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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마지막 쟁투와 안식일

성경/요한계시록|2024. 6. 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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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강신술입니다. 지난주 교과 내용입니다. 사탄은 강신술을 통해 마지막 날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안식일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경배받으시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래서 창조의 기념일에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날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오늘교과는 이 창조와 예배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날 안식일을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최후의 마지막 쟁투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사탄의 쟁투는 예배를 둘러싸고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마지막 절정 또한 예배를 둘러싼 쟁투가 될 것이다. 최초에 하늘에서 전쟁이 있었습니다. 루스벨과 하나님의 쟁투였습니다. 성경에는 루스벨의 품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 14). 영감의 글에는 ‘그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들의 애정과 충성에 하나님을 최고로 삼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그들의 봉사와 충절을 자기 자신이 받으려고 노력하였다’고 기록 됐습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셔야 하는데 자신이 하늘에서 예배와 존경을 받고자 노력했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경배를 받아야 할 대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떤 대상에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에 대한 쟁투가 최초의 하늘에서 일어었고 최후의 쟁투에서도 ‘예배의 대상’이 그 주제가 될 것입니다.

 

함께 성경절을 보도록하겠습니다. 

<계 14장 7을 누가 읽어주세요!>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네. 사도 요한은 이상 중에 하늘로 올려져서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예배에서 24장로가 하나님을 찬양함)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네 . 읽어준 말씀에서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묘사하며 경배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의 24 장로 또한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다’ ‘주는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 합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 요한계시록에서는 ‘우리가 왜 하나님을 예배드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볼 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행위와 하나님의 창조를 분리할 수 없은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안식일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창조의 기념일이고 그 창조의 기념일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라는 제도는 하나님께 창조함을 받은 우리가 예배드려야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제도입니다.

 

<성경 계시록 14장 9절 말씀을 누가 읽어주실 수 있나요?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

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방금 읽었던 셋째 천사의 기별 부분을 쉬운성경으로 한번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다. 그 진노의 포도주는 물을 타지 않은 독한 술이다.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이 보는 앞에서 유황불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짐승의 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각 시대의 대쟁투는 말합니다. "넷째 계명을 지키는 대신에 국가의 법률과 일치되도록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력에 충성하는 표가 되는 한편,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께 충성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05).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이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까 ~가 읽어줬던 셋째 천사의 기별 후에 뒤이어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계14장 12절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12은 이렇게 헌신하여 구주를 따르는 사람을 "예수의 믿음" 을 가진 자라고 말한다. 예수의 믿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여전히 신뢰하는 깊은 믿음이다. 이는 이해할 수 없을 때 인내하는 믿음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받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임박한 쟁투를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려주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근본적인 상징이다. 따라 서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단 7:25 참조) 안식일을 무너뜨리려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찬탈하려는 것이다.]

 

Q. 안식일과 예수믿음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 - "안식일은 창조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살아 계신 참 하나님 께로 향하게 한다. 하나님의 창조력에 대한 사실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방의 신들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이 시라는 증거로 성경 전체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안식일 을 계속 준수해 왔다면 사람들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사 랑하며  존경과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며  따라서  우상숭배자나  무신론자  그리고  이교도는  하나도  생겨 나지 않았을 것이다"(살아남는 이들, 382~383).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안식일을 계속 우리 인류가 준수했더라면 우상숭배자, 무신론자, 이교도 등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준수에 따라 하나님을 끝까지 예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안식일은 충성의 큰 시금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특별히 투쟁의 초점이 되는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마지막 시련이 닥쳐홀 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섬기지 아니하는 자들은 구별하는 선이 그어질 것이다. 넷째 계명을 지키는 대신에 국가의 법률과 일치 되도록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반다되는 세력에 충성하는 표가 되는 한편,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께 충성하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한 계층의 사람들은 세상의 세력에 복종하는 인을 받음으로써 짐승의 표를 받는 반면에 다른 한 계층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충성하는 표를 받는 길을 택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된다. [각시대의 대쟁투, 605]

 

-> 너무나 분명한 말씀입니다. 안식일 계명 대신 세상의 권위에 복종해 국가의 법률로 지정된 거짓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많은 사람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권위에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짐승의 표에 대해 ‘베리칩이 짐승의 표다, 바코드가 짐승의 표다.. 달러의 숫자,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활동 등이 짐승의 표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안식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짐승의 표 또는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꼐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사탄의 멸망은 확정됐고 예수님의 승리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혼자 멸망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해서 그들까지도 멸망에 빠뜨리려고 계획했습니다. 그 일을 사탄은 속임수를 통해 진행했습니다. 이 속임수는 역사를 통해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육신은 추악하고 일시적이지만 영혼은 선하고 영원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지난 주 내용인데,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영혼 불멸설로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다는 율법주의 사상이 팽배하도록 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가톨릭을 통해 그 일을 했습니다. 법왕이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고해성사에 대해서도 사제는 그리스도가 부여한 죄들을 실제로 삼으로 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골 2장 8절)고 경고했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하지만 속임수가 통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종교 개혁시대에도 사단은 활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속여 신앙을 잘못된 방법으로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참 신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화형에 처하게 하고 죽게 만들었습니다. 루터, 칼뱅, 틴들, 위클리프 등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무력에 의해 폭력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사탄이 우리의 신앙에 대해 무력과 박해를 가하는 것은 가인과 아벨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유는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는 이에 대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수많은 종교박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네로황제가 가한 종교 박해 사건들을 모두 알 것입니다. 네로황제는 (64년-68년)에 특히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는 로마 대화재 사건의 용의자로 자신이 지목받자 대중의 의심을 다른데 돌리기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방화 혐의를 뒤집어 씨웠습니다. 네로에 의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짐승의 가죽을 덮어 쓰고 사냥개에게 물려 죽거나 십자가형에 처하거나 화형에 처했습니다.

 

이외에도 트라야누스 시대, 하드리아누스 시대,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의 시대 등에 긴 기간동안 기독교인들이 종교박해를 당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교의 역사도 반복됩니다. 사탄은 자신의 속임수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무력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이 일은 마지막 떄에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계시록 13장 15절, 17절에는 마지막 벌어질 핍박을 예언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제제의 형태로 시작이되고 그럼에도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사형이라는 선고를 받게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결론 말씀: 

제칠일의 예배뿐 아니라 모든 예배의 진정한 기초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하는데서 나타나게 된다. 이 큰 진리는 결코 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이 진리를 항상 사람들의 마음에 간직하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므로, 우리가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진리가 존속하는 한안식일도 또한 그 증거와 기념으로 존속되어야 한다 [각 시대의 대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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