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구속의 은혜, 요한복음 3장 16절

성경/창세기|2020. 9. 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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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이제 그들은 죽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브와 아담에게 죄의 선고로 해산의 고통과 노동을 지정하신 것에 대해 우리는 다 알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신분인 이유는 그분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죄의 선고를 내리시기전에 먼저 희망의 말씀을 하셨다는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비록 죄를 범하여 사탄의 이후의 공격으로부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면서도 사탄이 영원히 그들을 속박할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근거로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인간에 대한 희생을 치르실 것이고 그로 인해 인간에게는 은혜의 시기가 주어지고 회개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다시 하나님과 연결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평화의 회의를 결코 짧게 마치지 않으시고 긴 대화 끝에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실때 마음에 투쟁이 결코 없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사진=pixabay

 

Q 왜 예수님만 사람을 대신해 죽는 것이 가능했을까?

우선, 죄를 범한 사람은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일획도 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과 사람은 죄로 인해 영원히 분리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조 당시 사람은 천사들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하는 존재였으나 타락하여 이전과 같이 지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품성의 시험을 이겨내고(우리의 성품과 마음이 그리스도까지 자라나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인류를 너무나 동정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사람을 위한 구속의 계획을 세우고 이땅에 예수님이 오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변함이 없기에 죄의 값을 치러야 했고 영원한 생명을 갖고 계셨던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죄의 수치를 떠맡으신 예수님

 

위에도 언급했듯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인간에게 자동적으로 내주신것이 아닙니다. 쓸어내리는 마음을 안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인류를 위해 아들을 힘든 마음을 느끼면서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를 경험하실 것이었고 하늘의 보좌에서 인간세상으로 오시는 수치를 우리를 위해 감당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사람이 거의 없었음에도 그것을 알고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단 한명의 생명을 살라기 위해서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 인류, 그러나 ..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회복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회개의 길을 걷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락한 인간은 세대가 갈 수록 더욱 타락하고 인내심과 체력과 도덕적 지적 능력등은 최초의 인류보다 계속해서 저하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종 죄로 세상은 무척이나 더럽고 방종한 세상이 될것이었습니다. 이 모든것이 아담에게 이브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자신의 죄를 더 슬퍼했습니다. .

 

사진=pixabay

십자가에서 율법은 폐지됐나

 

만약,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될 수 있는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보여주셨습니다. 사탄은 이에 대해 하나님께 무어라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변경 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죽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사람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다 죽게 됐고 하나님의 아들도 영원한 생명을 우리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변할 수가 없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공의로운 분이시고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을 살리려고 낮이지신 예수, 사람을 속이려고 낮아진 사탄

예수님과 사탄 모두 사람을 위해 낮아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셨지만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으로 낮이지셨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속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자신을 감추기 위해 뱀으로 낮아졌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를 감추기 위해 낮아지기도 하고 사랑을 베풀기 위해 낮아지기 합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 우리라면 예수님을 닮기위해 낮아져야겠습니다.

 

창세기 3장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을까요? 그 이유는 사탄이 원했단 바였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이 죄로 인해 고통의 삶을 자신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속에서 살기를 바랐기에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어 죄스러운 존재로 영생하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죗된존재가 영생하는 길이 곧 그 존재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그 생명나우의 실과를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지 않고 그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믿는 우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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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침례, 마태복음 3장 13-17절

성경/말씀 묵상|2020. 8. 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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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9절 13절

 

마태복음 3장 13절에서 17절에는 예수님께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받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절 한절 깊이 말씀을 나눠봅시다 :)

