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8:51-59, 요12:1-12, 요18:28-40 <아브라함, 빌라도, 마리아, 도마 의 증언>

성경/요한복음|2024. 11. 17. 12:46
반응형

기억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세대가 믿을 수있도록 증거를 제공한다. 요한의 때에는 그저 믿었던 예언, 말씀이 오늘날 성취된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할지라도 말씀을 통해 믿으며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세상에 증거한다.

 

도입질문) 당신이직접보지않아도분명히믿을수있는것이있습니까?그것은무엇입니까?


1. 아브라함의 증언

 

본문성경절 요8:51-59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

.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예표와 약속을 통하여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갈 3:8)셨다. 그러므로 그 부조의 믿음은 오실 구주에게 고정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고 말씀하셨다.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려진 어린양은 우리 대신 희생당하시기로 되어 있던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죽을 운명에 처했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쳐다보며 죄인에게 ‘살라. 내가 대속물을 찾았노라’고 말씀하신다”(부조와 선지자, 154)

 

묵상1) 예수님은 왜 그분을 만난 아브라함의 기쁨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읽은 내용 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브라함 자손에 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네가 무엇이관대’ 우리를 자유케 한다 하느냐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지 말씀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올 것을 인해 기뻐했다. 근데 너희는 오히려 나를 죽이려고 하고 나를 믿지 않는다. 너희가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나를 믿을 것인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쁨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까 아브라함은 생전에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했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의 기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묵상2) 아브라함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기뻐한건가? (영감의 교훈에 그 답이 있다)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를 본 아브라함 - "이 무서운 시련이 아브라 함에게이른 것은 그에게 그리스도의날을보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교훈 중에서 가장 큰 교훈을 하나님에게서 배웠다.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그의 기도는 응답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보았다"(시대의 소망, 469).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서 바치려고하는 그런 투쟁 속에서 실제 바치기로 하고 죽이려고까지 했던 그 자신의 모든 일련의 과정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인류에게 보내주신 그 사랑의 깊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주시는 그 고통과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


마리아의 증언

 

본문성경절 요12:1-6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나사로는 예수와 함께1)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참고성경절

막16:9

요11:43

눅 7:39

묵상1) 시몬의 잔치에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행위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월요일 소지 제목이 ‘마리아의 증언’인데, 이 제목에 한번 빗대어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우리가 먼저 마리아의 배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요.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7귀신 들린 사람이었어요. 그것은 마리아가 7가지 죄악의 덫에 사로잡혔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을 죄에서 자유케 하신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신실한 증인이 됐어요.

 

또 향유 옥합 사건이 있기 전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빠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직접 목격했어요.

 

그래서 종합해보면 마리아는 자신을 죄에서 해방시켜준 예수님, 그리고 자신의 오빠를 살려준 그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행위를 한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녀가 당시 1년치 노동값에 해당하는 그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행위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신령과 진정으로’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것이 곧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건데 마리아의 이 행위가 이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진정으로 나의 구주로 여길수만 있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을겁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을 통해 거듭난 영혼은 이렇게 변화된다고 증언 하는 겁니다.

 

구주의 시신에 아낌없이 부으려고 했었던 향기로운 선물을 그녀는 산 몸 에부은것이다.장사때에사용했다면무덤을채웠을뿐이겠지만지금이향기는마 리아의 믿음과 사랑의 보증으로서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큰 시련의 어두움으로 내려가실 때에 당신이 구속하신 자들 에게서 받으시게 될 열렬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그 행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가 셨다"(시대의 소망, 560).

 

-> 제가 지난번에 죽은 친구를 이야기하면서 그친구와 크레이지 아케이드게임도 하고 같이 축구도하고 학창시절에 너무나 큰 행복을 준 친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는데요, 그 친구는 가면서도 저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을 주고 떠난 거죠. 그런데, 과연 그 친구도 나와의 추억이 행복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온정과 치유와 자유를 주시고 떠나실 것이지만, 마리아의 행동은 떠나시는 예수님의 길에 열렬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기억을 갖고 떠나셨다는 사실이 감동이 됩니다.

 

<영감의 교훈>

향유를 부은 동기 - "마리아는 예수님에게서 그의 죽 음이 가까움을 알리시는 말씀을 듣자 깊은 사랑과 슬픔 으로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였다. 개인적으로 크게희생하여그는예수의몸에부을'값진향유'한옥 합을샀다.그러나지금많은사람은예수께서왕이되 시려고 한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 으로 변하였으며 그는 제일 먼저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열망하였다. 옥합을 깨뜨리고 그는 향유를 예수의 머리와 발에 부었다"(시대의 소망, 559).

 

질문1) 예수님이 당신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인가요?

 

저는 죄책감의 무게가 너무 커서 이걸 내가 해결할 수가 없구나를 느꼈는데 그래서 내 삶에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버님과 갈등이 있어서 집을 나간 적이 있는데 어떻게 돌아왔는데도 아빠에게도 큰 상처가 됐고 저도 아빠가 상처가 너무 큰건 알겠는데 이걸 내가 해결할 수가 없는 걸 알겠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었요. 근데 그걸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 삶에 무조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어요.


