 자신에게 나오라고 하시니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스스로 사랑할 능력도 없으니.. 그저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기로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을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헌신입니다. 여기서 섬김은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아는 하나님 섬기기를 어렵게 합니다. 본성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반만 세상에 속하고 반만 하나님께 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여 주신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크나 큰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순종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섭리로 역사해주시며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그대로 선택(순종)하면 됩니다. 하늘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순종해 그분의 계획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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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란 무엇인가

성경/말씀 묵상|2020. 8. 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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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잘못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지었을때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신 이렇게 행동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거나 죄책감에 짓눌러 일정기간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회개'는 죄의 결과를 두려워한 회개이지 죄 자체를 슬퍼하고 한탄하는 회개가 아닌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내가 이 죄를 지었기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좋은 결과를 주실거야 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볼까요? 선지자 발람이 있습니다. 그 발람 역시 하나님앞에 큰 죄를 저질렀지만 회개했습니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을 팔았지만 이내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회개는 죄 자체를 슬퍼하며 한탄하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즉,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0)

 

다윗은 우리아를 전쟁에 가장 선두에 위치시켜 그를 죽였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살인죄에 간음죄까지 더했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정말 가증한 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왔을때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하나님앞에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 그자체를 슬퍼했으며 한탄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떤 벌로 자신의 죄를 벌하시더라도 '받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 의해 크나큰 고생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압살롬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자신이 범죄한 죄가 자신앞에 있었음을 알았기에 그의 인생에 임한 극심한 시험을 '복종'했습니다. 그때의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말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골리앗을 무찌를때보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임한 시험과 고난을 순종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회개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한탄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그분께 죄송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처음에야 양심이 올곧아 나의 죄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슬퍼할 수 있겠으나..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에 죄에 죄를 더하고 계속 반복해서 죄를 짓는동안 마음이 강퍙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마음은 '죄'로 물들고 병들고 더럽혀져 예수님을 못박게한 나의 죄를 스스로 슬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진정한 회개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회개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오직 우리에게 영적인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께로서만 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이 사람을 진정한 회개로 이끌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셔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올바른 갈망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구하여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고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실때 우리는 그분의 놀랍고도 깊은 사랑에 마음이 감동하여 나의 죄의 깊이를 어느정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 죄 사유함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이 우리의 양심을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속에 품은 모든 악한 생각들도 죄이고 그 죗된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열매들 역시 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께 일치되어야 우리는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일입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안에서 완전하게 살기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아야 하고 죗된 행동이든 죗된 마음이든 '죄'를 지었을때... 사탄의 '니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하는 음성을 듣지 말고 

 

"나 죄인 맞아...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책임지셨어. 그래서 나는 그 예수님을 믿을거야"

 

라고 말해야 하며 유대인들이 흠없는 어린양에 자신들의 죄를 전가시켜 하나님께 제사드렸듯, 우리의 죄를 진정한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가지고 가서 그분에게 바쳐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죗된 마음이 들고 죗된 행동을 했을때... 주저 않지 마세요. 우리는 죄인이기에 넘어질 수밖에 없고 엎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죄를 지었을때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지체하지 말고 성령을 구하여 죄를 슬퍼하고 한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하나님께 '순종'을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마음과 행동의 일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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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진심으로 고백함

성경/말씀 묵상|2020. 8.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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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에게 잘못을 했다면 이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고 잘못한 대상에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때 하나님께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웃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이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에게 죄를 지었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앞에 죄를 지었을때.. 우리는 자신을 겸비하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영혼은 자신의 죄에 대해 변명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로 범죄 했을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나에게 그 나무의 실과를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이렇듯 하나님을 탓하고 하와를 탓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여쭤보시자 하와는 뱀을 탓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가 어떤 큰 희생을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피하려고 했고 숨으려 했고 변명하기에 바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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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싶은 욕구는 사탄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모든이에게 그러한 욕구가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백을 받아 주지 않으실 것이다. 참된 회개는 자신의 결백을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변명을 늘어 놓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도록 이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큰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괴수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감추지도 않았고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는 첫째 조건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지 않느다면 이는 용서를 위해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깊이 토로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들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토함으로 진정으로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이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죄'에 대한 진정한 고백을 하지 못할까...?

 

이는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해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아래 우리가 눈을 뜬다면 우리의 죄를 분명히 보여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진정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우리 죄를 바로 볼 수 있도록 간구할때 성령께서 우리의 눈에 안약을 발라주셔서 우리의 죄를 분명히 보여주실것입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우리의 죄들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토록 흉악하고 더러운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꺠닫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값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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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필요한 우리

성경/말씀 묵상|2020. 8. 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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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무서운 이유는 그 결과가 단 하나로 끝나지 않느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죄도 지었지만 그 죄로 인한 결과로 사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던 그들이었지만 죄를 지은 이후로는 자신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자리가 점점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에게서만 행복과 거룩함을 느꼈던 그들이었지만 죄를 지은 후로는 거룩함에서 행복함을 찾지 못했고 하나님으로부터 피하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타락한 품성을 전해내려받은 사람들이기에 결코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스스로 거룩해질 수도 없으며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에 물들었으며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조차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읽어도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교회를 가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십니까? 선한일을 해도 마음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으세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온 마음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그 역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알았기 때문에 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고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거룩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예수를 통해 하나님에 이르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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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마음에 평안과 은혜가 느껴지기 보다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기도를 하며 다시 말씀을 천천히 살펴봤다. 그랬더니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인류는 타락했고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탄에 속하여 거룩함하나님에서 행복함을 찾지 않는 존재가 됐다. 나 역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생각대로 신앙을 하고 때때로 사탄의 인도함을 받는 모습이 나타남을 고백한다. 또한 말씀을 보더라도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나의 자아 만족을 위해 말씀을 보고 기도를 했던 경험도 참 많았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하나님께서만이 주시는 행복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나의 삶에 조금씩 조금씩 나타났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기도를 듣기 원하실까?

 

나의 생각과 자아에 대한 미련을 예수님께 가져가고 싶다.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걸어가보고 싶다. 그동안 참 내 힘으로 많은 일들을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도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할 듯 싶다. 이 기도의 마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순수한 열망으로 말씀과 기도로 삶을 살고 싶다. 이렇게 묵상을 마칠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이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분인지 가르쳐주심에 참 감사하다. 내일은 조금 더 하나님께로 가고 싶다. 아니 오늘 남은 시간 동안에도..

 

..예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죽은 영혼에 새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우리를 하나님과 거룩함으로 이끌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은 하늘과 다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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