#마태복음 3장 13절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예수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가난하셨기에 아버지인 요셉과 함께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목공소를 차려놓고 일하시지 못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시면서 일거리 없는지 여쭤보면서 다니셨다고 하네요. 아무튼, 이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신 예수님께서 아이가되고 청년이 되가실 즈음, 침례요한이 광야에서 기별을 전파하며 예수님의 사역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로 일을하시는 중에 이 기별을 전해들으셨고 '예수님의 때'가 오심을 알고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뒤 침례요한의 사역이 있던 곳인 요단강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침례요한은 친척간이었고 출생에 따른 사건때문에 깊은 관련이 있었지만 아직 서로 대면한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했는데 침례요한과 예수님이 서로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합심했다는 혐의를 받을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어린시절 랍비들과 대화하시던 일을 들었고 예수님의 죄없는 생애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약속된 분이라는 보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침례요한은 하나님의 때에 분명해지리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후에 침례요한은 메시아가 자신에게 침례를 요구할 것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4절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단강에서 예수님과 침례요한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은 예수님과 같은 분을 전에 결코 만난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품성의 순결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이 계신자리까지도 거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거룩한 감화를 나타내는 분을 앞에서 보게 되자 침례 요한은 자신이 침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자기가 예수님에게 침례를 주냐고 묻게됩니다. 죄인인 요한이 어떻게 죄없는 분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단 말입니까?

 

#마태복음 3장 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고 온유하신 음성으로 침례요한에게 '허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의미에서 침례를 받지 않으셨고 다만 우리와 같이 죄인의 모양이 되셔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것입니다. 침례를 받으신 후의 예수님의 생애 또한 우리에게 모본입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시던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 제도를 만드신 분이 그 제도를 파괴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을것이었고 하늘의 하나님이 '바알 세불'이라고 불릴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것들을 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사명을 행하고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침례를 받으시고 나오자마자 엎드려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의 팔을 붙잡기 위해 당신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받으신다는 증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보좌에서 영광의 빛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비둘기 같은 가장 순결한 모양의 빛이 흘러내려와 예수님위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은 영광으로 빛이났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늘에서 분명한 말씀이 선포된 것은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고취시키고 예수님에게 힘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지만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고 하시며 예수님을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인류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눈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계시됐던 그 표적을 알아보고 성령이 그에게 임하자 양손을 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임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 말씀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 후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성령이 임한 사실 역시 죄인인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된다는 것을의미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많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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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요?

성경/창세기|2020. 8. 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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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Q1. 선악과를 만든 이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시금석으로 삼은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동산에 있는 다른 모든것들을 사용하시는데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으나 오직 한가지만을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중에서 창조의 극치인 인간은 천연계와 달리 '자연법칙'에 의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고 도덕법칙에 의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Q2. 하와는 어디에 있다가 뱀을 만났을까?

뱀으로 변장한 사탄은 선악과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전 영역을 활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 대해 천사들과 하나님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고 사랑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특별히 천사들은 하와에게 아담이 천연계를 돌보는 중에 그의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항상 같이 있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브는 아담이 천연계를 돌보는 사이 이쪽 저쪽 다니게 됐습니다. 문득, '아 너무 멀리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을 의지했고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브는 결국 하나님께서 금지한 열매에 이르게 됐고 뱀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단지 인간이 선악과 하나만을 먹엇을 뿐인데 너무 인간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탄이 주는 생각들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왜 선악과에 가면 안되는지 사탄은 어떤 존재인지 심지어 함께 있어야 한다고까지 충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사랑으로 타일러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가볍게 여겼기에 결국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Q3.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대하는 하와의 마음에는 어떤 투쟁이 있었을까?

 

뱀은 하와의 아름다움을 교묘히 칭찬하며 유혹했습니다. 만약 사탄이 뱀(타락하기전에 가장 아름다웠던 동물)의 모습이 아니라 위협적인 존재로 변장했더라면 하와는 바로 위협감을 느끼고 도망갔을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자신을 숨기기위해 아름다운 뱀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췄습니다. 이에 이브는 뱀이 유혹의 매개물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사탄과 같은 사람입니까, 예수와 같은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겸손'하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왜인지 겸손해야 할것 같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3장에서 '겸손'한 사탄을 보게 됩니다. 사탄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뱀으로 낮아졌습니다. 겉모습으로 봤을때 낮아졌기에 사탄의 모습을 겸손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겉모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겸손하려고 하느냐 아니겠습니까?

즉, 동기가 가장 중요한 듯 싶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고 자신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행복할 수 있었던 모습을 인간에게서 봤기에 인간을 타락시키고자 뱀으로 낮아졌습니다. 사람들을 유혹하고 자신을 감추기 위해 낮아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없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 존경받기 위해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겸손'을 나타내는 사람은 아닙니까?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나는 무엇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을 살리기 위해 하늘의 왕좌를 버리시고 하찮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랑'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사탄의 겸손,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사탄의 낮아짐에는 이토록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과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추구해야겠습니다. 순도 100%의 겸손말입니다.

