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제자 빌립

성경/말씀 묵상|2020. 11. 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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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중 빌립은 믿는데 느렸습니다. 그의 믿음 부족은 곳곳에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실때에 그는 불신을 나타냈고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 물을 때 그 기회를 붙들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마지막 몇시간전에는 믿음을 꺾는 말을 했습니다. 3년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했던 빌립은 이토록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학교의 학생이었던 빌립의 불신과 우둔함을 예수님께서는 인내로 참으셨습니다. 그 결과 빌립은 예수님의 승천후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굳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사가 됐습니다. 사도행전2장 27-39에도 빌립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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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빌립보다도 믿음이 부족한 저이지만 하늘 교사 되시는 예수님께서 저의 불신과 어리석음을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주심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게 해주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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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기도생활

성경/말씀 묵상|2020. 11. 1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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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12-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선택하시고 사도라 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를 선택하시기전에 먼저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고 기도하시지 않고 선택하시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전에 항상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라며 예수님의 기도의 삶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실천하시기전에 먼저 하나님과 기도로 깊게 교통하며 큰 힘을 얻으셨고 그분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시간은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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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진심어린 기도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그 길을 제시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벗삼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들의 의무를 할때 마음속의 소망을 조용히 하나님께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결코 사라지거나 들리지 않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의 심령의 간절함으로 나오는 기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여러 소리속에 묻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 기도는 하늘로 올라갑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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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과 안식일

성경/말씀 묵상|2020. 11. 1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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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가 바리새인들을 자극 할 것을 아셨으나 손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안식일에 왜 병자를 치료하시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것과 죽이는 것중 어느것이 옳으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렇듯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어진 날이기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뜻에 옳은 일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복을 누리도록 이날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그리스도를 창조주와 구속주로 가리키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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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회복시키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다가올 안식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더불어 참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장 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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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묵상] 금식이란, 마태복음 9장 17절

성경/말씀 묵상|2020. 11. 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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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멸시받던 세리들과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마시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은커녕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한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자아가 세고 고집스러워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저에게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저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저의 기준으로 타인의 신앙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자아를 비워 그분이 원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자아를 비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아를 포기할 수 있을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사람에게 새 생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이 되고 그분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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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 9장 2절-8절,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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죗된 결과로 중풍병자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소식을 듣고 낫길 원했으나 죄로 인해 병이 생겼다는 사실에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지고 병들어갔습니다.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으로 운반해달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예수님 계신곳까지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너무나 많은 군중들이 있어 몇 번을 시도했으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병자는 지붕을 뚫고 예수님의 발 앞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친구들은 마침내 그를 예수님앞에 데려갔습니다. 병자의 탄원하는 눈빛을 바라보신 예수님은 그가 죄에서 먼저 해방되길 원하는것을 아셨습니다. 눈빛으로 말하는 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새 생명의 은혜로 받아들인 그는 죄 사함을 받고 육체적 병에서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저는 오늘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사용해 예수님께 나아간 중풍병자를 보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마음이 힘들어서..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던 제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떠올리며 핑계없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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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누가복음 5장 12절-16절, 예수님과 문둥병자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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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세상과 격리된채 살아온 한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중에는 병을 앓았던 모든 사람이 그분을 만나고 치료 됐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이에 문둥병자는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비록 사회에서 격리됐지만 샛길에서 산길에서 예수님을 만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께 있었으므로 그는 예수님만을 만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간절히 원한 끝에 예수님을 만났고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문둥병자를 치료한 예수님의 사업은 영혼을 죄에서 깨끗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업에 대한 예증이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인 우리이지만 그 모습을 안다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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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마태복음 5장 1절-11절, 예수님의 제자들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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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른 사람들은 갈릴리의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최고로 교육받은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실 수 있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자신만만해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사람들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예수님의 동역자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교육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분의 가르침을 세상에 막힘없이 전 할 수 있는 통로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교육을 받고 그분께 훈련받은 제자들은 후에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출신은 미천했지만 그들을 크게 사용하신분은 하나님이었기에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고 그분을 최고의 지도자요 교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필요한 훈련들을 견뎌 하나님의 사랑을 막힘없이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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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누가복음 4장 16절, 나사렛에서의 예수님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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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사렛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설명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생배경과 성장배경등을 이유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학식과 경건을 칭찬했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았을 테지만 그들은 성령으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신앙은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었고 그들이 믿고싶은대로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인정할 수가 없었고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예수님을 부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말씀에 기초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완전하지 않은 모습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굴복하여 돌이켜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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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눅 4장 24절, 나사렛, 유대에서의 거절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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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나사렛뿐만 아니라 유대에서도 배척받으셨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신들의 그릇됨이 드러나자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유대지방을 뒤로 하고 갈릴리로 오셨습니다. 갈릴리는 가나안 족속들과 인접한 지역이었고 불학무식한 사람들이 많아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주로 이루어졌고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많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많은 신실한 성도들도 나왔습니다. 시대의 소망에는 갈릴리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마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더 열려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정통이냐 아니냐보다 마음속이 어떠한가를 가장 우선시 보시는 듯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예수님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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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마14장 10절, 침례요한의 죽음

성경/말씀 묵상|2020. 11. 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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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요한은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비참하고 볼품없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전했던 기별의 결과를 보지 못한채 죽었습니다. 얼마나 슬펐을까요? 그의 삶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애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음을 후일에 순교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본으로 사용하셨고 그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선물중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신임이고 가장 높은 영예이다’. 침례 요한의 삶은 사람이 볼 때 슬프고 비참하고 기쁨없는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기별을 전하는 삶이었고 죽음까지도 모본으로 인정되는 삶이었으며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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