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3장 25-35 (침례, 메시아, 예수님 사역)

성경/요한복음|2024. 11. 1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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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2)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따를 때 메시아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은 많은 이에게 믿음을 주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적대감을 가지게 했다. 침례 요한은 겸비한 증인으로 인간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께서 예언을 성취하시며, 의의 나라를 세우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군중들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따랐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과 삶을 변화함으로 그분을 따르기를 거절했다.

1. 침례요한의 증언

 

본문 성경절 (요 3:25-30)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참고성경절

1) 막1:4-5

2) 호2:16-23

3) 사 62:1-5

 

묵상1) 요한의 제자들이 유대인과 더불어 논쟁한 ‘정결 예식’이란 무엇을 뜻할까?

침례이다. 그들은 침례가 진정으로 사람을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는지 안 해주는 지에 대해서 논쟁 한 것

침례를 성경에서 가장 먼저 베푼 사람은 누구죠? 침례요한입니다. 그런데, 마 3:15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침례에 대해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예수님께서 그 침례 의식을 승인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침례를 주지 않았을까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침례를 줬다고 나와 있어요. 그럼, 왜 그 예수님께서 승인하신 침례를 직접 베푸시지 않으셨을까?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어떤 사람도 예수님께 직접 침례를 받는 일로 교회 안에서 우월한 권위를 지녔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주석 내용이 있으니 참고!

 

묵상2)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의 대화로 보아 참 예수의 증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읽었던 요3:25을 한번 다시 볼까요? 지금 ‘결례’ 곧 침례에 대해서 논쟁이 있는데 누가 논쟁을 먼저 일으킨건가요? (기다리고) 성경은 침례 요한의 제자가 먼저 논쟁을 일으켰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전 이야기가 뭐냐면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침례의 원조는 우리들의 선생님인데, 저 예수라는 사람한테 사람들이 이제는 더 많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질투가 일어납니다. 또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뭔데, 침례를 자기가 직접 베풀지도 않고 자기 제자들을 시켜서 예식을 거행하게 하며, 우리는 침례를 베풀지도 못하는데 저 예수라는 사람의 제자들은 뭔데 침례를 베푸는 거야? 하면서 시기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기 스승님이 베풀었던 ‘침례’의식이 진짜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느냐?는 질문까지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이걸로 보아 아무리 침례요한처럼 엄숙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의 제자들일지라도 마음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참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마음이 조금 달랐던 듯 합니다. 30절을 한번 보실까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스승님, 저 사람들 잘못된거 아닌가요? 스승님이 원조인데 저 사람들 뭔가요? 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침례요한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건 침례요한이 자신의 영혼을 겸비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다시 증언하는 겁니다. 침례 요한은 제자들처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어요.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영감의 글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영혼을 겸비할 수 있었던 건 성경상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밤낮으로 연구했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바라보면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잊어버렸다고 기록이 돼 있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가 지난주 방수봉사를 하면서 옥상에서 아름다운 구름과 경치들을 봤잖아요. 저는 그런 풍경들을 보면서 잠깐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데 약간 그런 거 아니었나 싶어요. 자기 자신과 너무나 다른 예수님의 모습과 품성을 말씀으로 분명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보게되면서 ‘자신’을 잊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영감의 교훈을 읽어보겠습니다>

영감의 교훈

“침례 요한은 구주에게서 선지자 중 가장 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그의 말과 십자가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의 말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주장한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주의가 새 선생에게로 향한다고 불평할 때, 요한은 그들에게 자신이 다만 약속하신 분의 선구자에 불과한 것으로 주장해 온 사실을 상기시켰다” (교회 증언 5권, 224).

 

질문) 어떻게하면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겸손에 대해 배울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는데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봉사를 하고 힘들게 이곳 저곳을 거닐었다가 다 마치고 한 집에 들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적이 있으시죠. 그당시 문화가 이스라엘은 건조하고 흙먼지도 많은 곳이었고 사람들은 보통 맨발 또는 센들종류의 신발을 신었기 떄문에 발이 많이 더러웠어요. 그래서 부자집에서는 보통 ‘종’이 발을 씻겨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종이 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에게 베푸시는 겁니다. 그런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정말 ‘종의 종’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품성이 마음에 새겨지는 거고 나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스키렌탈샾에서 숙식을 하면서 지내는 알바를 했었는데 숙소에서 밥을 먹으면 저랑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 같이 있었는데 설거지를 잘 안했어요. 서로 미루다가 사장님의 형님인 부사장님에게 혼나면 보통 그 사람이 설거지를 했어요. 근데 진짜 설거지 하기 싫었던게 방도 추운데 뜨거운 물은 안나오고 진짜 찬물만 나옵니다. 그리고 밥그릇도 쐬그릇 있죠 교회 국 먹을 때 쓰는 쐬 그릇 딱 그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잘 안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맨날 저녁되면 점심+저녁 까지 먹었던 설거지가 쌓여 있는겁니다. 어느날도 마찬가지로 쌓여있었는데 사장님이 그걸 보셨어요. 저는 사장님이 그걸 보셨을 때, 괜히 딴척을 했는데 사장님께서 저희한테 뭐라고 화내실 줄 알았는데 팔을 걷으시더니 그걸 다 설거지 하시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저보다 높은 분이 설거지하는 그 모습에 진짜 내가 해야하는데 하면서 어쩔줄 몰라했던 그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는 설거지 다했는데.. 아무튼, 나보다 높으신 분이 ‘낮아지시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될 때 겸손해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메시야에 대한 새로운 이해

본문 성경절 (요3:32-36)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참고성경절: 사61:1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두안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묵상1) 요한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묵상2) 요한은 언제 그 참의미를 알게 됐는가?

1과 2번을 같이 한번 설명을 해볼게요. 침례요한은 구별된 생활을 하면서 이사야서에 나온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정말 많이 묵상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 때 하늘에서 비둘기모양으로 성령이 내려왔고 하나님의 음성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직접 들었어요. 그것을 통해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 이신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이 예수님께서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혼란이 있었어요.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를 했고 그가 생각했던 예수님의 사역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 예수님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서 뭐라고 합니까?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리이까’라고(참고성경저 누가복음 7:20) 했어요. 그 질문은 당신이 메이야가 맞습니까 아닙니까?가 아니라 당신의 사역이 대체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이었던 셈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침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가 사람들을 치료하고 병자들을 구제하고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모습을 본 그대로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참고성경절에 있는 사61:1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걸 전해 들은 침례요한은 자기가 이사야서를 연구했을 때 그 말씀을 당연히 알았을 테고 성경 말씀과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병자들을 구제하고 자유를 주고 사랑을 베푸는 것임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던 겁니다.

 

<영감의 교훈 읽기>

그러나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 성령의 비둘기 같은 강림, 예수의 흠 없는 순결성, 그리고 요한이 구주 앞에 나갔을 때 그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능력, 성경 예언들의 증언 등 이러한 모든 기억은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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