 

 

*하와의 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였는 바 바로 이것이 그 여자를 타락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범죄한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을 멸망시키는 일에 사탄의 대리자가 되었다.

 

*아담의 죄: 죽는다는 사실, 그 일이 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죄를 지었다.

 

이브는 결국 선악과를 먹었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습니다. 아담은 그 이야기를 듣고 슬퍼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결국은 죽게 될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아담은 죽을것을 알고 함께 죽고자 선악과를 베어 먹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두려워 숨어있던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이에 아담은 

 

창세기 3장 12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나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함께 죽고자 선악과를 먹었던 아담. 이브를 위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줬던 아담의 사랑은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핑계'대며 탓하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이토록 죄가 무섭고 인간의 사랑이 보잘것 없는가 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 아담 -> 이브 -> 뱀)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장 최근에 지었던 순서대로 찾아가서 물어보십니다. 처음에는 아담에게 물으셨고 그다음은 이브에게 물어보셨고 이제는 뱀에게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대로 뱀과 이브와 아담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왜 죄지은 사람들에게 심판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죄를 그대로 놔둔다면 과연 사탄은 하나님을 무엇이라 할까요?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되 죄는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와 '죄'의 심판을 결코 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죄라고 분명히 지적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죄를 지어 죽을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쓸어내리는 가슴으로 타버리는 가슴으로 내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아버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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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2장: 창조와 안식일

성경/창세기|2020. 8. 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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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2)

 

Q 하나님께서는 왜 쉬셨을까?

 

하나님은 피곤한 자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지혜와 선하심의 열매와 당신의 영광의 나타남을 기뻐하는 자로서 쉬셨다.

 

Q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날인가?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창조주의 모본을 따라 사람은 이 거룩한 날에 휴식할 것이었는바, 이는 그가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회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숭겸심으로 가득 차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안식일은 전 인간 가족의 아버지요 대표자인 아담에게 위탁되었다. 안식일의 준수는 세상에 거할 모든 자들 편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정당한 주권자시라는 것과 그들은 그분의 손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그분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을 감시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숙고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 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그에게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상기시켜 주고 그가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자선심 많은 손에서 나온 것임을 그에게 상기시킴으로 감사 하는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 힙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언제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큰 책을 열어 그 속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찾도록 명령한다.

 

Q 창조 당시, 사람의 모습은?

 

사람은 외모나 품성에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이시나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애정은 순결하였고 그의 식욕과 감정은 이성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

 

 

Q.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을 위해 하와를 만드셨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8)

 

인간은 고독하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사교적 존재가 될 것이었다. 반려자가 없었다면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광경과 유쾌한 노작도 완전한 행복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천사들과의 교제라 할지라도 동정과 반려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자기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

 

하와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취한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것은 여자가 머리가 되어 남자를 지배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마구 짓밟힘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과 동등한 자로서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

미한다.. 그 여자는 제 2의 자아로서 이러한 관계에 필수적인 밀접한 연합과 애정적 결합을 보여 주었다.

 

*최초의 결혼제도 역사의 주관자이자 결혼 주례자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그래서 결혼제도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다. 혼인은 귀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들 중 하나였으며, 타락 후에 아담이 낙원 문들 저편에서 가져온 두 제도 중 하나이다. 이러한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원칙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에 결혼은 축복이 된다. 그것은 인류의 순결과 행복을 수호하며 사람의 사회적 필요를 채워 주며 육체적 지적 도덕적 본성을 향상시킨다.