빌라도의 증언

 

본문 성경절1 요18:28-40

 

빌라도 앞에 서시다(마 27:1-2,11-14;막 15:1-5;눅 23:1-5)

28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39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묵상1) 예수님에 대한 판결을 내린 총독 빌라도의 증언은 결국 무엇인가? (2가지)

 

무엇이냐면 예수님은 죄가 없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다.

 

심문을 할게 있어서 데려왔을 건데 심문을 계속 해봐도 이 사람에게서 죄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채찍질까지 했는데도 죄가 없을을 한번 더 알게 됐어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는데 예수님이 그렇다고 하시면서 영적인 이야기로 끌고 가시죠. 빌라도는 이를 받아들였어요. 이걸 알 수 있는 대목이 18장 39절입니다. 그냥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는데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봅니다.

 

또 19장 14절에 보시면 ‘너희 왕’이라고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표현합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달리실 십자가의 죄패에도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게 하죠.

 

유대인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지만, 빌라도는 인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당시, 빌라도는 그 상황에서 정치적인 압력을 받는 상황이었는데도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증언을 하게 된겁니다. 또 빌라도는 뒤로 갈수록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묵상2) 자신의 증언과 다른 선택을 했던 빌라도. 그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행4:27 본디오 빌라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롬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믿음과 진심을 그 안에 담고)

 

<영감의 교훈> 빌라도의죄-"비록빌라도가예수의피값을고소하 는자들곧'그피를우리와우리자손에게돌릴지어다' 라고 부르짖던 군중들에게 돌렸다 할지라도 그가 무죄 한것은아니다.그도그리스도의피에대한죄가있다. 그는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의 치리자 로부터 받는 영예를 사랑했기 때문에 무죄한 사람을 죽 게했던것이다.만일빌라도가자신의양심을따라행 동했더라면 그는 예수를 정죄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 을 것이다"(초기 문집, 17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나보고 ‘주여주여’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 우리가 품성이 변화돼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그리스도의 의가 그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그 삶이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예배이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증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로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는 증언이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질문) 우리가 증언한대로 살아가는 방법은? 

말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기도를 해라

‘시험’해 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도마의 증언

 

본문 성경절: 요20:19-31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2)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묵상1) 도마의 증언이 이와 같은 놀라운 신앙고백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28절 성경에 기록된 가장 놀라운 신앙 고백. 왜냐하면, 요한복음의 핵심기별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고백인데, 도마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신앙 고백입니다. 

 

<영감의 교훈> "도마는 자기 믿음의 조건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분별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관대한 사랑과 이해심 으로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불신은 언쟁으로는 거 의정복될수없다.그렇게하면도리어자기자신을변 호하고 새로운 구실과 핑계를 찾는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로 나 타내주면한때원치않던많은사람의입술에서'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한 도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808).

"그분은 겸손한 마음과 배 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주의 깊이 살펴보아야 할 증거를 주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증명력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그러나 자신의 유한한 이해 력에분명히밝혀질수없는것들이약간있다는이유 로 설득력 있는 증거로부터 돌아서는 자는 불신과 의심 의차갑고냉랭한공기속에머물게되고,믿음의파선 을 당하게 될 것이다"(교회 증언 5권, 675).

댓글()

[요한복음] 요한복음3장 25-35 (침례, 메시아, 예수님 사역)

성경/요한복음|2024. 11. 17. 12:39
반응형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2)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따를 때 메시아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은 많은 이에게 믿음을 주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적대감을 가지게 했다. 침례 요한은 겸비한 증인으로 인간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께서 예언을 성취하시며, 의의 나라를 세우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군중들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따랐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과 삶을 변화함으로 그분을 따르기를 거절했다.

1. 침례요한의 증언

 

본문 성경절 (요 3:25-30)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참고성경절

1) 막1:4-5

2) 호2:16-23

3) 사 62:1-5

 

묵상1) 요한의 제자들이 유대인과 더불어 논쟁한 ‘정결 예식’이란 무엇을 뜻할까?

침례이다. 그들은 침례가 진정으로 사람을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는지 안 해주는 지에 대해서 논쟁 한 것

침례를 성경에서 가장 먼저 베푼 사람은 누구죠? 침례요한입니다. 그런데, 마 3:15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침례에 대해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예수님께서 그 침례 의식을 승인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침례를 주지 않았을까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침례를 줬다고 나와 있어요. 그럼, 왜 그 예수님께서 승인하신 침례를 직접 베푸시지 않으셨을까?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어떤 사람도 예수님께 직접 침례를 받는 일로 교회 안에서 우월한 권위를 지녔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주석 내용이 있으니 참고!

