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강의] 우리가 세계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공부/세계사|2021. 1. 1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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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공부하는 의미

 

세계사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남'의 이야기이고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 '세계사'에 관한 지식을 물어본다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를 물어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회사생활이 '공동체'의 문화를 함께 누리는 것이고 회사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분들도 그렇고 요즘은 '개인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사실 그것이 편하기도 하고 또 사람이 있으면 신경도 써야하고 배려도 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그런 듯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세계사를 공부한다면 혹은 세계사를 알고싶어한다면 그 '누군가'는 '공동체'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비록, 저도 개인주의 성향의 사람이지만 제가 속한 곳이 '사회'라는 공동체 이기에 그리고 저 역시 회사생활을 하는 '공동체'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이야기인 그리고 우리 사회가 변화된 과정인 '역사'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자 합니다.

 

세계사 공부를 통해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우리 역시 역사속에 살고 있으니 보다 더 가치있는 삶을 꿈꾸기를 바랍니다.(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ㅎㅎ)

 

 

이야기를 드넓은 세계로 펼치기 전에, 우리 한국사회를 돌아보아도 우리나라에서 '공동체'의 이야기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 '공동체'의 불평등함을 해결하기 위해 삶을 내던지고 목숨을 내던졌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삶을 살았고 결국 역사는 그들을 기록했습니다. 한번 그들을 살펴볼까요?

 

'노동계의 전설' 전 경기지사 김문수

 

우리에게 '소방관과의 통화'로 '꼰대'로 알려진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있습니다. 그는 과거 현실에서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과 삶을 함께 하기 위해 공단에 위장 취업했습니다. 그는 당시 서울대 경영대를 다녔지만 그리고 그 길대로만 갔으면 평탄하게 살며 부유한 삶을 살 확률이 높았으나 노동자들과 삶을 같이 하기 위해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타파하고자 위장취업을 하며 한국 노동계의 전설이 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90968

심상정 국회의원은 김문수 전 지사에 대해 "동지로 지내던 시절의 김문수는 전설이었다. 운동권의 황태자이자 하늘 같은 선배였다. 최근 박근혜 사수를 외치는 김문수와 연계를 할 수 없다"면서 '잊혀진 계절'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김문수는 20년이상 노동운동을 했던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인 전태일. 그는 한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습니다. 그 전태일의 어머니가 김문수를 생전에 자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김문수는 이렇듯 노동계에 함께 있으며 민주화를 외친 사람이었습니다(지금의 행보는 빼고 과거만요). 김문수 외에도 심상정, 유시민등이 운동권에 있으며 이땅의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나 역사의 이야기에 '공동체'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투쟁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이땅에 민주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나와 외쳤습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그의 나이 22살이었습니다.
우리의 22살은 어땠나요? 전태일은 이 땅의 노동자를 위해 분신했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당시, 소녀 견습공들은 하루 14시간을 일하고 70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 '이한열'

이한열은 대한민국의 학생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유신철패 독재타도'를 외쳤지만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고 한달뒤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이 외침은 헛되 않았고 6월 항쟁과 6.29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나이 22살때의 일이었습니다. 전태일과 이한열의 22살은 이땅의 역사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온몸을 던진 외침과 죽음이었습니다.



우리의 22살은 어땠는지 한번 되돌아 볼 일입니다.

 

인권 변호사 조영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또 이한열 열사가 죽기 1년전,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위장취업을 했던 권인숙양이 경찰에 검고되고 당시 취조를 맡았던 문귀동 경장이 권인숙 양을 성고문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권인숙 양이 취조중 성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말했고 이에 인권변호사였던 조영래가 나섭니다. 긴 법정싸움 끝에 1988년 성고문을 저질렀던 문귀동 경장은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게 됐습니다.

 

이렇게 조영래 변호사는 늘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힘썼으며 쫓기는 중에도 '전태일 평전'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나'만 생각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일것입니다. 조영래는 "내가 지키려고 하는 첫번째는 피의자 또는 참고인 가족들에게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어떤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겠다"고 사법 연수원 시절에 일기에 남겼습니다.

 

이렇게 역사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결국,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나'밖에 모르는 삶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아는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저도 남을 조금은 생각해보기 위해 역사를 세계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역사를 알아야 주변 일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약자들을 도울 수 있고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인지 '생각'이라도 해 볼 수 있으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세계사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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