 

창조주의 걸작품이며 그를 위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이 단장함을 입은 존재인 사람이 활동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사람은 외모나 품성에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하나님께서 땅 위에 지으신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에게 비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에게 한 반려자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거룩한 부부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부족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창조주께서는 한 동산을 특별히 그들의 집으로 마련해주심으로 당신의 사랑의 다른 증거물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이는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최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숭경심으로 가득 하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묵상: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성적 존재이자 자연의 법칙이 아닌 도덕법칙에 의해 자신을 섬길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도덕을 사전에서는 양심과 연결시켜 이야기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발적인 마음에 의한 사랑의 봉사를 원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감사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처음으로 하나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부분이다.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면 당신을 닮은 모습(품성과 외모)으로 창조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가장 마지막에 창조하시어 이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을까 생각하니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고 또 용기가 되는 듯 하다. 왜냐하면 배우자는 내가 스스로 얻는 목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동반자의 필요를 느끼기 원하셨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어쩌면 내가 정말 정말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의 온 영혼과 나의 온 마음에서 간절하게 느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외롭고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 희망이 자꾸 꺾일 때 눈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고백한 시간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듯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주례자였다는 사실과 아담과 하와가 이미 풍족하게 누리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살 터전인 에덴 동산을 마련해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일 역시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뤄야 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만드셨고 가정을 만드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결혼가정에 대해 염려가 있고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하나님께 기도해야함을 말하고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와 선물로서 우리의 살 터전과 결혼을 구해야 함을 말하지 않나 생각한다.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살 터전을 제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우리의 살 터전을 주신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하다.

 

네 번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이었지만 절대 방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들을 만드셨다. 위에서 언급한 결혼을 통해 이뤄지는 가정이 그렇고 안식일이 그러하며 천연계들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선물의 참 뜻을 알고 하나님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래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어렵지 않은 일을 나는 왜 를 앞세우며 어렵게 만드는지...

 

가 아닌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여 이 많은 선물들을 누리며 살아가길 기도하자.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입힌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 천연계는 사람들의 오감에 말하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최고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한다.. 땅을 옷입힌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이다.

우리는 영원한 언덕들, 교목들, 피어나는 꽃봉오리들과 아름다운 꽃들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만물은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언제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큰 책을 열어 그 속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찾도록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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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돌아가자

성경/말씀 묵상|2020. 8. 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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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그분께서 받아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에게 가서 우리의 죄를 씻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마음과 새 정신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받을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셨는지 설명해줍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치유했다고 말합니다.

 

38년간 걷지 못했던 베데스다의 환자를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라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이 나를 온전하게 하시면 내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완전하게 나았다고 믿었고 걷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했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환자의 모습 그대로 말씀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베데스다의 환자가 믿었을 때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셨듯 우리가 믿을 때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됐다고 느껴질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를 정결하게 해주시고 당신과 같아지게 해줄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한 생애를 살 능력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게 되면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당신을 바쳤다면 다시 되돌아가지 마세요. 결코 예수님의 품을 떠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그분의 성령을 주실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달라고 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전에 변화의 증거를 보여야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흔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거룩한 생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작을 성령을 구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죄와 싸울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라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인의 모습일 때 지금당장 당신께 나아오시길 원합니다. 우리의 어리석고 볼품없고 연약하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죄를 한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정결하게 해주시고 의롭게 해주시는 것이 그분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강하고 순결하고 의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옷을 입히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느낄 때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는 성령하나님께서 죄인을 아버지의 품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특별한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죄가 많고 그 죄가 클지라 하더라도 마치 집을 나간 아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리며 오늘오나 내일오나 마중나가서 기다렸던 그 아버지처럼 아니 그보다 비교도 안되는 큰 사랑으로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520)

 

아직도 의심이 되십니까? 의심과 두려움이 걷히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지금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 귀한 아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시다.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기도하세요.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께 나아가 그 축복을 받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읍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켜 그분과 같이 완전한 생애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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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헌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성경/말씀 묵상|2020. 8. 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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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모두 죄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상태를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죄악적인 본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주시고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쳐주시기 위해서는 우리를 전적으로 변화시키셔서 새로운 욕망과 습관을 갖게해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여기서 헌신이란 우리의 죄된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큰 죄인입니다. 저는 죄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저의 죄와 저의 죄된 모습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부디 저의 죄를 책임져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미워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진정으로 헌신하는 기도이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된 자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기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에 죄에 무너지고 하나님께 굳은 결심을 하여도 매번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에 자포자기 하고싶을떄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나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그 능력만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우리 삶의 선택들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선택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수는 있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의미는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쳐주시거나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거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거나 섭리로써 말씀하실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면 됩니다. (순종) 그리하면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영으로 지도함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과 같아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안에 사시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는 행복으로 우리는 더욱더 마르지 않는 샘물에 가려고 합니다. 