 

묵상2)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의 대화로 보아 참 예수의 증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읽었던 요3:25을 한번 다시 볼까요? 지금 ‘결례’ 곧 침례에 대해서 논쟁이 있는데 누가 논쟁을 먼저 일으킨건가요? (기다리고) 성경은 침례 요한의 제자가 먼저 논쟁을 일으켰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전 이야기가 뭐냐면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침례의 원조는 우리들의 선생님인데, 저 예수라는 사람한테 사람들이 이제는 더 많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질투가 일어납니다. 또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뭔데, 침례를 자기가 직접 베풀지도 않고 자기 제자들을 시켜서 예식을 거행하게 하며, 우리는 침례를 베풀지도 못하는데 저 예수라는 사람의 제자들은 뭔데 침례를 베푸는 거야? 하면서 시기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기 스승님이 베풀었던 ‘침례’의식이 진짜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느냐?는 질문까지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이걸로 보아 아무리 침례요한처럼 엄숙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의 제자들일지라도 마음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참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마음이 조금 달랐던 듯 합니다. 30절을 한번 보실까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스승님, 저 사람들 잘못된거 아닌가요? 스승님이 원조인데 저 사람들 뭔가요? 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침례요한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건 침례요한이 자신의 영혼을 겸비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다시 증언하는 겁니다. 침례 요한은 제자들처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어요.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영감의 글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영혼을 겸비할 수 있었던 건 성경상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밤낮으로 연구했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바라보면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잊어버렸다고 기록이 돼 있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가 지난주 방수봉사를 하면서 옥상에서 아름다운 구름과 경치들을 봤잖아요. 저는 그런 풍경들을 보면서 잠깐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데 약간 그런 거 아니었나 싶어요. 자기 자신과 너무나 다른 예수님의 모습과 품성을 말씀으로 분명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보게되면서 ‘자신’을 잊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영감의 교훈을 읽어보겠습니다>

영감의 교훈

“침례 요한은 구주에게서 선지자 중 가장 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그의 말과 십자가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의 말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주장한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주의가 새 선생에게로 향한다고 불평할 때, 요한은 그들에게 자신이 다만 약속하신 분의 선구자에 불과한 것으로 주장해 온 사실을 상기시켰다” (교회 증언 5권, 224).

 

질문) 어떻게하면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겸손에 대해 배울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는데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봉사를 하고 힘들게 이곳 저곳을 거닐었다가 다 마치고 한 집에 들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적이 있으시죠. 그당시 문화가 이스라엘은 건조하고 흙먼지도 많은 곳이었고 사람들은 보통 맨발 또는 센들종류의 신발을 신었기 떄문에 발이 많이 더러웠어요. 그래서 부자집에서는 보통 ‘종’이 발을 씻겨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종이 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에게 베푸시는 겁니다. 그런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정말 ‘종의 종’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품성이 마음에 새겨지는 거고 나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스키렌탈샾에서 숙식을 하면서 지내는 알바를 했었는데 숙소에서 밥을 먹으면 저랑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 같이 있었는데 설거지를 잘 안했어요. 서로 미루다가 사장님의 형님인 부사장님에게 혼나면 보통 그 사람이 설거지를 했어요. 근데 진짜 설거지 하기 싫었던게 방도 추운데 뜨거운 물은 안나오고 진짜 찬물만 나옵니다. 그리고 밥그릇도 쐬그릇 있죠 교회 국 먹을 때 쓰는 쐬 그릇 딱 그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잘 안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맨날 저녁되면 점심+저녁 까지 먹었던 설거지가 쌓여 있는겁니다. 어느날도 마찬가지로 쌓여있었는데 사장님이 그걸 보셨어요. 저는 사장님이 그걸 보셨을 때, 괜히 딴척을 했는데 사장님께서 저희한테 뭐라고 화내실 줄 알았는데 팔을 걷으시더니 그걸 다 설거지 하시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저보다 높은 분이 설거지하는 그 모습에 진짜 내가 해야하는데 하면서 어쩔줄 몰라했던 그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는 설거지 다했는데.. 아무튼, 나보다 높으신 분이 ‘낮아지시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될 때 겸손해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메시야에 대한 새로운 이해

본문 성경절 (요3:32-36)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참고성경절: 사61:1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두안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묵상1) 요한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묵상2) 요한은 언제 그 참의미를 알게 됐는가?

1과 2번을 같이 한번 설명을 해볼게요. 침례요한은 구별된 생활을 하면서 이사야서에 나온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정말 많이 묵상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 때 하늘에서 비둘기모양으로 성령이 내려왔고 하나님의 음성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직접 들었어요. 그것을 통해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 이신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이 예수님께서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혼란이 있었어요.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를 했고 그가 생각했던 예수님의 사역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 예수님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서 뭐라고 합니까?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리이까’라고(참고성경저 누가복음 7:20) 했어요. 그 질문은 당신이 메이야가 맞습니까 아닙니까?가 아니라 당신의 사역이 대체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이었던 셈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침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가 사람들을 치료하고 병자들을 구제하고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모습을 본 그대로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참고성경절에 있는 사61:1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걸 전해 들은 침례요한은 자기가 이사야서를 연구했을 때 그 말씀을 당연히 알았을 테고 성경 말씀과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병자들을 구제하고 자유를 주고 사랑을 베푸는 것임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던 겁니다.

 

<영감의 교훈 읽기>

그러나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 성령의 비둘기 같은 강림, 예수의 흠 없는 순결성, 그리고 요한이 구주 앞에 나갔을 때 그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능력, 성경 예언들의 증언 등 이러한 모든 기억은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