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하늘나라..품성의 열매로 사랑이 전해지는 삶 [품성, 사랑, 하늘나라, 면류관, 자아, 봉사, 섬김]

성경/예수님|2022. 8. 14. 23:36

그리스도인의 높음은 '낮음'과 '자기부정'이다

  •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을 한 곳에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방인(로마)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침 뱉음을 당하며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감취어졌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 그분의 나라에 참여하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분께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희생을 당하실 것이었지만 하나님과 조화되는 기쁨으로 평화가운데 계셨다.

  • 요한과 야고보:세배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가장먼저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공중집회나 은밀한 가정에서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였다. 그들은 그분의 나라에서 예수님과도 가장 가까이 있기를 바랐다. 사도 요한은 기회가 되는 한 예수님의 옆자리를 앉기 위해 노력했고 야고보 역시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는 열망을 보였다. 그들의 어머니도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랐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물질을 통해 예수님을 도왔다. 그런 그들의 어머니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녀의 아들들이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말했다. 

 

  • 예수님의 대답: 예수님께서는 높은 자리를 원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에서 오는 마음임을 아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올바른 진리를 말씀하셔야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잔을 마시며 나의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다.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은 시련과 고통을 뜻하는 것이었을 테다.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좌우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십자가에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을 때 양편에 강도들 즉 죄인들이 있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고통을 나눠질 자들이었다. 야고보는 제자들 중 가장 먼저 칼에 찔려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다. 요한은 제자들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핍박을 당했던 사람이었다.

 

  • 면류관이 있을 하늘을 바라봤던 사도바울: 사도바울은 디모데 후서 4장 6~8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됐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는 말씀을 디모데에게 편지로 전했다. 이 당시 사도바울은 옥에 갇혀 디모데에게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그는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았습니다. 이때 사도바울은 니고데모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의의 면류관이 앞에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 하늘나라에서의 지위: 하늘나라에서의 지위는 이 땅에서 중요한 명예와 부와 권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하늘나라에서의 지위는 품성의 결과로써 정해진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자아를 부정하고 품성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설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삶으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있는 곳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실천하셨던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자랑하지 않는, 교만하지 않는,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삶에서 실천(되어지는)하는 사람들입니다. 

 

  • 묵상: 오늘은 하루종일 아내와 작은 말다툼을 하며 하루를 다 보낸 것 같다. 서로 자기 말이 옳다하며 크고 작은 말로 서로 상대를 힘들게 했고 상처도 줬던 하루인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서 말씀을 보며 성령하나님께서 나의 모습을 천천히 비춰주셨다. 나 역시 제자들처럼 그냥 내 자신만 높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내 자신의 생각만 중요하고 나의 위치만 중요한 그런 이기적인 사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당신의 위치를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분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으로 낮아지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죽기까지 사랑을 베푸셨고 자기의 모든 것을 주셨다. 하늘의 정신은 자신을 버리는 정신이다. 하늘의 정신은 자신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정신이다. 하늘의 정신은 자아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를 좇는 정신이다. '이기심'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없음에 좌절하지 말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자. 그리고 이 모습을 예수님께서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내 부족한 내 자신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자. 그분이 나를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그분이 나에게 사랑을 주실 것이다. 매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하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자!

 

  • 예수님의 모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도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고 사랑으로 섬기는 분이셨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짐을 지시는 분이셨고 항상 앞서가시며 울퉁불퉁한 길을 평평하게 하셨다. 이로 볼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구원의 기초는 사랑에 있다고할 수 있다. 

 

  • 사도바울역시도 자신은 사람에 자유하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자원하여 종이 됐다.

 

  • 묵상: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인 중 어떤 누군가가 권력, 교육, 부, 재능 등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하나님께 받았다면 이는 봉사로의 부르심을 뜻한다. 세상은 더 높아지라고 하며 자아를 확대하라고 한다. 하지만 하늘의 법칙은 봉사의 정신이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으며 자신들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나누었다. 그렇게 예수님처럼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실천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경계하고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기도하고 자아를 예수님께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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