 

 

저는 헌신의 의미를 이제까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고 선교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헌신이란 우리의 죄된 마음을 드리는 것이자 우리의 온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사탄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지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된 마음 그대로 자신에게 나오라고 하시니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스스로 사랑할 능력도 없으니.. 그저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기로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을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헌신입니다. 여기서 섬김은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아는 하나님 섬기기를 어렵게 합니다. 본성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반만 세상에 속하고 반만 하나님께 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여 주신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크나 큰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순종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섭리로 역사해주시며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그대로 선택(순종)하면 됩니다. 하늘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순종해 그분의 계획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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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란 무엇인가

성경/말씀 묵상|2020. 8. 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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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잘못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지었을때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신 이렇게 행동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거나 죄책감에 짓눌러 일정기간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회개'는 죄의 결과를 두려워한 회개이지 죄 자체를 슬퍼하고 한탄하는 회개가 아닌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내가 이 죄를 지었기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좋은 결과를 주실거야 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볼까요? 선지자 발람이 있습니다. 그 발람 역시 하나님앞에 큰 죄를 저질렀지만 회개했습니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을 팔았지만 이내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회개는 죄 자체를 슬퍼하며 한탄하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즉,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0)

 

다윗은 우리아를 전쟁에 가장 선두에 위치시켜 그를 죽였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살인죄에 간음죄까지 더했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정말 가증한 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왔을때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하나님앞에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 그자체를 슬퍼했으며 한탄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떤 벌로 자신의 죄를 벌하시더라도 '받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 의해 크나큰 고생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압살롬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자신이 범죄한 죄가 자신앞에 있었음을 알았기에 그의 인생에 임한 극심한 시험을 '복종'했습니다. 그때의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말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골리앗을 무찌를때보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임한 시험과 고난을 순종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회개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한탄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그분께 죄송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처음에야 양심이 올곧아 나의 죄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슬퍼할 수 있겠으나..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에 죄에 죄를 더하고 계속 반복해서 죄를 짓는동안 마음이 강퍙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마음은 '죄'로 물들고 병들고 더럽혀져 예수님을 못박게한 나의 죄를 스스로 슬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진정한 회개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회개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오직 우리에게 영적인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께로서만 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이 사람을 진정한 회개로 이끌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셔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올바른 갈망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구하여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고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실때 우리는 그분의 놀랍고도 깊은 사랑에 마음이 감동하여 나의 죄의 깊이를 어느정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 죄 사유함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이 우리의 양심을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속에 품은 모든 악한 생각들도 죄이고 그 죗된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열매들 역시 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께 일치되어야 우리는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일입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안에서 완전하게 살기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아야 하고 죗된 행동이든 죗된 마음이든 '죄'를 지었을때... 사탄의 '니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하는 음성을 듣지 말고 

 

"나 죄인 맞아...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책임지셨어. 그래서 나는 그 예수님을 믿을거야"

 

라고 말해야 하며 유대인들이 흠없는 어린양에 자신들의 죄를 전가시켜 하나님께 제사드렸듯, 우리의 죄를 진정한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가지고 가서 그분에게 바쳐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죗된 마음이 들고 죗된 행동을 했을때... 주저 않지 마세요. 우리는 죄인이기에 넘어질 수밖에 없고 엎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죄를 지었을때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지체하지 말고 성령을 구하여 죄를 슬퍼하고 한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하나님께 '순종'을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마음과 행동의 일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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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진심으로 고백함

성경/말씀 묵상|2020. 8.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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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에게 잘못을 했다면 이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고 잘못한 대상에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때 하나님께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웃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이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에게 죄를 지었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앞에 죄를 지었을때.. 우리는 자신을 겸비하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영혼은 자신의 죄에 대해 변명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로 범죄 했을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나에게 그 나무의 실과를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이렇듯 하나님을 탓하고 하와를 탓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여쭤보시자 하와는 뱀을 탓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가 어떤 큰 희생을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피하려고 했고 숨으려 했고 변명하기에 바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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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싶은 욕구는 사탄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모든이에게 그러한 욕구가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백을 받아 주지 않으실 것이다. 참된 회개는 자신의 결백을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변명을 늘어 놓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도록 이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큰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괴수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감추지도 않았고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는 첫째 조건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지 않느다면 이는 용서를 위해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깊이 토로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들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토함으로 진정으로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이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죄'에 대한 진정한 고백을 하지 못할까...?

 

이는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해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아래 우리가 눈을 뜬다면 우리의 죄를 분명히 보여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진정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우리 죄를 바로 볼 수 있도록 간구할때 성령께서 우리의 눈에 안약을 발라주셔서 우리의 죄를 분명히 보여주실것입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우리의 죄들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토록 흉악하고 더러운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꺠닫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값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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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필요한 우리

성경/말씀 묵상|2020. 8. 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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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무서운 이유는 그 결과가 단 하나로 끝나지 않느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죄도 지었지만 그 죄로 인한 결과로 사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던 그들이었지만 죄를 지은 이후로는 자신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자리가 점점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에게서만 행복과 거룩함을 느꼈던 그들이었지만 죄를 지은 후로는 거룩함에서 행복함을 찾지 못했고 하나님으로부터 피하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타락한 품성을 전해내려받은 사람들이기에 결코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스스로 거룩해질 수도 없으며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에 물들었으며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조차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읽어도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교회를 가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십니까? 선한일을 해도 마음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으세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온 마음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그 역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알았기 때문에 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고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거룩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예수를 통해 하나님에 이르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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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마음에 평안과 은혜가 느껴지기 보다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기도를 하며 다시 말씀을 천천히 살펴봤다. 그랬더니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인류는 타락했고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탄에 속하여 거룩함하나님에서 행복함을 찾지 않는 존재가 됐다. 나 역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생각대로 신앙을 하고 때때로 사탄의 인도함을 받는 모습이 나타남을 고백한다. 또한 말씀을 보더라도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나의 자아 만족을 위해 말씀을 보고 기도를 했던 경험도 참 많았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하나님께서만이 주시는 행복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나의 삶에 조금씩 조금씩 나타났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기도를 듣기 원하실까?

 

나의 생각과 자아에 대한 미련을 예수님께 가져가고 싶다.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걸어가보고 싶다. 그동안 참 내 힘으로 많은 일들을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도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할 듯 싶다. 이 기도의 마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순수한 열망으로 말씀과 기도로 삶을 살고 싶다. 이렇게 묵상을 마칠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이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분인지 가르쳐주심에 참 감사하다. 내일은 조금 더 하나님께로 가고 싶다. 아니 오늘 남은 시간 동안에도..

 

..예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죽은 영혼에 새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우리를 하나님과 거룩함으로 이끌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은 하늘과 다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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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성경/말씀 묵상|2020. 8. 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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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자

 

 

자연과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 세상에 안 비추는 곳이 없는 햇빛은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놀랍고 절대적이며 공평한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비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산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바다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넓으신 분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늘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하늘이 파란색이 아니고 구름이 흰색이 아니면 우리에게 하늘을 보는 기쁨이 있을까요? 하늘을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도 하늘로도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일 매일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자연의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가장 따뜻하고 가장 와닿게 말씀하려고 최선을 다하십니다. 하지만, 이 자연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다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5분간의 스케이팅을 연출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시간들이 모여 단 '5분'에 집중되어 표현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준비하시고 수많은 노력과 사랑의 모든 마음을 쓸어담아 이 땅에 보내주신 당신의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물처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로 흐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셨음에도 자랑하지 않으셨고 무례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으셨으며 성내지 않으셨고 오래참으셨고 모든것을 바라고 모든것을 믿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

 

예수님이 하나님으로하여금 우리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을 구원하시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1:4)

 

묵상: 범죄한 인류에 대한 구원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 지금까지는 구원이 먼저고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인줄 알았지만... 가장 먼저 있었던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일이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10:17)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내어주실때 마음의 투쟁이 없지 않으셨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토록 놀랍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살면서 더욱 많이 더욱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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